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우리 남편 대소변 아침에 받아내고 이리로 오는 거여. 내가 여길 찾는데 얼마나 고생했다고…."
지난 12일 용인시 기흥구 신갈동의 신갈야간학교. 번쩍이는 모텔 사이에 1층짜리 컨테이너 박스가 초라하게 자리잡고 있다. 입구에 '신갈야간학교'란 빛 바랜 간판마저 없었다면 영락없는 건설현장 사무소다. 김복(73) 할머니는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까지 와서 한글을 배우는데 20년이 걸렸어요. 배우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는데, 가르치는 곳을 못 찾았어. 그런데 이제 철거한대. 이게 말이 돼요?" 목소리는 격앙됐다. 할머니는 3년 전 이곳으로 와 이제 초등학교 4학년 과정을 배우고 있다.
4학년 반장 김용순(75) 할머니도 “정말 은행에 가서 내가 계좌번호 적고, 이름 쓸 때의 기분을 다른 사람들은 몰라요. 투표할 때도 이제 이름 보고 찍을 수 있잖아. 그 한(恨)을 여기서 풀었는데…”라고 말했다. 할머니들은 저마다 “여기에는 안산에서 오는 사람도 있고, 수원에서 오는 사람도 있어요. 배우고 싶어서, 그 먼 길을 온다니깐”이라고 말했다.
이 학교는 1982년에 설립돼 25년을 이어왔다. 지금까지 약 2000여명이 문맹의 서러움을 털어버렸다. 윤명호 교장은 “여기에 지금 학생만 98명, 선생님이 27명이 있어요. 야학 중에는 아주 큰 편이죠. 선생님들은 모두 자원봉사예요”라고 말했다.
그랬던 이곳이 이제 헐릴 위기에 처했다. 용인시가 학교 앞 오산천을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하기 위해 하천주차장을 없애면서 시유지인 이 곳에 주차타워를 건설한다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공사는 빠르면 12월 시작된다. 시는 학교가 옮길 곳도, 대체 부지도 마련해주지 않았다. 못 배운 설움에 울었던 우리 어머니·아버지의 꿈과 희망이 쌓인 곳이 한 순간에 사라지는 것이다.
수십 년간 켜켜이 쌓여온 서러움이 글이 되면 아무리 짧아도 감동이 된다. 최근 열린 ‘손 편지’ 쓰기 국제대회에서 이 학교 손모(여·50)씨는 첫사랑에게 편지를 써 특별상을 받았다.
‘내 첫사랑에게, 안녕하세요. 드디어 당신에게 편지를 쓰네요. 당신은 내게 많은 편지를 받기를 원했지요…그런데 나는 그 동안 한글을 깨치지 못해 쓰고 싶어도 편지를 쓰지 못했어요… 당신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네요. 그곳에서 우리의 추억을 떠올리며 잘 지내시기를.’ 한글을 몰라 연인에게 답장을 못 보냈던 젊은 여인은 오십 줄에 들어서야 뒤늦은 고백을 했다. 비록 남자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지만.
최근엔 한국 남성과 결혼한 외국 이주여성들도 새로운 구성원이 됐다. 이날 한글 수업을 하는 뜨엣누(여·21·베트남)씨는 “한국말 어려워요. 그렇지만 여기서 배울 수 있어 좋아요”라고 말했다. 한국에 온지 두 달도 안된 몽골인인 만다흐(여)씨는 한국말을 못해 그냥 싱긋 웃었다. 외국인 여성들을 가르치는 유선주(여·27)씨는 “아직 학교가 철거된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어요. 한국에 처음 왔는데 학교가 없어지는 모습을 보면 어떻겠어요. 어떻게든 옮겨가던지 자리를 지킬 것이라고 믿고 있거든요”라고 말했다.
이 학교 선생님들과 학생들은 결코 학교를 헐리게 둘 수 없다는 입장이다. 성용구(35·학원강사) 교사는 “제가 밤에 12시까지 학원 강의를 하고도, 여기에 아침마다 나오는 이유는 그만큼 한글을 배우고 싶어하는 분들이 많기 때문이에요. 자원봉사를 나오지만 이 분들의 열의에 매일 감동을 받고 돌아가거든요. 그런데 이곳을 이대로 문닫게 둘 수는 없어요”라고 말했다.
허현무(22) 교사는 “8월 처음으로 화성 제부도에 1박2일 수학여행을 갔을 때 소녀처럼 기뻐하던 엄마 뻘 학생들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면서 “이 곳을 찾는 학생이 한 명이라도 남아 있는 한 천막을 치고라도 수업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