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중이던 1940년 10월 28일 이탈리아는 그리스에 영토 통과를 허용하라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사실상 침공 선언이었다. 그리스는 전쟁도 불사한다는 각오로 ‘오히(Okhi·안 된다)’라고 거부했다. 그날 이탈리아군은 그리스 국경을 넘었고 그리스 시민들은 거리에서 “오히!”를 외치며 맞섰다. 그날이 이젠 그리스 전역에서 축제가 벌어지는 국가기념일 ‘오히데이’가 됐다. 독재자 히틀러와 무솔리니에게 용감하게 대항한 그리스인의 자부심을 확인하는 날이다.
▶당초 독일 통일 기념일로는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1989년 11월 9일이 유력했다. 그런데 이날은 공교롭게도 1923년 히틀러가 뮌헨에서 봉기했다가 실패한 날이었다. 1938년 나치가 독일 전역 유대인 가게와 사원을 불 지르고 약탈했던 ‘크리스탈나흐트(수정의 밤)’라 불리는 날이기도 했다. 통일 기념일로 삼기엔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결국 동서독 통일이 공식 완료된 1990년 10월 3일을 기념일로 정했다.
▶우리나라엔 40개 가량 기념일이 있다. 현충일, 6·25, 한글날은 나라의 기틀과 관련된 기념일이고, ‘정보통신의 날’ ‘재향군인의 날’은 국가 시책에 관련된 날이다. ‘환경의 날’처럼 국제적으로 공통 지정된 기념일도 있다. 한때는 부처마다 나름대로 기념일을 제정해 국가기념일이 50개가 넘기도 했다. 기념식과 관련 행사를 치르느라 예산이 낭비되는 등 폐해가 많아 1970년대에 비슷한 기념일을 통폐합하면서 그나마 조금 줄었다.
▶지난주 총리회담에서 남북이 기념일을 하나 더 만들기로 했다고 한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공동선언문 발표 날인 6월 15일을 민족의 공동 기념일로 하자는 것이다. 총리회담 합의문 제1항 1조는 이를 위해 “각기 내부 절차를 거쳐 필요한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통일부는 벌써 의견 수렴을 위한 공청회 일정까지 잡아 놓았다고 한다.
▶국가기념일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정부가 작정만 하면 달력에 기념일 하나 더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서두르면 이 정권이 끝나기 전에 6월 15일을 기념일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6·15 공동선언에 대해선 여전히 논란이 있고 국민들의 시각도 엇갈린다. 기념일 제정은 6·15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내려진 뒤에 논의하는 게 상식이다. 이 정권은 국가기념일까지 대못질하려 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