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가 연구결과를 평가 받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해당 분야의 권위자와 동료 과학자들이 논문의 타당성을 평가하는 방법(peer-review)이 있고,‘ 재연(replication)’즉, 다른 과학자들도 동일한 방법으로 동일한 결과를 얻게 되는지를 검증하는 방법이 있다. 과학논술은, 이를테면 전자에 속한다. 글로 된 한 편의 답안으로 평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학논술 답안 작성의 기본을 익힌다는 것은 결국 과학적 의사소통의 기본을 익힌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무엇에 답할 것인가?

과학논술의 논제들은 수능 과학탐구영역에서 출제되는 문제들과는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르다. 특히 다양한 조건과 요구들이 마치 하나의 문제처럼 주어진다는 것이, 그동안 하나의 답으로 떨어지는 문제에 익숙해져 있는 학생들을 당황스럽게 만든다. 그래서 주어진 요구에 답하지 않거나 때로는 불필요한 언급을 늘어놓는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문제는 어느 경우라도 그다지 좋은 평가를 기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① 묻는 것에 빠짐없이 답하라: 사실 학생들의 답안을 채점하다 보면 창의성을 따지기 이전에 논제의 요구에라도 빠짐없이 대답한 학생들이 그렇지 못한 학생들보다 더 좋은 평가를 받기 마련이다. 만일 창의적인 발상과 논리적인 치밀함이 담긴 답안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출제자의 요구와 관계없는 것이라면 아무 의미가 없다.

사례 1 실전2회 메가스터디 통합논술 모의고사 성균관대 문항

[논제]자료 1〉은 현존하는 타조과 조류의 유전적 연관 관계를 도식적으로 제시한 그림이다. 타조과 조류의 표현형과 지리적 분포를 비교해 여기에서 발생하는 진화론의 논리적 모순을 세 가지만 제시하고, 이 모순을 해결할 가설을 세우시오.

이 논제에서는 현대 진화론에서 내세우는 여러 가지 증거들 중에서 '비교 해부학상의 증거'와 '생화학상의 증거'에 관한 자료가 주어졌다. 또 유전자 뉴클레오티드 분석 사례를 통해 옛 곤드와나 대륙〈자료 2〉에 분포돼 있는 타조과 조류의 유연적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이 논제의 핵심은 우선 뉴클레오티드 분석에 따른 타조과 조류의 연관관계조사 결과를 실제로 진화론의 증거로 삼을 수 있는가와 이때 발생하는 논리적 모순은 무엇인지를 밝히는 것이다. 그리고 모순을 피할 수 있는 가설까지도 마련해야 한다. 논제의 요구를 다시 정리하면 첫째, 타조과 조류의 표현형과 지리적 분포를 비교하고 둘째, 비교한 내용을 바탕으로 모순점 세 가지를 제시하고 셋째, 모순들을 해결할 가설 세우는 것이다. 그런데 답안들 중에 논제의 세 가지 요구에 모두 대답한 답안은 찾기 힘들었다. 답안을 작성하기 전에 미리 출제자가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 분명하게 정리해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음 학생의 답안을 살펴보자.

사례 1 학생 답안 ①

첫 번째 모순적 관계로는, 화식조와 에뮤를 비교할 수 있다. 화식조와 에뮤는 같은 유전적 관계이고, 같은 지역에 분포되지만 모양새, 생물체의 구조가 다르다. 한 조상으로부터 진화된다면 비슷한 구조일 것이라는 진화론의 모순이 된다.

두 번째 모순적 관계는 타조와 키위이다. 이 둘은 화식조와 에뮤와 마찬가지로 같은 유전적 연관관계에 속하지만 분포된 지역과 생물체의 구조가 매우 다르다. 특히 생물체의 구조가 매우 다르다. 예를 들어 목뼈와 다리의 길이, 발의 모양 등이 확연히 다름을 알 수 있다.

세 번째 모순은 난두와 키위, 화식조와의 관계이다. 위의 두 가지와 마찬가지로 난두는 타조, 키위, 화식조, 에뮤의 모든 유전적 관계에 포함돼 있지만 키위, 화식조와는 생물체적 구조가 매우 다르다.

이 세 가지의 모순을 해결하려면 ‘동물의 같은 유전적 관계이고, 또는 모든 유전적 관계를 포함시키는 동물일 지라도, 지역과 환경에 따라 모양이 변한다’라는 가설이 필요하다.

