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의 가짜 박사학위 파문 이후 유명 인사들의 학력 위조와 관련된 폭로, 고백이 잇따르고 있다. 이들처럼 학력을 속인 것은 마찬가지지만 성격은 전혀 다른 사건이 얼마 전 있었다. 현대자동차 전주공장에서 4년제 대학 졸업자 5명이 고졸 학력으로 서류를 꾸며 입사했다가 해고된 것이다.
학력을 부풀린 게 아니라 축소한 것이 일자리까지 잃어야 할 정도의 잘못인지는 조금 의문이다. 1970·80년대의 ‘위장 취업자’처럼 다른 의도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단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학력을 낮춘 ‘생계형 위장 취업’일 뿐인데 ‘자격’이 넘쳐서 안 된다니 너무 야박해 보이는 것이다.
대학 나온 사람들이 고졸 일자리까지 빼앗으면 안 된다는 지적도 있긴 하다. 나름대로 일리는 있지만 대학진학률(전문대 포함)이 80%를 넘는 마당에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다. 과거 고졸 출신들이 주로 보던 9급 공무원 시험이 대졸자 차지가 된 지 이미 오래다. 은행 창구직(금전출납원) 모집에 석·박사 출신까지 몰린다는 세상이다.
대학 졸업자는 넘쳐나고 이들이 원하는 좋은 일자리는 모자란 데서 비롯된 이런 ‘학력 과잉’ ‘학력 인플레’ 현상은 본인은 물론 국가적으로도 큰 낭비가 아닐 수 없다. 대학 졸업장 가진 사람들이 번듯한 대기업 일자리만 찾는 바람에 중소기업들이 인력난을 겪게 되는 등 일자리의 수요와 공급이 어긋나는 데 따른 사회적 비용도 만만치 않다.
그렇다 하더라도 대학 나온 게 ‘죄’일 수는 없다. 정보화시대, 지식경제시대를 맞아 특히 고등교육의 중요성이 더 강조되고 있는 것이 요즘 추세다. 인적 자본의 질(質)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다. 그래서 뉴욕타임스지(紙)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세계는 평평하다’에서 ‘내 비전은 모든 미국인을 대학에 보내는 것’이라고 했다. 미국 미시간주는 지난 2005년부터 10년 내 미시간주의 대학 졸업자 수를 2배로 늘린다는 정책을 펴고 있다.
프리드먼의 시각으로 보면 한국의 ‘학력 과잉’ 문제는 별로 걱정할 일이 아니다. 대학 교육 확대에 따른 고급 인력 증가는 언젠가는 한국 경제의 도약을 위한 탄탄한 기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선진국 학자들이 한국의 고학력화 추세에 주목하면서 이를 한국만의 축복이라고 부러워한다는 말도 들린다.
그러나 한국의 대학 입시 열기를 대놓고 자랑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대학 졸업장을 쥐고도 일자리 없이 놀고 있는 청년 백수 집단은 본인과 가족의 불행일 뿐 아니라 국가적 부담이기도 하다. 지난 30년간 한국 경제 성장에서 교육이 기여한 몫을 분석해보니 중등교육과 초등교육은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렸지만 대학교육은 반대로 성장률을 깎아먹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이는 근본적으로 대학 교육의 질적 수준이 양적 팽창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탓이다. 기술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기업의 신입사원 선발 기준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데 대학은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해마다 수십만명의 대학 졸업생이 쏟아져 나와도 기업들은 쓸 만한 인재가 적다고 불만이다. 기업의 대졸 신입사원 재교육비만도 연간 4조8000억원이나 된다. 세계 최고의 대학 진학률이 한국 경제의 ‘멍에’가 아닌 ‘축복’으로 바뀌려면 먼저 대학이 달라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