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심환을 저녁에 먹고 아침에도 먹었는데 아직도 심장이 벌렁벌렁해요. 선생님! 시험은 쉬운가요?" (김영자·53·중국 국적자)

"무슨 문제가 나오는지 한 마디만 해주세요."(황순이·37·중국 국적자)

조선족으로 불리는 중국 동포 서너 명이 양복 차림의 기자를 보고 애원했다. 시험 관리관으로 착각한 모양이다.

지난 10일 오전 9시30분 경기도 과천시 소재 귀화(歸化)시험장. 법무부가 한국 국적을 취득하려는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귀화 시험을 실시하는 곳이다. 시험 시각에 맞춰 응시자들이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나타났다. 이미 시험에서 한 두 차례 떨어진 경험자들도 있었다.

이날 귀화 시험은 법무부 국적 난민과 주관으로 50여명이 응시했다. 사무관 2명과 공익요원 2명이 시험 감독에 나섰다. 시험감독관은 "시험은 25분입니다. 옆 사람 시험지를 봐서는 안 됩니다. 부정행위를 하다가 적발되면 불이익을 당하게 됩니다"라고 말했다.

10시 정각, 시험이 시작됐다. 시험지는 가·나 형으로 분리돼 배포됐다. 시험문제는 4지선다형 10문제와 주관식·단답형 10문제 등 20문제가 출제됐다. 가형은 4지선다형이 나형은 주관식·단답형이 1~10번까지 각각 출제됐다.

'애국가 1절을 적으세요.' 나형 1번 문제였다. 응시자들이 적은 답을 보았다. '동해믈과', '배두산', '보하사' 등 애국가의 구절구절이 틀리기 일쑤였다.

또 다른 문제. '다음 속담에 맞게 ( )을 채우세요. ( ) 기역자도 모른다.' ( )안에 'ㄱ' 자만 달랑 썼거나 '낫들고', '나는' 등 다양한 답이 쏟아졌다.

'호가 백범인 인물은?' 이란 단답형 질문에는, '심청', '김두환', '김좌진', '이승만' 등 다양한 답을 쓰는 응시자가 많았다. 손바닥에다 뭔가 잔뜩 적어와 자주 들여다보는 응시자도 있었다.

▲ 필기시험 중에 응시자가 손바닥에 적어온 내용을 슬며시 보고 있다. 절박한 심정이 고스란히 엿보인다.

한글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듯한 응시자, 문제가 가물가물한지 연신 고개를 흔드는 응시자 등 표정도 다양했다. 하지만 그들이 적은 답을 보니 나름대로 예상 문제집을 통해 시험 준비를 한 것 같았다.

시험문제를 수월하게 푸는 응시생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10% 정도만이 시험문제를 잘 이해하는 듯했고, 약 20% 정도는 문제 자체가 해독이 안 되는 듯했다. 박성화(26·중국 국적자)씨는 “지난 6월부터 시험준비에 매달렸다”며 “국어시험은 쉬웠지만 역사문제는 아주 어려웠다”고 말했다.

이날 시험장에는 우리와 머리카락색, 피부색이 다른 외국인은 한명도 없었다. 응시자 100%가 조선족과 한족 등 중국 국적 소유자였다.

11일 같은 장소 같은 시각. 지난주 필기시험 합격자들이 면접을 보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다. 하루 전 실시됐던 필기시험장 분위기보다 분위기는 밝아 보였다. 아무래도 귀화의 최대 난관으로 치는 필기시험을 통과했기 때문으로 보였다. 하지만 면접시험장에서도 필기시험장 못지않은 긴장감이 넘쳐났다. 면접관 앞에서 애국가를 부르고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기도 했다.

면접시험장에는 유독 이혼녀들이 많았다. 한국 남자에게 시집왔다가 갈라선 조선족 여자들이었다. 면접 내용을 들여다보니 그들이 대답한 이혼 사유는 한결같았다. “남편이 집안일에 전혀 신경쓰지 않아서”라는 것이다. 누군가로부터 면접에 대비해 지도를 받은 티가 역력했다. 신춘자(41)씨, 김지선(가명·39)씨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필사적으로 면접관에게 매달렸다. 가족관계나 이혼 사유가 불분명한 경우 탈락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자신의 처지를 확실하게 설명하려고 했다. 신씨는 대충 앞뒤가 맞는 대답을 했지만, 김씨는 문제가 있었다. 법원 판결문에는 남편이 아닌 김씨가 가정을 돌보지 않아 이혼을 한 것으로 기록돼 있었다. 면접관은 신씨에게는 애국가를 부르게 한 뒤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지만, 김씨에게는 “추가 면접을 해야겠다”며 되돌려 보냈다. 김씨는 “언제 면접 기회가 주어질지, 뭘 준비해야 할지 몰라 걱정이 태산”이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귀화시험이 실시되고 있는 법무부 귀화시험장은 매주 수·목요일 정신없이 분주하다. 시험장 밖에서는 귀화 시험을 보는 응시자 부모들이 나와 자식 의 시험 통과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 공장에서 다리 부상을 당한 남편이 휠체어를 타고 시험을 치르는 동안 부인은 목발에 기댄 채 깊은 시름에 잠겨 있다.

