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1년 태어난 하이젠베르크(Werner Karl Heisenberg·1901~1976)는 스물 여섯이던 1927년 불확정성의 원리를 발표했다. 불확정성의 원리는 행렬역학과 파동역학의 갈등을 한 단계 높은 차원에서 해결하면서, 동시에 고전물리학의 인과율 법칙의 토대를 흔들었다. 그는 같은 해에 라이프치히 대학의 물리학 교수로 임용됐다. 1932년에는 만 서른 하나에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독일이 자랑하던 당대 최고의 천재이자 가장 뛰어난 물리학자였다.

그렇지만 그의 삶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나치가 집권하면서 아인슈타인 같은 유태계 동료 물리학자들은 하나 둘 독일을 떠났다. 하이젠베르크는 동료들로부터 미국으로 이민을 오라는 권유를 받았고, 이민과 독일에 남는 것 사이에서 갈등해야 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원자핵 연구팀에 차출되었고, 여기서 원자력의 군사적 이용에 대해서도 연구를 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스승이자 친구였던 닐스 보어로부터 원자탄 계획에 참여한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부분과 전체’(원제는 Der Teil und das Ganze: Gesprache im Umkreis derAtomphysik·부분과 전체: 원자물리학을 둘러싼 대화)는 일종의 자서전이다. 그는 따로 자서전을 저술하지 않았기에, 그의 저술 중 이 책이 자서전에 제일 가깝다. 그렇지만 이 책은 기록에 의존한 자서전은 아니다. ‘부분과 전체’는 모두 20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 번째 장은 그가 고등학생이던 1920년, 1차 대전이 끝나고 친구들과 오랜 도보 여행을 하면서 플라톤에 대해서 철학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시작한다. 마지막 장은 2차 대전이 끝나고 독일의 물리학이 다시 평온을 되찾아 가던 1960년대에 그가 후학과 플라톤에 대해서 토론을 하고 독일 학문의 미래에 대해서 확신하는 것으로 끝난다.

책은 1920년부터 시간 순으로 진행하면서, 하이젠베르크가 물리학에 입문을 하게 된 과정, 1924년 닐스 보어의 코펜하겐 연구소에 머물면서 그와 나누었던 대화, 양자물리학을 함께 연구하던 동료들과의 대화, 히틀러를 추종하던 학생과의 토론, 독일에 남는 계기가 되었던 플랑크와의 토론, 1941년 10월 코펜하겐에서 닐스 보어와 나누었던 문제의 대화, 후학들과 원자에너지의 이용에 대해서 가졌던 토론, 독일이 전쟁에 패한 뒤에 억류된 상태에서 바이체커와 나눈 대화, 전후에 독일 물리학을 재건하면서 통일장 이론에 대해 파울리와 나눈 대화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에 등장하는 대화와 하이젠베르크의 삶은 그 톤(tone)을 같이 한다. 즉, 10대 후반의 젊은이의 불안과 패기에서 출발해서, 물리학과 인식론의 세계에 몰두한 20대를 지나, 30대와 40대의 격동기를 경험하고, 50대와 60대에 다시 평온해 지는 과정을 그리는 것이다.

‘부분과 전체’는 그의 삶을 관통하는 화두와 같다. 그는 계속해서 물리학이 보여주는 전체 세계 중 양자물리학이라는 부분의 기여를 질문한다. 구름상자를 이용해서 원자의 궤적을 볼 수 있는데, 전자 속에서 원자의 위치가 정해지지 않았다는 양자물리학의 주장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그는 불확정성의 원리에 도달한다. 부분과 전체에 대한 그의 질문은 물리학에 국한되지 않는다. 철학을 포함한 지식이라는 전체 속에서 현대물리학이라는 부분의 역할은 무엇인가? 사회라는 전체가 개인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고 있을 때, 개인이라는 부분이 결정할 수 있는 선택에는 어떤 것이 있을 수 있는가?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세계라는 전체를 특정한 방향으로 이끌고 있을 때, 한 국가라는 부분이 이에 대해서 취할 수 있는 올바른 입장은 무엇인가?

홍성욱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이 책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명확한 답을 제시하기 보다는, 물리학과 사회의 격동기를 몸으로 겪은 하이젠베르크라는 물리학자가 이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토론했던 과정을 드러낸다. 아마 이 책의 독자는 결과 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고전적인 결론에 도달할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러한 귀결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심원하다. 생명공학과 나노공학이 열어주는 가능성과 위험이 동시에 커지고, 과학기술자가 점차 자신의 좁은 전공만을 이해하는 기능인이 되어가는 지금의 시점에서는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