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12일 기자회견을 갖고 “임채진 검찰총장 내정자, 이귀남 대검 중수부장, 이종백 국가청렴위원장(전 서울중앙지검장) 등 3명이 삼성의 관리대상 명단(‘떡값 검사’ 리스트)에 포함돼 있다”고 주장했다.

본지 11월13일 보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어떻게 해서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을 대신 맡게 됐을까. 김 변호사는 왜 정의구현사제단을 찾아갔을까. 정의구현사제단은 어떤 단체일까.

김용철 변호사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지인을 통해서 몇몇 언론사에 이런 내용을 전했지만 아무 응답이 없어, 천주교 신자는 아니지만 사제단에 연락을 취하게 됐다”며 “처음 사제단이 내 말을 들어줬을 때부터 지금까지 사제단을 믿고 따를 뿐이다”고 했다.

이렇게 해서 김 변호사는 지난달 18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신부들을 만났다고 한다. 사제단은 이로부터 11일이 지난 지난달 29일 내부 토의 끝에 김씨의 증언을 토대로 삼성그룹의 비리의혹을 본격적으로 제기했다. 사제단 소속 김인국 신부는 “지금 상황에서 삼성의 힘에 휘둘리지 않고 바른말을 할 수 있는 단체는 우리 말고 누가 있겠느냐”며 “힘든 상황이지만 중요한 건 사제 정신이다”고 말했다.

이후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란 이름은 지난 20여 일 동안 삼성비리 의혹 사건의 중심에 섰고, 삼성은 사제단의 발표에 대해 계속해서 반박 발표만을 하고 있다.

발표 내용의 엄밀성에 대한 해프닝도 있었다. 삼성은 14일 “삼성그룹 김인주 사장이 2004년 퇴임한 김 변호사에게 서울지검장이 된 임채진씨의 2006년 인사에 대해 말했을 리 없다”고 했다. 이에 사제단은 “김 변호사에게 얘기한 사람은 김인주 사장이 아닌 이우희 구조본 인사팀장이었고, 2004년 3월쯤이었다”고 번복했다. 하지만 삼성은 다시 “2004년 3월 이우희 전 사장은 인사팀장이 아닌 에스원 사장으로 재직 중이었다”고 재반박했다.

사제단 신부들은 대부분 서울대교구를 비롯, 전국 16개 교구나 수도회에 소속돼 있다. 현재 사제단 대표를 맡고 있는 전종훈 신부는 서울대교구에, 총무인 김인국 신부는 청주교구, 통일위원장인 김영식 신부는 안동교구에 소속돼 있다. 1970년대부터 우리 사회의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고, 사제단의 구심점 역할을 해온 함세웅 신부(서울 제기동성당 주임 신부)는 현재 사제단 고문을 맡고 있다.

사제단은 특정 교구에 소속되지 않은 채 뜻을 같이하는 신부들이 동참해 만든 모임이다. 자체적으로 상임위원회와 운영위원회를 유지하며, 전국 16개 교구와 수도회에 대표와 총무를 두어 전국 규모의 단체를 형성하고 있다.

활동 역시 특정 주교의 지시에 따른 것은 아니다. 매월 개최되는 운영회의와 1년에 한 차례 열리는 총회에서 30~40명의 신부들이 한자리에 모여 활동 계획을 정하고, 행동을 함께한다.

서울대교구청 문화홍보국 팀장 마영주씨는 “천주교 교회법에 어긋나지 않는 한 신부님 개개인은 정치적 신념에 따라 행동할 자치권이 있다”면서 “이번 사건도 마찬가지지만 사제단 활동은 신부님들 사이에서 본인의 신념에 따라 함께하는 것이지 교구청으로 활동 내용이 보고되진 않는다”고 했다.

지난 2005년 천주교 주교회의 사회주교위원회와 가톨릭학교법인연합회가 사학법 개정에 반발할 때, 사제단이 개정 사학법에 찬성 입장을 밝힌 것도 이런 측면에서이다.

운영자금은 회원들의 사비(私費)로 마련되며, 교구로부터 후원금을 지원받지 않는다. 사제단 간사 박상미씨는 “사제단의 운영자금은 사제단 신부님들이 자신의 월급에서 일정액을 보태는 것과 신자들의 후원금으로 충당된다”고 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1974년 원주교구장 지학순 주교가 유신정권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구속되자 이를 계기로 결성, 군사정권 시절 민주화 투쟁에 앞장선 역사를 갖고 있다. 1987년에는 “서울대생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은 조작됐다”는 성명서 발표로 6월 항쟁의 결정적인 도화선이 되기도 했다. 사제단의 이름 앞에는 ‘행동하는 신앙의 양심’이란 표현이 붙는다.

30년이 넘는 세월을 존립해온 사제단 신부와 신자들은 현재도 ‘국가보안법 폐지운동’ ‘북녘 동포돕기운동’ ‘반전평화운동’ ‘생명평화운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에도 사제단은 평택미군기지확장반대, 새만금 살리기, 북녘 수재민돕기, 한미FTA 중단촉구, 사립학교법 재개정반대 등의 활동을 전개했다. 김인국 신부는 “이번 사건에서도 볼 수 있듯이 사제단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수행해야 할 역할이 있다”며 “다른 시민단체나 언론사가 하지 못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사제단이 종교적 영역을 뛰어넘어 세속적 정치 사안에 너무 깊숙이 개입한다는 비판도 있다. 지금은 더 이상 과거 언로(言路)가 막혔던 군사정권 시절이 아닐 뿐만 아니라, 사회가 열려있고 전문화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지난해 5월 “본인의 정치적 신념 때문에 이 나라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파괴하고 있는 사제단의 행위를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며 가톨릭 신자들이 사제단 해체를 요구하는 단체를 결성하기도 했고, 지난해 말 사학법 논란 당시에는 천주교 주교회의에 반하는 사제단이 가톨릭을 대변하진 못한다는 비난도 나왔다.

사제단에 따르면, 1970~1980년대 군부독재 시절에는 전국사제 900여명 중 500명의 사제들이 사제단 활동에 동참했다. 80년대 후반부터는 각 교구의 사정에 따라 교구별 모임을 가졌다. 현재 회원 수와 관련해서 사제단은 “우리와 뜻을 함께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제단의 멤버”라는 입장이다. 회원 명부는 없다. 특정 직책을 맡고 있는 위원회 위원 40여명을 제외하면 천주교 내 사제단의 규모를 파악할 수 있는 회원 숫자는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서울 종로구 동숭동에 20여 평의 사제단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다.

사제단의 현재 활동에 대해 천주교 주교회의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서울대교구장이자 지난해 2월 추기경 서임을 받은 정진석 추기경 또한 현재까지 서울대교구 내부에서 이번 사건과 관련해 특별히 언급한 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