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이 말했다. “알았어. 지금 내 차가 수리 들어가 있는데 다 고쳤나 알아보고 출발할게.”

“그래, 고마워. 여기 위치가......” 나는 옆에서 우리의 통화를 엿듣고 있는 경찰관을 바라보았다.

“횡계 도암 파출소라고 하면 다 알아요. 일단 횡계 나들목으로 들어와서 물어보면 됩니다.”

나는 그대로 지원에게 전했다. 지원은 조금 놀라는 눈치였다.

“파출소?”

“아니, 놀랄 거 없어. 어쩌다 있게 된 거니까. 그럼 여기서 기다릴게.”

“그래. 시간이 좀 걸릴지도 몰라.”

“천천히 와.”

전화를 끊자 순경이 나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부러워할 것 없어요, 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여자친구신가 봐요?”

“아뇨. 그냥 친구예요.”

“에이, 남자 여자 사이에 친구가 어딨어요? 오랜만에 만나시나 봐요.”

“좀 됐죠. 참, 오늘이 며칠인가요?”

“10월 8일이네요.” 순경이 달력을 보고 말했다.

“아.....” 이춘성을 따라 들어간 게 아마 6월이었지? 그럼 벌써 석 달도 더 지났다는 건가? 나는 순경에게 산 위를 가리키며 수십 명이 기거하는 ㅁ자 형 건물에 대해 혹시 들은 게 있느냐고 물었다. 순경은 그 위에는 방목지와 목부(牧夫)들의 임시숙소 그리고 등산객을 위한 산장밖에는 없다고 단언했다. 나는 더는 거기에 대해 묻지 않았다. 순경이 나에게 자판기 커피를 뽑아다 주었다.

▲ 그림= 이우일

중천에 뜬 해가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나는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한껏 꾸며놓은 파출소 앞 큰길에서 서성대며 그녀를 기다렸다. 나는 그녀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한 번 그 생각을 하니 그녀가 이 먼 곳까지 와 줄 이유가 전혀 없는 것 같았다. 딱새 한 마리가 지저귀며 내 머리 위를 날아갔다.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났다.

지원이 도착한 것은 오후 세 시가 다 되어서였다. 그녀는 해치백 스타일의 작고 귀여운 차에서 내려 걸어왔다. 우리는 맞선이라도 보러 온 남녀처럼 멋쩍게 인사를 했다.

“좀 늦었지?”

“아니, 괜찮아.”

“배 고파?”

“응.”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한우 전문 식당에 차를 세우고 안으로 들어갔다. 지글지글 고기 굽는 냄새가 풍겼다. 냄새 때문인지 스테이크를 구워주던 프랑켄슈타인이 떠올랐다. 잘 있겠지?

“얼마나 시킬까?” 지원이 물었다. 나는 식당 같은 데는 오랜만이어서 어떻게 주문을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그러자 지원이 알아서 시켰다.

“꽃등심 2인분 주세요. 이거 한우 맞죠?”

“여긴 다 한우예요.” 주문을 받는 아줌마가 메뉴판을 가져갔다. 우리는 마주 앉아 오랜만에 서로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볼 수 있었다.

“눈이 좀 부은 것 같은데. 어디 아팠어?” 내가 지원에게 말했다.

“원래 이래. 하도 오래 안 봐서 얼굴 잊어버린 거 아니야?”

지원이 눈을 내리깔았다. 서먹함은 영 가시질 않았다. 무슨 얘기부터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생판 낯선 사람보다 말 붙이기가 더 어려웠다. 이혼한 배우자를 한 10 년 만에 만나면 이런 기분일까?

“내가 왜 여기 와 있는지 궁금하지 않아?”

“불편하면 말 안 해도 돼. 근데 그 상처는 뭐야?”

그녀가 내 오른쪽 팔뚝을 가리켰다. 난 한참 동안 그 상처를 바라보았다. 도대체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아, 유리. 유리였지. 회칼을 휘두르며 달려들던.

“칼에 긁혔어.”

지원은 수족관에서 튀어나와 팔딱거리는 금붕어를 보듯 미간을 찌푸렸다.

“별 것 아니야. 거기서 좀 오해가 있었거든.”

“거기라니?”

“실은 거기가 어딘지 나도 잘 모르겠어. 그때 너한테 말했던 사람, 날더러 계약하자고 했던 사람 있잖아? 그 사람 따라 파주에 있는 어느 건물로 가서 거기서 계속 지냈거든. 그런데 나와보니 여긴 거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내 말이 그 말이야.”

“그럼 그 쪽 일은 이제 다 해결된 거야?”

해결이라. 이런 것을 과연 해결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장군과 유리, 탱고와 메두사, 프랑켄슈타인과 이춘성 등을 생각했다. “글쎄. 그건 잘 모르겠어. 네가 말하는 그 쪽이 어디인지도 모르겠고. 그렇지만 거기서 배운 것은 하나 있어.”

“그게 뭔데?”

“세상 어디에도 도망갈 곳은 없다는 거야. 인간은 변하지 않고 문제는 반복되고 세상은 똑같다는 거야. 거긴 정말 이상한 곳이었는데, 처음에만 그랬을 뿐, 적응하고 나니 하나도 다른 게 없었던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