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0시에 입구로 나가자 평소에는 늘 내려가 있던 차단기가 올라가 있었고 주차장에는 석 대의 승합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자주 하던 일인 듯 전혀 망설임 없이 차에 올라탔다. 차는 임로를 따라 내려가다가 2차선 포장도로로 접어들었다. 밖은 전형적인 수도권의 시골 풍경이었다. 들어올 때 봤던 마을 회관 쪽이 아닌 다른 길로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나는 오랜만에 보는 창밖 풍경을 열심히 바라보았다. 유리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아무래도 조금쯤은 긴장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차는 출발한 지 30분도 안 돼 언덕배기에 있는 거대한 물류 창고 건물 앞에 우리를 내려놓았다. 물류 창고는 말굽형으로 생긴 산줄기의 안쪽에 자리잡고 있었다. 일요일 오전인데도 불구하고 벌써 많은 차량이 주차돼 있었다. 우리는 차에서 내려 창고 건물 뒤쪽으로 걸어가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에 무전기를 들고 서 있던 남자 두 명이 장군을 보더니 반갑게 인사를 했다. 모두가 순조롭게 창고로 들어갔지만 나만 제지를 받았다. 새로 들어온 친구야. 앞서 가던 장군이 다시 와서 나를 데리고 들어갔다. 장군이 창고의 문을 여는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중앙에 거대한 전광판을 실은 차량이 있고 그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서 웅성대고 있었기 때문에 뉴스에서 보던 뉴욕이나 런던의 증권거래소의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전광판을 실은 차량은 아마 평소에는 길거리 광고나 선거 홍보 등에 쓰였음직한 개조 차량이었다. 또 어찌 보면 경기장에서 열리는 대중가요 콘서트 장 같기도 했다. 급조된 장비들과 모여든 군중, 여기저기 설치되는 조명들 탓에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조명에 불이 들어오자 창고 중앙에 있는 링이 모습을 드러냈다. 글쎄, 그것을 링이라 불러야 할지 무대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관객들이 모여 있는 것보다 조금 높은 곳에 사방이 트인 단상이 설치돼 있었다.
“우리는 저 뒤에서 준비를 하고 있을 테니까 한번 둘러보고 오든지.”
탱고가 선심 쓰듯 말했다. 장군도 그러라며 허락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유랑 서커스단에 갓 입단한 꼬마가 된 기분이었다.
“그럼 좀 둘러보고 올게요.”
사실 나는 이렇게 사람들로 북적대는 곳에 하도 오랜만에 와봐서 그것만으로도 약간 신이 나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거의 천 명은 돼 보이는 군중들이 웅성거리며 회장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일요일 오전에 파주의 빈 물류 창고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 있을 줄이야. 나는 군중들 사이로 스며들었다. 동행 없이 혼자 와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의 손에는 대부분 조악하게 인쇄된 신문 비슷한 것이 들려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그것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사람들 사이를 누비며 그것을 파는 아주머니들이 있었다. 내 손에 그게 들려 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한 아주머니들이 달려와 내게 그것들을 들이밀었다.
“예상지 안 사세요?”
예상지? 뭘 어떻게 예상하는 걸까? 가격은 생각보다 비싼 3천원이었다. 나는 한 부 사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아이스박스에 음료수를 담아 파는 사람, 핫도그나 김밥 같은 간단한 스낵을 만들어 파는 사람들이 곳곳에 포스트를 만들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축제적인 분위기처럼 보였지만 창고 전체에는 미묘한 긴장이 흐르고 있었다. 중앙의 전광판에는 곧 첫 게임이 시작될 것임을 알리는 고지가 출전자들의 명단과 함께 떠올랐다. 사람들이 짧은 탄성을 질렀다. 창고의 한쪽에서는 사람들이 줄을 서 뭔가를 사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편의점에서 로또를 사는 광경하고 비슷했다. 정해진 규격의 용지에 뭔가를 적어서 돈과 함께 판매대에 내밀면 ‘마권’과 교환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즉석에서 인쇄된 마권을 들고 자리로 돌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