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묘희 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 선임연구원

얼마 전 건설교통부는 보행자 우측통행의 타당성을 검증하는 연구를 의뢰해 우측보행의 타당성이 인정되는 경우 이를 도입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와 관련된 보도내용을 보고 출처가 일방적이고 신뢰성이 의심되는 자료들을 근거로 현실을 잘못 이해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를 연구결과와 정책판단의 근거로 삼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예를 들면 ‘차를 등지고 걷는 경우 교통사고율이 1.6배가 높다’는 우측보행과 전혀 관련이 없는 통계를 인용하여 우측보행의 우수성을 입증한다든지, ‘우측보행이 인간행태상 우수하고 세계적으로 보편적 기준’이라는 근거 없는 자료를 제시하는 것들이 이에 해당한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각국의 도로교통법은 차 대 차, 차 대 보행자의 통행방향만 규정할 뿐 보행자 대 보행자의 통행방향에 대해서는 규정하지 않는다. 규정할 실익도 없을 뿐 아니라 보행자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기 때문이다. 도로상에서 보행자는 보도, 횡단보도, 기타 보행자에게 허용된 공간에서는 어디로든 걸을 수 있다. 그 밖에 지하철 환승로와 같이 보행자의 충돌이 예상되는 곳에서는 좌측이나 우측으로 걷는 나라도 있고, 혼재 되어 있는 나라도 있으며, 지역에 따라 달라서 어느 쪽으로 걷는다고 꼬집어 말하기 어려운 나라도 있다. 그리고 이것은 통행방향의 우수성을 기초로 결정한 것이 아니라 관습이 굳어진 것이고,어떤 나라도 보행자의 통행방향을 바꾸거나 한 쪽으로 규제하지 않는다.

도로교통법 제8조 제2항에는 ‘보행자는 보도와 차도가 구분되지 않은 도로에서는 도로의 좌측 또는 길 가장자리 구역으로 통행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보도가 없는 도로에서의 차 대 보행자의 통행에 대한 규정으로, 안전을 위해 차를 마주볼 수 있는 방향으로 걸으라는 것이다. 따라서 좌측통행과 아무 관계가 없는 규정이고, 보행자의 통행방향이 좌측으로 유지되든 우측으로 변경되든 관계없이 존속될 규정이다.

필자로서는 오른손잡이는 우측보행이 더 편한 건지, 오른손을 쓸 수 있고 시계가 발달한 우측 눈을 사용할 수 있는 좌측보행이 안정감이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다만 이미 관습화되어 있고 통행방향이 바뀐다고 하더라도 도로상 보행에는 적용되지 않을 것이므로 변경의 실익이 없는 것을 왜 바꿔야 한다고 하는 걸까, 그리고 왜 그런 것에 대하여 세금을 들여 타당성을 검증하는 연구를 하도록 했을까 궁금하고, 그 관심과 열정이 놀라울 따름이다. 운전자에게 보행자 보호에 대한 규제와 교육을 강화하고, 보행자는 도로 어느 쪽으로든 걸을 수 있도록 하자고 주장한다면 교통안전 전문가로서 사명의식이 부족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