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창 안숙선(59)씨의 외가는 ‘국악 명가(名家)’다. 대금 산조 예능보유자였던 강백천씨가 어머니의 사촌이며, 외삼촌은 동편제 판소리의 명창 강도근씨, 이모는 가야금 명인 강순영씨다. 아홉 살의 안씨는 심부름도 해드리고 방도 치워드리고 안마도 해드릴 생각으로 외가를 자주 찾았다. 가야금을 벽에 세워놓고 있던 이모 강씨는 어느 날 “가야금을 꺼내보라”고 하더니 안씨의 무릎에 놓아 주었다. 어린 아이에게는 까다로울 법한 농현(弄絃) 없이, 뜯고 퉁기고 짚는 법부터 일러줬다. 안씨는 “처음 하느라 오른손에서 피가 날 지경인데도 이모는 ‘아프겠다’는 말 한마디 없이 묵묵히 가르쳐주기만 하셨다. 그때부터 학교에 나가서도 한 손은 책상 밑에 내려놓고 가야금을 짚는 연습을 했다”고 말했다.
이모의 손을 잡고 명인 주광덕 선생을 찾아가 판소리 기초와 단가, 토막소리를 배우며 국악에 입문했다. 그때부터 ‘남원의 아기 명창’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안숙선씨가 올해로 소리 50년을 맞았다. 1979년 국립창극단에 들어가 춘향과 심청역 등 주역을 도맡으며 ‘영원한 춘향’ ‘국악계의 프리마 돈나’ 같은 수식어가 따라다녔던 그다.
스승의 소리를 구음으로 배우고 익혀야 했던 시절에 한 번 들으면 좀처럼 잊지 않는다고 해서 ‘녹음기’, 평소엔 입을 꼭 다물고 별 말이 없다가도 토라지거나 톡톡 쏘는 것이 무섭다고 ‘풋쐐기’로도 불렸다. 하지만 지금도 가장 마음에 드는 별명은 ‘연습벌레’란다. “창극단 시절에 소극장 지하 보일러실에 내려가 혼자서 연습하던 게 기억에 남네요. 1시간이라도 허투루 보내면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으니깐.”
밤 늦은 시간에 홀로 남았다가 건물 수위에게 귀신으로 오해 받기도 하고, 몸무게가 39㎏(지금은 47~48㎏)이 될 정도로 살이 빠지는 바람에 ‘건강부터 챙기라’는 스승의 잔소리를 듣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미련했지요.” 미소 짓고 있지만, 젊을 적의 강단은 웃음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반백 년 소리 인생에서도, 스승 김소희 명창이 했던 “만 사람의 환호보다 한 사람을 두려워하라”는 말은 지금도 가슴에 품고 산다. 안씨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국악 관현악단과 협연을 하다가 갑자기 노랫말을 잊어버린 적이 있다. 위기를 넘기려고 고수에게 슬쩍 말을 건넸는데, 투병 중이던 스승은 그걸 보셨는지 말 없이 편지 한 통을 건네줬다. “숙선아,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너의 소리를 인정하더라도 단 한 사람이라도 아니라고 하면 그건 아닌 것이란다.”
얼마 후 스승은 타계했고 지금도 그 편지는 집에 간직하고서 가끔씩 열어본다고 했다. 안씨는 “소리꾼이라면 자신이 어느 공연의 어느 대목에서 실수했는지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안씨는 오는 11월 2~4일 정동극장에서 자신의 소리 역정(歷程)을 돌아보는 사흘간의 음악 무대를 연다. 처음 국악을 알려줬던 이모 강순영씨를 비롯해 동생 안옥선씨와 딸 최영훈씨까지 가족들과 함께 첫날은 가야금 산조와 병창 등으로 꾸미고, 둘째 날엔 판소리 다섯 바탕의 주요 대목을 직접 들려준다. 마지막 날엔 판소리 ‘수궁가’를 제자들과 함께 부를 계획이다. 안씨는 “젊은 날엔 무대에 올라가면 관객에게 어떻게 감동을 줄까 고심하다가 정작 과대하게 ‘오버’하기도 했다. 날이 갈수록 원래 지니고 있는 것 그대로 보여주려고 애쓰게 된다”고 했다. 공연 문의 (02)751-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