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자매님은 주방봉사를 하시는데요, 김치 담그는 솜씨가 너무 좋으세요.” “이 자매님들은 10년 넘게 ‘세탁봉사’를 해오셨어요. 저희 병원에 봉사 분야가 여럿 있지만 특히 힘든 것이 세탁입니다. 그래도 싫은 표정 없이 지금까지 해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지난 20일 오전 서울 영등포역 인근의 서울 가톨릭사회복지회 부설 요셉의원. 설악산 등에 올해 들어 첫 얼음이 얼었던 이날 바깥 날씨는 매섭게 추웠지만 병원 안은 넘쳐나는 정(情)과 이웃사랑의 열기로 뜨거웠다. 행려병자와 노숙자 등 최극빈층을 위한 무료 진료시설인 요셉의원이 설립 20주년을 맞아 기념 미사와 행사를 가진 것이다. 이날 허름한 요셉의원 건물 1~3층은 물론 옥상과 계단까지 자원봉사자 등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1987년 8월 서울 관악구 신림1동 동사무소 자리에서 문을 열어 1997년엔 현재의 영등포역 옆으로 옮겨온 요셉의원은 20년간 세상에서 가장 낮은 사람들의 건강을 챙겨왔다. 미국유학까지 다녀와 서울의 한 종합병원 내과과장이라는 안정된 자리를 버리고 20년째 봉사하고 있는 선우경식 원장을 비롯해 수많은 의사·간호사 등 의료진과 물리치료, 임상병리 전공자, 자원봉사자들이 시간을 내고, 십시일반 지원해 지금까지 이어왔다. 그들의 도움으로 심신의 아픔을 치료 받은 이가 연인원 42만 명에 이른다.

▲ 지난 20일 요셉의원 20주년 기념행사에서 선우경식 원장(오른쪽 서있는 사람)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선우 원장은 건강이 좋지 않음에도 시종 유머로 참석자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뭔가를 내놓을 수 없는 이들을 돕는 일이기에 아무도 대가를 바라지 않고 봉사했고 그래서 20주년 행사도 자축(自祝) 그 자체로 충분히 행복했다. 이날 참가자들의 얼굴엔 행복한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20년 의료봉사’ ‘10년 의료봉사’ ‘20년 후원자’ ‘10년 일반봉사’ 등 봉사자와 단체 100여명이 ‘감사장’을 받았다. 선우 원장은 감사장을 전하면서 일일이 그들의 공적을 설명했고 “이 자리에 서니 20년 동안 함께 해주신 분들의 얼굴이 아른거린다”고 감격해 했다. 봉사자들은 떡과 김밥 등을 준비했고, 요셉의원을 돕기 위해 ‘착한 이웃’이란 잡지를 창간해 발행하고 있는 이동진 해누리출판사 발행인은 책 약 1000권을 잔치 선물로 내놓았다. 이 병원에서 치료 받고 있는 환자들은 자신들이 직접 만든 머그컵을 참가자들에게 돌렸다. 매년 요셉의원을 돕기 위한 자선전시회를 주선하고 있는 서양화가 김경인씨의 모습도 보였다.

요셉의원에 모든 것을 바쳐오다 지난해 위암 수술을 받았던 선우 원장은 계속되는 항암치료 때문에 머리카락이 많이 빠진 모습이었다. 그는 그러나 만면에 웃음이 가득한 채 “요셉의원의 오늘은 모두 자원봉사자들 덕분”이라고 공을 돌렸다. 그는 요셉의원에 환자로 왔다가 이제는 알코올중독 등을 완전히 치료하고 자립한 두 남성에게 ‘격려장’을 주면서 “이분들이 요셉의원의 보배 중의 보배”라며 “처음엔 저도 포기하려고도 했고, 힘든 순간도 많았지만 이분들을 보면서 힘 내서 지금까지 살아왔다”고 말했다. 기념행사가 한창 진행 중일 때 김수환 추기경의 축전이 도착했다. 김 추기경은 당초 행사에도 참석하려 했으나 건강이 좋지 않아 축전으로 대신한 것. 김 추기경은 축전에서 ‘요셉의원 20년에 선우 원장선생님과 봉사 및 환우 모든 이에게 축하와 감사를 드립니다. 하느님께 영광과 찬미 있으소서’라고 기원했다.

미사를 집전한 서울 가톨릭사회복지회 이사장 김운회 주교는 강론에서 “여러분의 봉사는 그리스도의 삶을 실천하는 것이고, 하느님의 마음을 보여주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것”이라며 “여러분 앞에서 감히 무슨 이야기를 하겠는가? 하느님 은혜에 감사하다는 이야기밖에 드릴 게 없다”고 말했다. 서울 가톨릭사회복지회장 김용태 신부도 축사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을 파견하면서 ‘양을 이리떼에 보내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는데, 요셉의원을 운영하면서 큰 병까지 얻은 선우 원장님을 뵈면 이리떼 사이에서 잡아 먹히신 모습 같다”며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세상을 위해 모든 것을 내놓은 원장님의 삶을 본받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