이 학생은 우선 제시된 자료를 분석해 세 가지 모순점에 대해 설명하고, 그 다음 같은 유전적 관계를 가진 동물일지라도 환경에 따라 해부학적 구조가 달라질 수 있다는 가설로 진화론의 모순을 해결하려 하고 있다. 언뜻 보면 세 가지 모순점과 그에 대한 해결적 가설을 제시했으므로 논제의 물음에 정확하게 답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학생이 제시한 세 가지 모순점은 모두 타조과 조류 사이에 같은 유전적인 연관 관계가 있지만 분포된 지역에 따라 표현형이 달라진다는 한 가지 모순점에 대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세 가지 모순에 대해 언급하는 대신, 세 가지 사례를 들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타조과 조류의 표현형과 지리적 분포를 비교해'라는 요구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세 가지 모순을 찾지 못했으므로 결과적으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가설도 제대로 세운 것이 아니다.

논술 답안은 글로 표현되기 때문에 객관적인 기준을 적용해 '더 나은 답안'과 '더 부족한 답안'을 가려내는 것이 쉽지 않다. 관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학생들의 실력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변별해내야 하는 채점자들의 입장에서는 고민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때 출제자들은 논제에 여러 가지 요구와 조건을 달아 얼마나 물음에 충실하게 답했는지를 평가할 수 있도록 한다. 따라서 논제 속에 담고 있는 각각의 요구에 대한 답변을 누락시키면 결국 그만큼 점수를 잃게 된다. 아무리 논리적이고 창의적이라 하더라도 묻는 것에 대답하지 않은 답안은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다. 답안을 작성하기 전에 무엇에 대해 답해야 하는지부터 우선 분명하게 정리하라. 논제의 요구는 '설명하라' '제시하라' 라는 직접적인 방법 말고도 얼마든지 다양한 방법으로 주어질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② 묻지 않은 것에 답하지 마라: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또한 학생들이 가장 간과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학생들의 답안 중에는 답안을 최대한 자세하게 작성한다는 이유로 기본적인 개념에 대해 장황하게 서술하거나 제시문의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기본적인 개념을 확실하게 알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 그러나 채점자는 문제의 해결을 요구한 것이지 문제가 무엇인지 또는 배경지식을 갖추고 있는지를 묻고 있는 것이 아니다.

만일 논제의 요구를 모두 만족시키면서 동시에 풍부한 배경지식을 갖추고 있음도 보여줄 수 있다면 아주 이상적이다. 그러나 논술에는 반드시 시간의 제한이 있기 마련이다. 굳이 요구하지도 않은 장황한 설명을 덧붙이는 것보다 한번 더 답안을 검토하고, 수정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무엇보다 논제에서 요구하는 것 이상의 내용을 설명하다 보면 정작 언급해야 할 내용을 놓칠 수 있다는 게 문제다. 다음은 <사례 1>의 논제에 대한 다른 학생의 답안이다.

사례 1 학생 답안 ②

진화론에 따르면 동물의 해부학적 유사성은 공통조상에서 진화한 증거라고 유추한다. 완두의 덩굴손과 포도의 덩굴손과 같이 발생기원과 구조가 다르면서 그 기능과 형태는 비슷한 상사기관이 존재하기 때문에 동물의 해부학적 유사성은 한가지 조상에서 진화한 결과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 상사기관은 서로 해부학적 기본 구조가 다르다 하더라도 외부의 환경적 요인에 의해 그 구조가 유사해지는 방향으로 진화할 수 있다. 따라서 척추동물은 한 조상으로부터 진화해왔다고는 할 수 없다. DNA는 유전자를 구성하는 물질로써 유전자는 DNA를 복제하여 다음 세대를 잇는다. 유전자가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발현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유전자의 발현여부에 따라 생물의 구조가 변화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진화론의 입장은 생물이 단지 기능적 유사성 때문에 같은 조상으로부터 진화된 증거라고 주장한다. 생물의 생식결과 유전자의 발현 유무에 따라서 생물의 구조적 특성이 변화될 수도 있으므로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않다.

자료2〉에서 타조와 키위는 시토크롬b 유전자의 뉴클리오티드 분석결과 같은 군으로 분류됐다. 진화론에 따르면 해부학적 구조가 비슷한 점을 진화의 증거라 주장하는데 타조와 키위는 골격구조가, 유전적 구조가 다른 난두나 에뮤에 비해 매우 상이하다. 오히려 타조는 난두와 골격 구조가 비슷해 진화론자의 주장의 설득력을 떨어뜨린다.