◆귀화시험, 어떻게 치러지나

법무부는 매주 수요일 귀화시험을 실시하고 있다. 수요일 필기시험은 오전과 오후 두 차례 실시하며 각각 70명씩 140명이 응시한다. 목요일 면접시험은 필기시험 합격자들을 대상으로 10~20분 내외로 실시된다.

필기시험은 초등학교 3~4학년 수준으로 출제하고 있다. 국어와 국사 문제 외에 생활과 관련된 문제도 포함된다. 법무부 직원이 직접 문제를 출제한 뒤 몇 가지 유형으로 시험문제를 분리해 치르도록 하고 있다. 공중전화 사용법, 은행에서 현금카드 사용법을 묻기도 한다. 시험에 합격하려면 60점 이상 맞아야 한다. 법무부는 “귀화시험은 외국인이 국내인과 동일한 권리를 누리며 살 수 있도록 국가가 최소한의 평가를 하는 것”이라며 “필기시험 합격률은 평균 60% 정도”라고 말했다.

귀화시험 희망자들은 전국의 14개 출입국관리사무소를 통해 시험 접수를 한다. 귀화 희망자들이 급증하면서 접수 후 1년6개월에서 2년 동안 기다리는 것은 보통이다. 법무부는 시험 응시자들에게 시험 일자를 법무부 홈페이지나 휴대전화 문자서비스, 엽서 등을 통해 통보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제대로 통보받지 못하는 이들도 상당수다. 시험 접수 후 주소 이전과 휴대전화 교체 등으로 제때 통보를 못 받기 때문이다. 필기시험에서 한 차례 탈락하면 다음 시험을 볼 때까지는 5~6개월 동안 기다려야 한다.

응시자들은 귀화시험이 너무 어렵다고 호소한다. 특히 한국사 문제에 대해서는 혀를 내두른다. 외국인들의 귀화 시험을 지원하고 있는 사단법인 여성자원금고의 김선희 실장도 “귀화 필기시험이 외국인에게 상당히 까다롭다”며 “수준을 낮추고 면접 등을 강화하는 등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법무부 직원은 “초등학교 1~2학년 교과 과정만 제대로 알아도 60점 이상을 받을 수 있는 수준”이라며 “이보다 더 낮은 수준으로 출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다행히 필기시험 합격자를 대상으로 하는 면접시험에서는 약 90% 이상이 합격한다. 법무부는 “면접 불합격자들은 의사 소통이 안되거나, 공산주의 신봉자와 신분 위조자들”이라고 말했다. “때로는 면접관 지시에 따르지 않고 면접 중에 껌을 씹거나 모자를 벗지 않고 버티는 등 불량한 태도를 보이는 경우도 탈락시킨다”고 말했다.

강성환 사무관은 “귀화에 필요한 서류는 8~12가지 정도지만 워낙 서류 위조도 많고 위장 결혼도 많다”며 “심지어 위조 여권을 갖고 들어와 귀화하려는 자들도 있어 이들을 가려내기 위해 꼼꼼하게 면접한다”고 말했다. 면접 시험에 통과하면 행정절차를 거쳐 약 3개월 후 한국국적을 얻게 된다.

▲ 필기시험을 보고 있는 응시자들.

◆누가 귀화 시험을 보나

법무부에 따르면 8월 말 현재 국내 체류 중인 외국인은 100만254명이다. 이중 산업연수생은 40만4051명, 불법체류자는 22만명이다.

외국인이 증가하면서 귀화 신청자도 지난 2002년 5161명에서 2006년 2만7113명으로 급증했다. 현재 귀화시험 누적 대기자는 5만명에 이르렀다. 귀화자도 지난 2000년 200명이었지만 2005년에는 1만6654명으로 급증했다. 지난 1991년부터 지난해까지 한국 귀화자는 총 3만7999명이다.

그런데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선진국 출신의 귀화자는 드물다. 이들은 한국에서 장기 체류를 하면서도 귀화보다는 영주권을 받아 생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영주권을 가지고 살아도 전혀 불편이 없기 때문이다. 법무부는 "귀화 신청자의 증가는 우리나라가 선진국 대열에 가세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중국 동포와 동남아 국가 국적자가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지난 2005년 귀화자를 보면 중국국적자가 전체의 86.7%인 1만4453명이었고, 필리핀 784명, 베트남 369명, 몽골 103명, 우즈베키스탄 76명, 파키스탄 66명, 태국 62명이었다.

귀화 시험 응시자들은 국내 친척 등 연고자가 있는 경우가 거의 대다수다. 가족 중 한 명이 한국국적자와 결혼해 한국국적을 취득한 뒤 이를 연고로 나머지 가족들을 국내로 초청해 시험을 보게 한다.

외국인들은 귀화를 통해 확실한 신분 보장을 받고 싶어한다. 절대다수가 경제적인 목적에서 귀화한다. 공장 등에서 한국인보다 더 많은 시간 일하고도 월급을 적게 받고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불이익을 당하는 이들은 한국인과 동일한 대우를 받고 싶어한다.

