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곧 노래’라는 서정시의 선율에 충실해 온 우리시대의 가객(家客) 정호승(57)과 이재무(49) 시인이 가을바람을 타고 새 시집을 읊는다. 정호승의 시집 ‘포옹’은 저 아득한 신석기 시대의 사랑에서 탄생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무대였던 이탈리아 북부 만투아 지역에서 포옹 상태로 발굴된 5000년 전 남녀 유골. 뒤이어 전남 여수시에서 4000년 전 나란히 하늘을 보고 누운 부부 유골이 발굴됐고, 조가비 팔찌를 찬 것이 인상적이었다. 시인의 영혼 속에서 두 장의 사진은 포옹해 하나로 겹쳐졌다.

‘푸른 하늘 아래/ 뼈만 남은 알몸을 드러내는 일이 너무 부끄러워/(중략)/ 사람들은 아무도 그들이 부끄러워하는 줄 알지 못하고/ 자꾸 사진만 찍고 돌아가고/ 부부가 차고 있던 조가비 장신구만 안타까워/ 바닷가로 달려가/ 파도에 몸을 적시고 돌아오곤 하였다’(47쪽)

▲ 화해와 포옹을 바라는 신의 뜻을 시로 전하는 정호승 시인(위)과 흐르는 물처럼 집착을 벗어난 사랑을 노래하는 이재무 시인.

오랫동안 봉인됐다가 느닷없이 발굴된 4000~5000년 전 연인들을 향해 시인은 영원한 사랑 운운하는 감상에 빠지기에 앞서 같은 인간의 입장에서 안타까워한다. 대중의 관음증에 노출된 연인들의 부끄러움을 느낀 시인은 차가운 파도로 낯뜨거운 얼굴을 식힌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대상을, 타자를 있는 그대로 그들의 입장에서 사랑하고 포옹하는 마음에서 나온다. 그렇게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죽은 벗, 땅에 떨어진 새, 뇌경색으로 쓰러진 아버지, 마루를 닦는 팔순의 어머니, 시각장애인, 물고기에 젖을 주는 여자 등등을 껴안는다. 그것은 자신을 낮추고 반성하는 생활태도에서 나온다. 늦은 오후 성당에 간 시인은 ‘모든 색채가 빛의 고통이라는 사실을/ 나 아직 알 수 없으나/ 스테인드글라스가 조각조각난 유리로 만들어진 까닭은/ 이제 알겠다/ 내가 산산조각난 까닭도/ 이제 알겠다’(15쪽)며 거대한 세상 속에서 미세한 파편에 불과한 자신을 절실하게 깨닫고 스테인드글라스의 환한 빛을 내뿜는 시 한편을 쓴다.

이재무 시인의 시집 ‘누군가 나를 울고 있다면’은 사랑과 이별 이후 상처의 숙성을 거쳐 진정한 사랑에의 눈뜸에 이르는 삶의 과정을 노래한 연시집(戀詩集)이다. 사랑을 소재로 한 25편의 신작시를 중심으로 기존 시집에 실렸던 연애시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사랑이 끝난 자리 추억의 뼈다귀에/ 악착같이 달라붙는 미련과 집착의 파리떼’(25쪽)가 시인에게 애증의 감정을 떠올리게 하면서 괴롭힌다.

그러나 시인은 ‘나날에 된장 바르고 회한을 쌈에 싸 입이 미어지도록 먹고/ 땡감처럼 떫은 그리움 베어먹다 뱉는다’(36쪽)며 실연으로 인한 영혼의 허기를 식욕보다 센 열정의 언어로 달랜다. 그런 시인의 풍모는 도망가는 파도를 붙잡지 못하지만, 시간의 풍화 작용 속에서 끝내 바다와 합쳐지는 해안의 벼랑을 닮았다. ‘철썩 철썩 매번 와서는 따귀나/ 안기고 가는 몰인정한 사랑아/ 희망을 놓쳐도/ 바보같이 바보같이 벼랑은/ 눈부신 고집 꺾지 않는다/ 마침내 시간은 그를 녹여/ 바다가 되게 하리라’(40쪽)

이재무 시인은 ‘때론 사랑은 찬란한 축복이 아니라 지독한 형벌’(35쪽)이라고 저주하지만, ‘어찌 슬프지 않으랴, 너는/ 열리지 않으면 존재조차 없는 것을’(78쪽)이라며 사랑의 황홀을 속삭인다. 이재무의 시에 따르면, 사랑에 매번 속더라도 매달릴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모든 삶은 사랑의 감옥에서 이뤄진다는 것이다. ‘달빛의 가시에 찔려/ 피 토하며 우는 새/(중략)/부질 없는 줄 알면서도 퍼올려도/ 호수의 바닥은 보이지 않고/ 퍼올려도 너는 호수를 떠나지 않는다/ 살아있는 동안 이 형벌로/ 나 괴롭고 즐거우리’(65쪽)

“물은 본래 소리가 없는데, 강바닥이 울퉁불퉁하면 물소리가 크다”고 한 이재무 시인은 “내 삶의 바닥이 고르지 못하면 나를 스쳐간 타자의 소리가 요란한 것이니 모든 실연의 원인은 내게 있는 것”이라며 집착에서 벗어난 사랑을 갈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