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4일 8개항으로 구성된 ‘2007 남북 정상선언’에 합의했다. 임기를 몇 개월 남겨놓은 현직 대통령이 북한과 합의한 선언이 갖는 의미와 한계 등에 대해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조동호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를 초청, 좌담을 가졌다.

◆“평가할 만하지만 핵문제 미흡”

고유환=이번 정상회담의 콘셉트는 평화와 번영을 연결해서 통일을 앞당기겠다는 것이다. 큰 틀에서 이 내용, 특히 종전선언과 관련한 내용이 합의문에 들어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부시 미국 대통령의 종전선언 관련 언급을 남북 정상이 적극적으로 해석해 3~4국의 정상회담을 통해 종전선언을 위한 협의를 시작키로 합의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진전이다.

김성한=정상회담 선언문은 이번 정상회담의 아젠다(agenda·의제)인 평화, 번영, 통일 중 번영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평화 부분은 당초 기대한 비핵화에 대한 남북 정상의 강력한 의지가 구체적으로 담기지 못했다는 점에서 미진한 것으로 평가한다. 통일 부분은 남북간 적대관계를 해소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이 나름대로 강조되고 있다. 전체적으로 2000년 김대중·김정일 정상회담의 6·15 선언보다 구체성에선 진전됐지만 방향이 제대로 된 것인지는 검토가 필요하다.

▲조동호=경제적 관점에서 정상회담 선언문의 점수를 매긴다면 'B+와 A-의 중간' 정도다. 아주 만족스럽진 않지만 평가할 만한 회담이었다. 2000년 정상회담과 비교해 민족 경제를 균형 발전시킨다는 선언적 수준에서 나아가 해주 남포 안변 신의주 등 구체적인 지역 사업이 포함되는 등 사업 항목이 다양해졌다. 구체성에서 1차 때보단 진전된 회담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핵, 굳이 정상회담에서 논의할 필요 없었을 것”

▲김=한반도 비핵화문제를 6자회담의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 이행에 초점을 맞춘 점은 아쉽다. 차관보급이 모이는 6자회담이 아닌 정상회담 수준에서 비핵화에 대한 강력한 의지 표명을 기대했는데, 여기엔 못 미친 것이다. 핵문제에 대한 노 대통령의 언급이 전혀 없다. 현재의 6자회담 수준이 정상회담에서 핵문제를 이 정도 수준에서 취급해도 될 만큼 충분히 낙관적이라 단정할 수 없다.

▲고=핵문제는 이미 6자회담의 틀을 통해 해결 과정에 들어가 있다. 6자회담에서 2·13 합의의 연내 이행에 대한 원칙적 합의가 이뤄졌기 때문에 굳이 정상회담에서 논의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양정상이 6자회담을 통한 핵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모색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조=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현 정부가 정상회담에서 북한을 향해 핵문제를 꺼낸다는 것 자체가 무리일 수 있었다. 남북 정상이 핵문제에 대한 언급을 의도적으로 피한 것 아닌가 싶다. 대북관계를 한 단계 발전시키고자 한 남한 정부로선 핵문제를 언급하는 게 회담 성과에 저해요인이 될 수 있다고 보았을 것이다. 6자회담 프로세스가 가동되는 상황에서 남북 정상이 핵문제를 이야기해봐야 외교적 수사에 그칠 가능성도 고려됐을 것이다.

▲김=선언문 4항을 보면 평화체제가 비핵화문제보다 먼저 언급된다. 이는 두 정상이 비핵화보다 평화체제문제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평화체제가 왜 비핵화보다 앞서 언급됐는지 의문이다. 혹시 양정상이 평화체제가 구축돼야 비핵화가 가능하다는 공감대를 가지고 있는 것 아닌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고=핵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종전선언은 안 되는 것이다. 2·13 합의가 이행돼야 종전선언이 가능하다. 오히려 이번 선언문은 2·13 합의의 2단계 진행을 논의하는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남북이 2·13 합의 2단계 협상을 염두에 두고 이 같은 합의를 한 것 같다.

◆“NLL 지위 변경은 논란 가능성”

▲고=선언문에 담긴 합의사항은 정상회담 전에 이미 언론에 노출됐던 것들로 우리측 제안을 북측이 받아들인 모양새다. 민감한 문제였던 서해북방한계선(NLL)문제는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개념으로 묶었다. 남북 공동의 협력 프로젝트, 즉 평화와 번영을 연결하는 개념으로 접근해 '패키지 딜'을 했다는 느낌이다.

▲조=경제 분야에서 '우리 민족끼리'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국제화·개방화시대에 아직도 20세기에 머물러 있는 느낌이다. 대외적으로 배타적인 뉘앙스를 줄 수 있다. 대내적으로도 경제사업에서 경제적 타당성 검토 없이 정치적 고려가 우선할 수 있다. 북한이 그동안 군사적 요충지라는 이유로 난색을 표시해온 해주지역의 경제특구화를 합의한 부분은 눈에 띈다.

