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 인간 사회에 한편으로는 긍정적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부정적으로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과학은 정치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우생학’이다. 우생학이란 다윈의 진화론에 근거하여 인류를 유전학적으로 개량할 목적으로 여러 가지 유전적 조건과 인자 등을 연구하는 학문으로서, 1883년 영국의 F. 골턴(Francis Galton, 1822~ 1911)이 만든 학문이다.
골턴의 아버지는 재력 있는 은행가였으며 어머니는 진화론의 창시자인 찰스 다윈의 이모인 에라스무스 다윈의 딸이었다. 골턴은 4살 때 이미 읽고 셈을 할 줄 아는 신동이었다고 한다(골턴 당시에는 IQ 테스트가 없었지만 오늘날의 기준에서 볼 때 200정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종사촌 형인 다윈의 학문적 업적에 지대한 감명을 받은 골턴은 인간사회도 ‘생물학적 진화’를 추진하게 되면 더욱 빠르게 발전할 것으로 생각했다. 즉, 인간 사회에서 생물학적 우성인자를 가진 사람들의 수를 늘리고 열성인자를 가진 사람들의 수를 줄이는 인위적인 노력을 하면 궁극적으로 인류의 발전이 촉진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이런 생각을 ‘과학적 지식’에 근거를 둔 올바른 이론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이런 생각을 당시 소위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나라들인 미국, 영국, 독일, 스위스, 프랑스 등의 정치인들도 공감했으며, 심지어 정치적 제도를 만들어 ‘인간을 유전적으로 개선하는 일’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임무라고 까지 생각했다.
인간을 유전적으로 개선하는 일은 특히 지능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이런 정치인들의 이념에 따라 과학자들은 인간의 지능을 검사하는 기준을 만들었으며, 이것이 오늘날 우리들이 알고 있는 ‘IQ 테스트’ 또는 ‘지능검사’의 시초이다.
역사적으로 최초의 지능검사표는 1904년 프랑스의 심리학자 비네(Alfred Binet, 1857~1911)가 프랑스 정부의 의뢰를 받아 만들었다. 이 검사표를 가지고 행해진 지능검사를 통해 프랑스 정부는 정신박약으로 판명된 아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박탈했다. 당연히 비네가 만든 지능검사표는 당시의 지배세력인 백인남성에 유리하도록 만들어져 있었기 때문에 여성, 인디오, 멕시코인, 흑인들은 거의 모두가 경증의 정신박약으로 나타났으며, 정치인들은 그 결과를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선전하면서 백인남성 중심의 사회를 강화시키는데 이용했다.
지능을 기준으로 열성과 우성을 구분하고 열성으로 판명된 사람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박탈했던 일은 당시에 행해졌던 다른 우생학적 사건들에 비해 그나마 인도적인 일에 속했었다.
1900년대 초 미국과 유럽의 거의 모든 국가들은 생물학적으로 인간을 진화시킨다는 명분 하에 악성유전성 질환을 예방하기 위한 ‘단종법’을 제정하여 유전성 정신병(정신분열증, 조울증 등), 백치 등의 정신박약, 유전성 기형, 혈우병 환자들에게 강제로 또는 임의로 불임시술을 시행했다. 더 나아가 미국은 이민자들에게 의무적인 지능검사를 실시하여 점수가 낮은 사람들은 이민을 금지시켰다. 세계제2차 대전 당시 독일의 유태인 학살도 우생학적 사고에 근거를 두고 있다. 당시 히틀러는 유태인은 생물학적으로 열성인자를 가진 종족이기 때문에 독일의 발전을 위해서는 유태인의 증가를 막는 일이 꼭 필요하다는 말로 독일 국민들을 현혹시켰다.
당시 선진국 정치가들은 과학이라는 미명하에 지금의 기준에서 보면 인간의 존엄성을 위협하는 행위인 단종법이나 교육적 차별 그리고 학살조차도 정당화했다. 이처럼 과학이 인간의 존엄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로 사용된다면, 인간의 삶에 상상하지 못할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런 점에서 올바른 과학을 선택하는 일은 과학을 발달시키는 일 만큼 인류의 행복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만일 우리가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한 채로 과학은 무조건 발달하면 좋은 것이며 인류는 더 행복해질 것이라는 맹목적인 ‘과학만능주의’에 젖어있다면 이는 날카로운 칼을 손에 쥔 아이와 같은 상태이다. 날카로운 칼일수록 위험성은 상대와 자신을 해칠 위험성은 더 높아진다. 그러니 과학이라는 날카로운 칼을 올바르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이 칼을 손에 쥔 사람의 성숙한 윤리의식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