김연화(23·중국 국적자)씨는 "한국은 중국보다 모든 면에서 선진화돼 있다"며 "월급도 중국보다 많이 주고, 같은 일을 해도 중국에서는 한 달에 20만원을 받지만 한국에서는 100만원을 벌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이 한국 국적을 취득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렵다. 시험 접수 후 응시까지는 2년 가까이 기다려야 하고 한번 시험에 떨어지면 5~6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내리 세 번 시험에 떨어질 경우 시험 접수부터 다시 해야 한다. 이 때문에 중국에서 오는 조선족들은 일단 시험 신청을 해 놓는 경우가 많다.

중국 국적의 귀화 희망자들은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는 이들이 많다. 대부분 중국에서 조선족 학교를 다닌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한국사를 배우지 않아 역사 시험 문제에 대해 두려움을 느낀다.

귀화자가 급증하면서 우리나라도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각종 정책 도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김영란 숙명여대 정책산업대학원(사회복지전공) 교수는 "우리나라의 귀화는 농촌 남성들의 국제결혼이라는 특이한 형태와 맞물려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국제화 시대를 맞아 인적 이동이 폭넓게 이뤄지면서 중국과 동남아국적자의 국내 귀화가 늘고 있다"며 "귀화 증가는 단일민족주의와 순혈주의 전통에서 벗어나 우리나라가 다민족 다문화 시대화해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귀화가 늘면서 발생하는 이혼과 2세 교육 문제 등 사회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귀화자의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대한 적응이 우선이겠지만 우리 국민도 이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포용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 면접시험을 보고 있는 중국 국적의 우리 동포. 왼쪽은 면접관.

법무부는 귀화시험과 방법, 행정처리 지연에 대한 비난 여론에 대해 개선책을 마련 중이다. 하지만 귀화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법무부 국적 난민과 직원은 11명에 불과하다. 이중 4명만이 국적 업무 전담 직원이고, 7명이 타부서에서 임시 파견된 직원이라 체계적인 업무 처리가 안되고 있다는 지적도 많다.

더구나 내국인과 국제결혼한 외국인에 대해 국내 체류 기간이 2년 이상이면 국적을 부여했던 제도를 바꿔 오는 2009년부터 이들에게도 귀화시험을 치르도록 한다는 방침이어서 국적 업무는 한층 복잡해질 전망이다. 차규근 법무부 국적 난민과장은 “귀화 시험 접수 후 시험까지 일정을 단축하고 시험장소도 전국으로 확대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라며 “법무부가 자체적으로 출제하고 있는 시험 문제도 전문기관에 의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정병선 기자

귀화의 종류는? 

일반귀화, 간이귀화, 결혼귀화, 특별귀화 등이 있다.

일반귀화는 만 20세 이상으로 국내에 5년 이상 거주한 외국인이 경제적 자립능력을 갖추고 귀화시험을 통과한 뒤 국적을 얻는 것이다. 프로축구 경남 GK코치인 사리체프의 경우다. 그는 지난 2000년 귀화시험을 통과한 뒤 러시아 국적을 포기하고 한국인이 됐다. '신의손'이라는 한국 이름을 호적에 올렸다. 프로축구 선수인 러시아의 데니스, 크로아티아의 싸빅 등도 귀화대열에 합류했다.

간이귀화는 한국국적을 가지고 있는 중국 동포의 2세 등에게 적용된다. 부모 가운데 한 명이 국적을 회복하면 자녀는 국적자격 시험을 치른 뒤 국적을 획득한다. 전체 귀화자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결혼귀화는 한국인 배우자와 결혼한 뒤 2년 이상 국내에서 거주하면 시험을 치르지 않아도 귀화자격을 얻을 수 있다. 간이귀화와 더불어 전체 귀화의 절반 가량을 차지한다. 하지만 2009년부터는 이들 역시 귀화시험을 치러야 한다.

특별귀화는 1항과 2항으로 분리된다. 1항은 부모 중 한 명이 대한민국 국적자인 경우 자식에 대해 적용한다. 2항은 우리나라에 특별한 공로를 세운 경우에 부여된다. 대통령의 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특별귀화를 하더라도 국내법이 이중국적을 허용하지 않은 단일 국적주의를 채택하고 있어 원래 국적을 포기해야 한다. 이 때문에 특별 공로를 인정받은 귀화 대상자라도 귀화하는 경우는 없었다. 2002년 월드컵 축구대표팀을 이끌었던 거스 히딩크 감독도 대상으로 지목됐지만 이런 이유 때문에 불발됐다.

법무부는 또 영주권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외국인 신분을 유지하면서 국내 체류하는데 편의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에서다. 대상은 국내 투자가들과 박사 학위 소지자들이다. 미화 200만 달러 이상 투자자, 50만 달러 이상 투자하고 3년 이상 국내 거주하며 3명 이상의 근로자를 고용한 자, 박사학위 소지자로 국내기업에 고용된 자 등이다. 현재 외국인으로 한국 영주권 소지자는 1만5000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