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늦가을 농촌 풍경을 대표하는 나무는 감나무다. 여름에 무성했던 잎이 다 떨어지고, 붉은색의 감이 수백 개씩 나무에 매달려 있는 모습은 시골의 전형적인 풍경이다. 감의 맛은 한국 감이 최고이다. 중국과 일본의 감은 그 당도가 우리 감보다 떨어진다. 유럽에서는 별로 감을 구경하지 못하였다. 우리나라에 유난히 감나무가 많다. 감나무는 그 잎이 넓어서 옛날 사람들은 이 잎에다가 글씨 연습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감은 문(文)을 상징한다.
감나무는 그 목재가 단단해서 화살촉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무(武)를 상징한다. 겉과 속이 같으므로 충(忠)이고, 홍시(紅枾)는 이빨이 없는 노인도 먹을 수 있으므로 효(孝)이다. 늦가을 서리를 이기고 오래도록 매달려 있으니 절(節)이 있다고 여겼다. 감나무 가운데 목가구를 만드는 소목장(小木匠)들이 가장 선호하는 나무는 먹감나무이다. 한문으로는 먹감나무를 ‘오시목(烏枾木)’이라고 표현한다. 먹감나무는 나무 속이 먹물을 물들여 놓은 것처럼 검은색을 띠는 나무이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그래서 먹감나무로 만든 가구를 좋아하였다. 사대부들에게 있어서 검은색 먹물은 문자요, 학문이요, 사색이요, 문명을 내포하고 있었다. 먹감나무에는 이러한 선비정신이 들어 있는 셈이다. 이걸로 가구를 만들면 아름다운 무늬가 나온다. 산수화 같은 산수문(山水紋)도 있고, 괴석문(怪石紋), 운악문(雲岳紋)도 나온다.
아는 사람 한 분이 먹감나무로 만든 문갑(文匣)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구경을 간 적이 있다. 산수문이 있는 문갑이었다. 문갑은 좌우로 대칭을 이룬 4짝의 문이 있으니까 총8개의 문이 있다. 목가구는 좌우 대칭에서 그 묘미가 나온다. 좌우 대칭을 어떻게 맞추느냐가 그 가구를 만든 장인의 내공이다. 이 4짝의 문에 산 모습을 형상하는 검은색 무늬에서 마치 묵향(墨香)이 풍기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 방에는 다른 가구는 일절 없고 먹감나무로 만든 사방탁자(四方卓子)와 이 산수 무늬가 있는 문갑만 놓여 있었는데, 이 먹감 문갑과 아울러 검은색이 들어간 사방탁자의 조합은 조선 양반의 취향을 잘 나타내고 있었다. 감이 익어가는 계절이 되니까 나도 먹감 문갑 하나쯤 가져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