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리옹 1480명, 베네수엘라 카라카스 1500명, 벨기에 브뤼헤 1950명, 스페인 바르셀로나 7000명, 멕시코 멕시코시티 1만8000명….

미국의 사진작가 스펜서 튜닉(Tunick·40)이 해당 도시에서 찍은 사람 수다. 그냥 찍은 게 아니다. 공공장소에서 모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로 찍었다. 튜닉은 지난 5월 멕시코시티 소깔로 광장에 1만8000명을 모아 놓고 나체 사진을 찍어 이 부문 자신이 세운 기네스기록 7000명(2003년 바르셀로나)을 경신했다. 1992년부터 지금까지 세계 50여 개국 남녀노소 6만명 이상이 튜닉 앞에서 옷을 벗었다. 누드 모습을 담은 사진과 비디오뿐만 아니라 촬영 과정 자체가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인식된 지 오래다. AP·AFP 등 외신은 촬영지를 따라다니며 튜닉의 예술활동을 취재하기 바쁘다.

튜닉은 그 많은 '누드 모델'을 어떻게 구할까? 그가 벗은 몸을 찍는 이유는?

모델은 100% 자원봉사… 인터넷으로 지원 받아

튜닉은 작품 활동을 하면서 누드 모델에게 한 번도 돈을 준 적이 없다. 스스로 벗겠다고 나선 아마추어 지원자들이기 때문이다.

튜닉은 1990년대 초반 뉴욕에서 작품 활동을 할 때 길거리에서 직접 전단을 돌려가며 지원자를 구했지만, 이제는 인터넷 홈페이지(www.spencertunick.com)를 통해 참가 신청을 받고 있다. 지원자가 이름과 이메일 주소, 거주 도시와 국가, 성별, 나이, 직업, 자신의 피부색 등을 입력하면 해당 지역에서 촬영이 이뤄질 때 안내 메일을 받고 참여할 수 있다. 세계 곳곳에서 촬영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지역 주민이 대부분이지만 여행객이나 외국인들도 메일을 받고 몰려든다.

누드 촬영은 일반인 눈을 피해 주로 동이 트는 새벽 4시부터 진행되며, 짧게는 10분에서 길게는 2시간 가량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위스 알레치 빙하 지역 촬영이나 미국 네바다 사막 촬영과 같이 혹독한 장소에서 작품 활동이 이뤄지기도 하지만 “예술을 위해”, “경험 삼아”, “심심풀이” 등 다양한 목적을 가진 지원자들은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다.

튜닉은 돈 대신 가로 25㎝×세로 20㎝ 정도 크기의 사진을 모델들에게 준다. 모두 튜닉의 친필 사인이 들어가 있다.

“인간 본성·신체의 나약함 드러내기 위해”

“분명 제 작품은 누드를 다루긴 합니다만, 누드라는 게 성적으로 보일 수도 있고 때로는 이라크 죄수들의 누드처럼 끔찍한 인상을 줄 수도 있습니다. …제 작품에서 몸은 공공장소나 현실 세계에 그대로 노출돼 인간 본성과 신체의 나약함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섹스(sex)나 성(sexuality)과 큰 관련성이 없죠.” (2004년 6월 美 인터넷포털 ‘쿨 클리브랜드’와 인터뷰)

튜닉은 인터넷에 올린 소개글에서도 자신의 작품은 “성(sexuality)을 강조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삶과 자유, 관능을 상징하며 우리의 사고를 전달하는 도구”로써 몸이 효과적인 수단이기 때문에 누드 사진을 찍는다는 것. 국립현대미술관 강승완 연구관은 “튜닉의 작품은 인체를 이용한 일종의 ‘설치미술(installations·소재를 개성적으로 나열해 작품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종합예술)’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튜닉의 작품 활동은 줄곧 논란을 일으켰다. 1994년 뉴욕 록펠러 센터에 설치된 2.4m 높이의 크리스마스트리에서 여성 모델을 누드로 촬영하다 경찰에 붙잡힌 것을 시작으로 공공장소에서 누드 사진을 찍는다는 이유로 뉴욕에서만 5번이나 체포됐다. 해외에서 작품활동을 할 때도 한 번도 구속된 적 없는 튜닉은 2000년 뉴욕시와 연방대법원까지 가는 소송 끝에 뉴욕 거리에서 누드 사진을 찍을 권리가 있다는 승소 판결을 얻어냈다.

이러한 튜닉의 단체 누드가 점점 더 생기를 잃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19일 영국 시사주간 이코노미스트 인터넷판은 누드 시위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생명력을 잃고 있다며 대표적으로 튜닉의 작품을 거론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수천 명까지 이르렀던 참가자들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고 대중의 관심에서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튜닉은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작품 활동을 하지 않았다. 영상물등급위원회 관계자는 “공개 장소에서 누드 공연을 한다며 외국 예술가가 공연 비자를 신청할 경우 (허가에)어려움이 많을 것 같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공공장소에서 단체 누드는 실정법상 허가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1967년 1월1일 뉴욕 미들타운에서 출생했다. 사진작가였던 아버지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사진기를 가지고 놀던 튜닉은 에머슨(Emerson)대학에서 미학을 전공하고 난 뒤 1992년 뉴욕 공공장소에서 누드 사진을 찍으면서 본격적으로 사진 작품 활동을 해 왔다.

현재 뉴욕에서 부인 크리스틀 핑크(38)와 2살짜리 딸 세다 문과 함께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