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딸이 제 방으로 들어와 원망했습니다. “아빠가 제 독후감 숙제를 망쳐놓았어요”라면서. 사연인즉 이렇지요. 자정 넘어 귀가했고, 이 녀석은 안 자고 있었지요. 갑자기 다정하게 변한 딸이 연필로 쓴 원고를 내밀었습니다. “너무 힘들고 졸려요. 컴퓨터로 이것만 좀 쳐줘요.” 지금이야말로 딸에게 점수를 딸 기회인데, 얼른 “오냐” 했습니다.
홀로 앉아 컴퓨터를 치다가, 영 어설픈 대목을 손질하고 문장 두 줄을 첨가했지요. 명색이 아비가 데스크를 봐줬으면 “아버님 감사합니다”라고 해야 할 터인데, 다음날 아침 불경스럽게도 “내 글을 다 망쳐놓았다. 기자라면서 글도 잘 못쓰고”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 순간 호통치고 쫓아버렸지만.
큰아들 녀석은 아예 일주일에 한번 논술 과외를 받습니다. “무슨 놈의 논술 과외냐. 글 쓰는 것까지 과외를 받나. 그저 신문사설을 베껴 적는 게 제일이다”라는 말을 툭 던졌다가, 세상 물정 모른다고 심한 야유를 들었지요. 녀석은 과외 선생이 어느 잡지에 기고했다는 글은 대단하게 여기면서, 아비의 글에 대해서는 별로 눈길을 주지 않습니다.
20년 전 신문사에 들어와, 처음으로 원고지 4장짜리 기명(記名)기사를 쓸 때였지요. 글은 원고지 한 장의 경계선을 넘지 못하고 뱅뱅 돌았습니다. 구겨진 파지(破紙)들과 담배꽁초만 쌓였지요. 하루 꼬박 썼지만 실패하고, 다음날 아침 일찍 출근해 다시 썼습니다. 그렇게 해서 처음 제 이름이 붙은 기사가 나갔던 기억이 납니다.
데스크들은 차례대로 볼펜과 만년필, 혹은 색연필로 제가 쓴 기사를 죽죽 긋고 첨삭합니다. 원고지는 너덜너덜 누더기 꼴입니다. 당초 자신이 쓴 글은 간데 없습니다. 오로지 ‘~다’라는 문장의 종결어미를 빼면 완전히 다른 글이 인쇄돼 있지요. 낯뜨겁지요.
중국 진나라 때 재상 여불위(�不韋)가 당대 일류 문객들을 동원해 ‘여씨춘추(�氏春秋)’를 집필한 뒤, 성문 위에 그 책과 천금(千金)을 내걸고는 “이 책에서 한 자(字)라도 더 할 수 있다면 천금을 가져가라”고 방을 붙였지요.
글로서 먹고 살려면 이 정도의 자존심은 있어야지요. 저는 이 대목을 읽을 때마다 ‘언제 저렇게 큰소리 한번 쳐보나’라고 부러워합니다. 과연 천금을 내걸었던 여씨춘추의 문장에 대해 시비하는 이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는 글이 완벽했던 게 아니라, 여불위의 권세가 두려웠기 때문이었다는 것이지요.
좋은 글은 여전히 난공불락입니다.
게다가 울적한 것은 과거에는 글의 힘에 대한 믿음이 있었지만, 나이가 먹을수록 글의 한계 앞에서 회의를 합니다. 요즘 세상에서 글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고.
우선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은 속임수 같은 것이지요. 역사를 돌아봐도 펜이 칼을 이긴 적은 없습니다. 칼에게 대부분 봉사했거나, 가끔 저항했을 뿐이지요. 그럼에도 “우리가 칼보다 강해”라는 믿음은, 칼을 쥐지 못한 일종의 심리적 보상일지 모릅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요즘 뉴스를 타고 있는 ‘청와대 386’이라던 정윤재 전 비서관만 봐도 칼의 힘을 알 수가 있지요. 그는 칼을 잡는데 끼여만 있었음에도, 주변에는 “밥 먹자”는 사람, “용돈 쓰시라”는 사람, “운동 한번 하자”는 사람들이 줄을 섭니다. 한낱 펜이 이런 칼의 힘에 어찌 겨룰 수 있을까요.
심지어 글은 말의 힘에도 못 미치지요. 선동적인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는 집권하기 전인 1924년 내란 혐의로 독일 남부 란츠베르크의 구치소에서 갇힌 적이 있지요. 거기서 쓴 ‘나의 투쟁’ 서문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것은 글보다는 언변이며, 이 세상에서의 위대한 운동은 모두 위대한 문필가가 아니라 위대한 연설가에게서 그 진전의 혜택을 입고 있음을 나는 알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도 말의 힘을 아는 분이었지요. 신문에서 수천 번 그의 정책과 측근 비리를 비판하는 글을 쓴들, 그는 자신의 일장 연설 한번으로 거의 모든 걸 날려보냅니다.
그래서 논술 학원, 논술 과외로 쫓아다니는 우리 아이들이 안 돼 보입니다. 그 귀한 시간을 너무 허망한 것에 매달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차라리 말 잘하는 기술을 대학 입시 과목에 채택하면 사회 생활에 도움이나 되지 않을까. 혹은 우리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치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글은 고통으로 쓰지만, “난 이제 지쳤어요. 땡벌!” “땡벌!” 후렴을 넣으며 노래를 부를 때는 그래도 행복하지 않습니까. 좋은 주말 보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