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공부길에도 ‘강단(講壇)공부’와 ‘강호(江湖)공부’가 있다. 강단공부는 학교의 강단에서 배우는 공부이다. 여기에는 커리큘럼이 있다. 강호공부는 강호를 돌아다니면서 고수들을 만나 배우게 되는 공부를 말한다. 여기에는 정해진 커리큘럼이 없다. 그동안 강호를 돌아다니면서 많은 고수들에게 여기 저기 얻어맞았다. 한 대씩 얻어맞아야 실전 감각을 익힌다. 그동안 나의 강호학(江湖學) 형성에 영향을 미친 선생님들이 세 분 계시다.

먼저 예용해(1929~1995) 선생이시다. 이 분은 이미 1963년에 ‘인간문화재’라는 기념비적인 책을 썼다. 교통도 불편하던 시절에 털털거리는 시골 버스를 타고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숨어 있는 장인들을 발굴한 책이다. 푸대접받던 장인들에게 그 누구보다도 따뜻한 애정을 가지고 용기를 주는 작업을 하였다. 장인들의 작품을 구입할 때는 절대로 물건값을 깎지 않는 인품을 지녔던 양반이다. 예 선생은 목공예품에 특히 관심이 많았다.

조자용(1926~2000) 선생은 50년대에 미국에 유학을 가서 서양 건축을 전공한 분이지만, 한국에 돌아와서는 우리나라 토속 신앙에 관심을 집중하였다. ‘삼신민고(三神民考)’라는 책에 그 지향점이 잘 드러나 있다. 선생은 용신앙, 산신신앙, 칠성신앙을 우리 민족의 기층신앙으로 파악하였던 것이다. 조 선생이 70년대 중반에 동지들과 함께 창립한 ‘민학회(民學會)’는 강단 밖의 민초들이 ‘답사’라고 하는 것을 체험할 수 있는 최초의 학회였다. 그야말로 민(民)의 학(學)이었다. 돌이켜 보니까 답사문화의 원조가 민학회였던 셈이다. 현재 민화(民畵) 전문가인 윤열수가 바로 그 제자이다.

한창기(1936~1997) 선생은 ‘뿌리깊은 나무’를 창간하였다. 이 잡지는 우리 전통 문화와 민속의 저수지 역할을 하였다. 우리 문화의 뿌리가 과연 무엇인가, 그 뿌리를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에 대한 대안이 이 잡지였다. 필자의 20대 시절에 ‘뿌리깊은 나무’는 강호학의 교본으로 읽혀졌다. 특히 한 선생은 우리나라 전통 옹기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전남 벌교에 있는 ‘징광옹기’가 선생의 유지를 계승하고 있는 중이다. 세 분 선생님들 살아계셨을 때에 좀 더 배우지 못한 점이 후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