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총선에 영향을 주려는 세력의 음모가 있다."(그리스 정부 관리)

"산불을 위장해 토지용도 변경을 꾀하는 개발업자와 이를 방관해온 정부 책임이다."(환경단체)

그리스 사상 최악의 산불이 나흘째 이어지면서 27일까지 적어도 63명이 숨졌다. 주 피해지인 펠로폰네소스 반도 지역 등의 마을 40여 곳이 소개(疏開)되면서 이재민 수천명이 발생했다. AFP통신은 '150년 만의 세계 최악의 화재 중 하나"라고 표현했다. 그나마 우려했던 고대 그리스 유적지 올림피아는 소방 당국의 악전고투 끝에 다행히 불길을 면했다. EU(유럽연합) 회원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 소방 지원이 잇따르고있지만 강풍과 건조한 날씨 때문에 완전 진화에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총선 겨냥한 정치적 방화"

이번 산불은 엄청난 규모 외에도 원인과 책임을 둘러싼 공방도 가열되고 있다고 미국 일간지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CSM)가 전했다. 정부는 계획적인 방화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최근 한 달 새 화재가 3000건이나 발생했고 이번에도 하루 4곳에서 동시다발로 산불이 시작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것. 특히 9월 16일 총선을 앞두고 중도우파 정부를 흔들려는 세력의 소행으로 의심한다. 코스타스 카라만리스(Karamanlis) 총리는 이미 지난 25일 "극단주의자들의 소행"이라고 지목했다. 이 때문에 정부가 선거운동을 중단한 데 이어 선거 연기설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정부는 27일 방화범 체포에 도움을 주는 제보자에게 최고 100만유로(약 12억8000만원)까지 보상하겠다고 발표했다. 경찰은 나흘 새 방화 용의자 10명을 체포했다. 용의자 중엔 65세 여성과 77세 여성도 포함돼 있다.

◆"유명무실 그린벨트정책이 화근"

하지만 환경단체들은 정부의 환경정책 부재(不在)가 화를 불렀다는 입장이다. 법에는 삼림지역 개발금지 조항이 있지만 삼림지역이 구체적으로 어디인지를 획정해 놓지 않았기 때문에 규제 조항은 유명무실하다. 이 때문에 땅주인이나 개발업자들은 삼림지역을 개발하기 위한 방편으로 산불을 위장해 불을 지른 다음 용도변경에 나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그동안 이런 행위에 솜방망이만 휘둘러왔다고 그리스 삼림연구소의 한 연구원은 말했다.

정치인들 역시 개발을 바라는 유권자들 표를 의식해 몸을 사렸다. 그 결과 "선거에서 표를 행사할 수 없는 수목들만 희생당했다"고 세계야생기금(WWF) 그리스 사무소의 니코스 제오르지아디스(Georgiadis) 수석 삼림감독관은 지적했다.

하지만 이번 재앙이 그리스 전반에 환경의식을 고취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동안 그리스는 환경 문제에 있어서 EU 내 열등생이었다. 분리수거가 걸음마 수준에다 난개발이 횡행하고 환경보호 장치도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환경단체들은 지적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