대구 봉산문화회관 2층. 투명한 유리로 둘러 쌓인 아담한 유리상자, 여기서 아트스페이스라 불리는 스튜디오가 눈에 띈다.
관람객들은 이곳에서 준비가 필요하다. '유치찬란한 그 무엇'을 볼 준비를.
됐다면 이제 스튜디오 안을 들여다 보면 된다. 과일바구니가 놓여 있는 작은 싱크대가 있다. 주인공인 듯한 여성을 그린 그림이나 사진이 벽과 바닥에 놓여 있다. 비즈로 만든 4∼5m의 발도 천정에서부터 수십개가 드리워져 있다. 키치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보수적이라고 인식되고 있는 대구 문화계를 감안하면 사실 매우 도발적이다.
소꿉장난으로 사용되는 소품이 아니라 엄연한 예술품이다. 이를 제작한 주인공은 서양화가 김영희(26)씨. 서울 동국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현재 미술학원을 운영하며 작품활동도 하고 있다.
“제가 꿈꾸었던 것들을 담았어요. 이루지 못했거나 앞으로 이루어야 할 일들 말이죠.”
영희씨의 꿈은 지난 9일부터 ‘유치찬란한 영희의 스튜디오’라는 제목으로 전시 중이다. 오는 12월8일까지다. 영희씨는 어릴 적 모델이 돼 화려한 옷과 번쩍이는 카메라의 주인공을 꿈꿨다. 카멜레온과 같은 메이크업을 하고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싶었다. 고교 때 잡지모델에 도전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역시 꿈은 꿈일 뿐이었다.
“모델이 되려면 큰 키, 작은 얼굴, 깡 마른 몸매가 필수잖아요. 전 아무것도 해당되지 않았거든요.”
둥글고 납작한 얼굴, 낮은 코, 작은 눈…. 영희씨는 자신을 “전통적인 동양 북방계 얼굴”이라고 했다.
“저는 모델이 되고 싶은 꿈을 버리지 않았어요. 부모님이 물려주신 나의 얼굴, 고정관념, 편견들에서 벗어나 하나의 개성 있는 ‘나’를 찾았죠.”
그런 꿈은 고스란히 작품들에 투영돼 있었다. 비즈발에서는 모델이 돼 하나하나 꿈을 이루는 것들이 작은 그림으로 나타난다. ‘기타를 치는 나’에서는 대중의 환호를 받는 모델이 돼 있었고, 스튜디오 바닥에는 모델이 걷는 런웨이가 반짝이는 천으로 표현돼 있었다. 모델이 돼 있는 자신의 사진이 담겨 있는 대형 잡지책이 펼쳐져 있기도 했다.
영희씨의 또 다른 꿈은 현모양처. 일인다역(一人多役)을 해 고되지만 영희씨는 정말로 ‘현모양처’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싱크대가 있고, 소풍을 준비하는 사진은 영희씨의 속마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전시 기간동안에는 관람객들에게 자신이 만든 ‘나만의 거울’을 1000원에, 목팔걸이는 3000원에 각각 판매한다. 전시의 감흥을 일상생활 속에서 느껴 보도록 하자는 뜻에서다. 오는 23일 오후 6시30분에는 ‘영희와 같이 놀아요’라는 타이틀로 자신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이때 빨간 망사 스타킹, 붉은색 상의 등 진짜로 ‘유치찬란’한 옷을 차려입고 등장할 예정이어서 관람객들에게 또 다른 충격을 던져 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