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胡錦濤’는 ‘호금도’가 아니라 ‘후진타오’인가? ‘釣魚島’는 무엇 때문에 ‘조어도’가 아닌 ‘댜오위다오’로 읽어야 하는가?”

22일 오후,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의 좌석 300석이 가득 찼다. 전국 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이사장 백낙환·白樂晥)가 주최한 ‘한자(漢字) 인명·지명 원음주의(原音主義), 이대로 둘 것인가?’ 대토론회가 열리는 곳이었다. 곳곳에서 “누군가 꼭 제기했어야 할 문제”라는 수군거림이 들렸다. 토론회에서는 한자로 된 중국과 일본의 고유명사를 현지의 ‘원음’대로 표기하는 현실이 오히려 국어 생활의 혼란을 가져오고 있다는 지적들이 쏟아졌다.

◆“의미전달 불가능한 발음기호일 뿐”

이 문제의 근원은 1986년 1월 문교부 ‘외래어표기법’ 제4장 제2절 ‘동양의 인명 지명 표기’에 있다고 참석자들은 지적했다. 발제를 맡은 이 연합회의 진태하(陳泰夏) 상임위원장은 “한자문화권에서 표음문자로 인명·지명을 표기하면 의미의 전달이 되지 않기 때문에 문자로서의 구실을 못 한다”고 주장했다. 한자의 고유한 자형(글자의 모양)과 자의(글자의 뜻)는 한·중·일 3국 어디에서도 거의 다 통하지만, 자음(글자의 음)만은 각국마다 토착적인 발음으로 굳어져 사용했을 뿐이다. 그렇다고 ‘國’이란 한 글자를 ‘국(한국)·궈(중국)·고구(일본)’라고 써야 하겠는가? 그는 “한자를 제 나라의 발음대로 읽으면 아무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했다.

진 위원장은 “‘北京’이란 단어를 ‘북경’이라고 읽으면 ‘중국의 북쪽에 있는 수도’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반면, ‘베이징’이라고 읽으면 그저 하나의 부호로서 앵무새가 흉내 내듯 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 결과 우리 젊은이들이 ‘베이징’이 중국의 어느 쪽에 있는지조차 모르게 됐다는 것이다. 인명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胡錦濤(후진타오)’가 ‘胡(호)’씨인지, ‘溫家寶(온가보)(원자바오)’가 ‘溫(온)’씨인지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는 얘기다.

◆중국인은 못 알아듣는 중국어 발음?

현행 표기법대로 중국어를 발음하더라도 정작 중국인들은 알아듣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周恩來(주은래)(저우언라이)’를 원음대로 발음한다면 ‘周’는 ‘조우’에 가까우며 혀를 말아 올리면서 1성(聲)으로 발음해야 하기 때문에 ‘저우언라이’라는 발음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토론자로 나선 송기중(宋基中) 서울대 교수는 “중국 내 조선족들은 ‘毛澤東’을 ‘모택동’이라 발음하면서, 한국 사람들이 ‘마오쩌둥’이라고 읽는 중국말은 중국말도 아니고 조선말도 아니라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창진(金昌辰) 초당대 교수는 “중국에선 ‘金大中(김대중)’을 ‘찐따종’으로, ‘三星(삼성)’은 ‘싼씽’, ‘安倍晋三(안배진삼)(아베 신조)’는 ‘안베이진싼’이라고 말한다. 한국·일본의 고유명사를 모두 중국어로 발음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벨기에’라는 국명을 영어로는 ‘벨점’, 프랑스어는 ‘벨지끄’, 독일어는 ‘밸기언’이라고 읽는다. 국민이 모르는 주변국 고유명사의 ‘현지 원음’을 읽어주는 나라는 한국 말고 유례를 찾기 힘들다는 주장이다.

◆“표기의 주체성은 어디에 있나?”

방인태(方仁泰) 서울교대 교수는 ‘延邊’을 ‘연변’이 아닌 ‘옌볜’으로, ‘吉林省’을 ‘길림성’이 아닌 ‘지린성’으로 부르는 것은 더 큰 문제를 일으킨다고 지적했다. 옛 고구려 땅이자 현재 조선족이 거주하고 있는 곳의 지명을 중국식으로 부른다면, 고구려 역사가 이미 중국에 귀속됐음을 우리 스스로 인정한 꼴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진태하 위원장은 원음주의 표기의 원인에 대해 “외래어 표기법이 누구를 위해야 하는지 주체성이 불확실한 데서 즉흥적으로 모색됐기 때문”이라며 “조선족자치주의 ‘龍井’ ‘圖們’ 같은 지명이라도 ‘용정’ ‘도문’으로 통일해 달라는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하며, 언론매체에서는 한자를 괄호 안에 쓰지 말고 밖으로 빼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