이 학생은 진화론자들이 내세우고 있는 여러 가지 증거들 중에서 '해부학적 유사성'이라는 한 가지 근거에 대해 반박을 시도하고 있다. 나름대로 논리적이고 설득력이 있지만, 논제에서 요구하는 답은 아니다. 말 그대로 '동문서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 고려대에서 발표한 '논술백서'에는 중언부언 길이를 늘린 답안은 결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수 천장의 답안을 검토해야 하는 채점자들에게는 불필요하게 분량만 늘어난 답안이 반가울 리가 없다. 또 답안의 길이를 너무 늘리게 되면 시간 분배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다만 경우에 따라서는 다소 자세한 설명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제시문과 논제에 이미 나와있는 개념이나 원리가 아니라, 답안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필요에 따라 도입된 개념이나 원리들에 대해서는 반드시 정확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 예를 들어 사례에서처럼 논제에 이미 '진화론'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고 있을 때에는 굳이 답안에서 진화론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설명할 필요가 없다. 이는 출제자가 진화론에 대해 수험생이 알고 있을 것이라 전제하고 있는 경우로, 만일 그렇지 않다면 따로 각주를 달아 진화론에 대해 설명을 했을 것이다. 자신이 진화론에 대해 알고 있음을 보여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와 달리 수험생이 필요에 따라 이미 알고 있는 개념이나 원리를 답안에 언급할 때에는 설명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만유인력의 법칙'을 근거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면 '만유인력의 법칙'이 무엇인지부터 간략하게 나마 설명해야 한다. 설마 '만유인력의 법칙'을 모르는 사람이 있겠느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평가자가 모를까봐 설명하는 게 아니다. 자신이 그 개념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근거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설명하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서술하는 것과 간결하면서도 명료하게 서술하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길게 늘려 쓰는 것보다 짧게 표현하는 것이 훨씬 어렵다. 할말은 다 하면서도 최대한 간결하게 표현하는 데에는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비록 수식과 도표 등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자연계열 논술이 인문계열 논술에 비해 문장표현력에 대해 훨씬 관대한 것이 사실이지만, 자연계열 논술도 논술이라는 점을 잊지 말자. 문장표현력은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능력이다.

인문계열 논술에서만 깔끔한 답안이 유리하다?

답안의 겉모습보다 내용이 더 중요하다는 데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특히 논술고사에서 원고지를 사용하지 않는 자연계열 학생들은 답안의 외형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너무 내용에만 치중해 겉으로 보이는 부분을 지나치게 간과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고려대 입시설명회에서 채점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아무래도 깔끔한 답안이 시각적으로 잘 읽히게 된다. 물론 글씨체를 반듯하게 썼다고 해서 내용과 상관없이 좋은 점수를 받는다거나 논리적으로 잘 썼는데 글씨체가 지저분해서 낮은 점수를 받는다는 것은 아니다. 사실 깔끔한 답안과 좋은 평가 사이에 구체적으로 어떤 관계가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경험에 비추어보면, 논리적인 서술이 잘 된 답안일수록 깔끔한 답안인 경우가 많다. 논리적인 답안과 깔끔한 답안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고 하겠다." 분명한 것은 답안이 깔끔해서 손해를 볼 일은 없다는 것이다. 깔끔한 답안을 작성하는 데 도움이 될만한 몇 가지 방법을 권한다.

① 원고지와 백지: 자연계열 논술고사에서도 간혹 원고지 형태의 답안지가 주어지는 경우가 있다. 대개 주관적인 견해를 묻는 논제에 답안의 분량제한이 있는 경우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자연계열 논술고사에서는 백지 또는 밑줄만 그어진 형태의 답안지가 주어진다. 도표, 수식, 그래프 등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형태의 답안지에서도 충분히 정돈된 느낌을 줄 수 있다. 그림이나 글자의 간격을 적절하게 맞추는 방법도 있고, 단락과 단락의 간격을 조금 넓게 잡아 보다 깔끔하게 보일 수도 있다.

배수영 메가스터디 통합논구술연구소 연구원

② 수식의 배열: 자연계열 논술에서는 수식이나 화학식 또는 과학적 법칙 등을 활용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식의 배열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자신만의 기준을 정해두는 것이 좋겠다. 일정한 패턴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상당히 정돈된 느낌을 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수식을 사용할 필요가 있는 경우, 문장 속에 수식을 포함시킬 때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또 수식과 문장을 따로 표현할 때는 어떻게 표현할지를 미리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③ 그림, 도표, 그래프 등의 설명: 답안의 시작은 글로 시작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래프나 그림 등은 어디까지나 효과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핵심만 언급한다는 이유로 중요한 그래프나 그림을 답안 처음에 배치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앞으로 나올 자료에 대해 약간의 설명을 해주어야 한다. 삽입된 그림이나 도표, 또는 그래프를 설명하는 적절한 제목을 붙여주는 것도 효과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