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패배를 통해 내일의 승리를 배워야 한다. 기량 발휘도 제대로 못한 17세 이하 청소년축구대표팀 선수들이 지난주 코스타리카전에서 패배한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지금 한국 축구는 '17세 미스터리'로 몸살을 앓고 있다. 2002 월드컵이 가져온 각종 혜택을 누리며 자란 첫 세대가 '맨 땅 세대'와 다를 바 없는 개인기 부족과 골 결정력 부재, 허술한 수비라는 이유로 좌절한 것이다. 기대에 못 미치는 플레이로 17세 이하 FIFA(국제축구연맹) 청소년월드컵 16강 진출에 실패한 청소년 대표팀 이야기다.

2002 월드컵을 전후로 한국축구는 외형상 환골탈태했다. 2001년 파주트레이닝센터가 생겨 적어도 각급 대표 선수들은 연중 사계절 잔디에서 훈련할 수 있게 됐다. 2003년 284면이던 전국의 잔디구장은 지난해 9월 614면으로 늘어났다.

프랑스와 네덜란드의 가장 좋다는 프로그램을 본 따 12세부터 15세까지 연령별로 체계적인 훈련을 받을 수 있는 유소년 육성 프로그램이 마련됐고, 코치들은 브라질과 네덜란드에서 1급 수준의 지도자로 모셔왔다. 지금 17세 이하 팀들이 바로 이 시기에 자란 세대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프랑스와 브라질에 축구 연수를 다녀오기도 했다.

17세 이하 팀은 박경훈 감독이 2004년 12월 사령탑을 맡으면서 2년7개월 동안 준비 기간을 가졌다. 이 기간에 스페인과 벨기에, 브라질에서 전지훈련을 했고, 호주와 일본 등지에서 열린 친선대회에 출전했다. '몸'에 좋다는 것은 다 해봤는데도, 결과는 타지키스탄과 시리아, 북한보다도 나빴다.

이런 투자와 효용의 극단적인 불일치는 결국 외형은 번듯해졌지만, 운용 회로는 구시대적이었기 때문에 발생했다는 의견이 많다. 2002월드컵 기술위원장이었던 이용수 세종대 교수는 "여전히 이기는 데 급급한 학원축구가 대세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어린 나이에 기본기를 다질 기회를 놓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번 대표팀의 경우엔 후반 20분만 되면 체력적으로 문제를 드러내 준비 과정에도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김호 대전 감독 등 지도자들은 장기적으로 선수들을 데려다 써야 하는 프로축구가 직접 유소년을 육성하는 시스템으로 가야 근본적인 해결책이 나온다고 말했다.

협회의 개혁 노력이 미흡하다는 지적도 거셌다. 안종복 프로축구 단장 협의회장은 "결국 인사가 만사다. 4강 신화는 거스 히딩크 감독이 한국 축구의 한계를 정확하게 인식한 위에서 준비한 결과였다"며 "이번 실패는 결국 적임자를 감독으로 뽑지 못한 데서 빚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축구협회가 기술위원회부터 제대로 된 사람들을 앉히려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준희 KBS 해설위원은 "'골짜기 세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번 대표팀엔 눈에 띄는 선수가 별로 없었다. 잘하는 선수가 없었던 것인지, 선수 선발에 문제가 있었던 건지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종화 태성고 감독은 "어린 선수들이 기본기도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프로 흉내를 낸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이 연령대의 선수들을 잘 관리하고 파악할 수 있는 지도자를 선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경훈 감독

모든 건 감독의 책임이다. (감독을 처음 맡았던) 2년7개월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이것만은 꼭 하고 싶다.

어떤 일이 있어도 더 많은 시간을 개인 전술(기본기) 훈련에 쓸 것이다. 수많은 전술적 준비를 했지만 가장 중요한 순간에는 결국 슈팅, 패스, 트래핑 같은 기본 능력에서 모든 게 결정됐다. 우리는 그게 이뤄지지 않았고, 결국 실패했다. 한국 축구는 대표 선수가 돼도 어린 시절 제대로 다지지 못한 기본기 때문에 늘 초보적 실수를 되풀이 한다.

일선 고교 감독으로 일할 때도, 마음속으로는 기본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다가도 막상 경기에 이기기 위한 훈련에 치중했다. 지금 학원축구 시스템으로는 눈앞의 승리를 위해 진득하게 개인기를 반복 훈련할 시간이 없다.

대 여섯 살부터 프로팀과 연계된 환경에서 기본기를 다지는 유럽 축구 모델이 한국 축구의 방향이 됐으면 한다. 이번 대표팀은 좋은 여건에서 자라 기량은 고르지만, 독특한 개성을 가진 선수들을 찾기는 힘들었다. 2년여 동안 이 연령대의 선수 172명을 테스트했지만, 이전처럼 드리블이나, 중거리 킥 등 특정 분야에 뛰어난 선수들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대표팀을 강하게 하기 위해서는 개성이 뛰어난 선수들이 더 필요하다.

어린 연령대일수록 심리적 동요가 강했다. 프로와 아마추어에서 오랫동안 경험을 쌓은 분들이 더 어린 나이의 선수들을 지도하는 게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7세 이하 대표 선수들이 앞으로도 국가대표를 향해 꿈을 키워가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