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근교 팔공산 자락에 자리한 공산예원. 이곳에 터를 잡고 작품활동을 펴면서 영남서예의 맥을 면면히 이어오고 있는 서예가 남석(南石) 이성조(李成祚)씨가 지난 23일부터 오는 28일까지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서예인생 52년을 반추하는 고희전(古稀展)을 열고 있다. 1995년에 마지막 32번째 개인전을 열었으니 12년만의 전시회다.

젊었을 적 부산에서 주먹 꽤나 썼고, 교사·행자승·대학강사 등 다채로운 이력을 가진 그가 전시회를 앞두고 목청을 높였다.

“서예인들을 포함해 요즘 예술가들, 예술활동에 시간을 투자하지 않아요. 평생을 갈고 닦아도 모자랄 판인데…. 이번 전시가 그런 풍조에 작으나마 경종을 울렸으면 하네요.”

전시에 나올 작품은 무려 2000여점에 이른다. 반야심경 관련 작품만 1188점이다. 그가 평소 은혜를 입었거나 기억할만한 사람 및 제자들을 위해 쓴 글씨와 서화 작품도 다수다.

이중에서도 압권은 불교 경전 인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을 168폭 병풍으로 만든 작품이다. 글자수만 7만2000여 자에 길이가 120m, 이를 포개 놓으면 두께가 2.7m나 되는 대작이다. 1999년부터 3년 동안 이 작품에만 매달렸다고 한다.

남석은 경남상고와 부산사범대 미술과를 졸업한 뒤 만 20세라는 가장 어린 나이로 국전 서예 부문에 입선했다. 이후 국전에서만 13번 입선 또는 특선을 차지했다.

“너무 젊었을 때 입선하는 바람에 제가 최고인 줄 알고 까불고 돌아다녔어요. 몇 년만 늦게 입선했어도 지금보다 훨씬 좋은 작품을 남겼을 텐데, 아쉽죠.”

대학을 졸업한 뒤 교사생활을 하던 남석은 30대 초반 성철 스님을 은사로 모시고 행자승으로 불문에 귀의한 적도 있다. 그때 이미 결혼한 몸이었다.

“수계(受戒)를 1주일 앞두고 가족이 찾아왔어요, 안 그랬으면 큰 스님이 됐거나 아니면 그 반대일지도 모르죠.”

남석이 세간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1981년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 초대전에서 노산 이은상 선생과 함께 한국 예술계를 대표해 뉴욕과 LA에서 서예전을 열면서였다. 남석은 이번 전시를 앞두고 많은 서예인들에게 할말이 많다고 했다.

“예술하는 사람은 예술인다워야 해요. 그래서 글씨 쓰는 사람에게는 묵향(墨香)이 배어 나와야 합니다. 또 있죠. 사람도 잘 난 사람과 좋은 사람이 있듯이 잘 쓴 글씨와 좋은 글씨가 있지만 둘은 엄연히 다릅니다.”

좋은 성품과 행동이 있어야 좋은 글씨가 나온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