▲김=선언문 2항의 법률적·제도적 정비 언급을 통해 현 정부에서 추진했던 국가보안법 개폐 문제가 다시 논쟁 거리가 될 가능성이 있다. 3항과 5항에서 '평화수역'과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를 언급한 것도 사실상 NLL의 지위를 조심스럽게 변경하기 위한 합의로 보여 논란이 될 수 있다. 국군포로·납북자문제가 빠진 점도 논란거리다.

◆“핵 명확한 언급 없는 경협 확대는 문제”

▲김=선언문에 담긴 경협사업들이 언제부터 시작되는 건지 불명확하다. 특히 북한 핵문제 해결과 관련해 핵 불능화 이후 경협을 시작한다는 것인지 등이 모호하다. 북측이 핵 폐기 절차에 들어갈 때 경협 프로그램도 가동돼야 한다. 북한이 6자회담에서 문제를 만들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핵 폐기 이전에 선언문에 담긴 경협사업을 가동하기엔 너무 비싼 프로젝트다.

▲조=핵문제에 대한 명확한 언급 없이 경협을 확대한 것은 문제로 지적될 수 있다. 지난해 북한이 핵 실험을 했을 때 국제사회에서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사업 중단 압력이 나왔다. 개성~신의주 고속도로 개보수 문제 등 향후 10년 이상이 걸릴 문제까지 선언문에 담은 것도 문제다.

▲고=추후 총리급 회담 등에서 시한을 구체화할 수 있다. 큰 방향에서 옳다고 보고 다음 정부에 부담이 되거나 장애가 되는 사업도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6·15 선언 이행을 구체화하고, 체제연합 단계에서 가능한 양측 의회 분야의 접촉까지 선언문에 담은 걸 보면 북측이 남북관계를 현 단계에서 제도화해 모멘텀을 이어가려고 한 것 같다. 북한으로선 차기 정부가 6·15 선언을 사문화할지에 대해 우려하고 있는 것 같다.

▲조=반대로 언젠가 돼야 할 사안들이라면 굳이 다음 정부가 해도 되는데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노무현 정부가 할 이유는 무엇인가. 결국 대북 경협사업에서 김대중 정부가 시작한 개성공단 활성화 정도의 성과밖에 없는 노 대통령의 욕심이 반영된 것 아닌가 싶다.

◆“북은 임기 끝나기 전 얻을 것 얻자는 생각”

▲조=과연 정상간 합의해야 할 사업인지 의문인 아이템도 많다. 백두산 관광사업은 기업이 할 일인데 정상끼리 하기로 했다. 조선사업도 그렇다. 기업이 할 사업이 정상회담 선언문에 담김으로써 경제성이 있건 없건 해야 할 상황이 됐고, 만약 실패하면 정부의 과다한 지원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남측 입장에서 보면 일리가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북한은 '주식회사 인민민주주의 공화국'인 나라다. 김정일 위원장이 회담을 연장하자고 제안한 것만 봐도 김 위원장의 의욕이 반영된 것 같다. 합의사항이 많은 것도 노 대통령 임기가 끝나기 전에 얻을 건 얻어야겠다는 김 위원장의 생각 때문으로 보인다.

▲조=2000년 6·15 선언에서 합의한 경협사업의 구체적인 청사진을 만드는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단계별 사업 순위나 법·제도 변경, 군사적 보장장치에 대한 구체적 진전이 필요하다. 남북 양측의 경제 실체에 대한 연구도 해야 한다. 하드웨어만 강조할 게 아니라 이를 운영하는 사람의 교류나 공동 연구도 필요하다.

=북한 경제를 도대체 어떤 경제로 만들겠다는 것인지 읽어내기 쉽지 않다. 북한에 조선 협력단지를 건설한다고 하는데, 북한에 시급한 일인지 의문이다. 무엇보다 초당적 협력이 실현 가능성에 관건이 될 것이다.

=정작 북한에 절실한 농업·보건의료·환경보호 문제가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것도 문제다. 개성공단도 아직 1단계 수준인데, 공단을 다른 지역으로 확대만 하다가는 어느 한쪽이 죽을 수 있다.

=이번에 합의된 사항은 대개 차기 정부도 부정하기 어려운 내용들이다. 경협사업 등은 한나라당의 대북정책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번 양정상의 합의로 차기 정부의 숙제가 많이 생겼다. 당장 대선 후보들도 선언문을 놓고 답변을 요구받을 것이다. 예를 들어 비핵화와 경협 간의 선후관계에 대해 답변해야 할 상황이다.

=차기 정부는 노 정부가 합의해놓은 사업 대신 다른 걸 하고 싶은 정치적 욕심과 그렇다고 이번에 합의한 사업을 이행하지 않을 수 없는 샌드위치 상황일 것이다. 결국 차기 정부와 국회가 어떻게 할지, 예산상의 문제 등이 중요하다. 후속 조치나 실현 가능성은 정치 논리에 의해 좌우될 수도 있다. 과연 기업들이 참여할 것인지도 문제가 될 것이다.

=국제사회의 생각도 중요하다. 선언문에 제시된 로드맵은 '평화 무드→번영 프로젝트 가동→비핵화→통일' 순인데, '비핵화→번영프로젝트 가동→평화→통일'이 국제사회의 인식이다. 선언문과 국제사회 간의 인식 차이, 이것이 해소되지 않으면 순탄치 않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