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가녀린 여자의 마음이 얼마나 많은 한과 슬픔으로 가득 찼기에 만리장성을 무너뜨렸을까”라며 소설‘눈물’을 쓴 중국작가 쑤퉁.

중국 소설 물결이 한국 문단에서 사품치고 있다. 문화대혁명을 기점으로 한 중국 사회의 격동기를 다양한 각도에서 반영한 중국 소설의 활달한 서사가 국내의 젊은 작가와 비평가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있다. 산업화와 양극화 문제를 고뇌하는 오늘의 중국 작가들은 현실과 소통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거침없는 상상력으로 재미있는 본격 소설을 쓴다는 점에서 한국 소설에 좋은 자극제가 된다는 얘기다.

장편 ‘허삼관 매혈기’의 작가 위화(余華)가 중국 소설 물결의 선두에 섰다면, 그 뒤를 이어 ‘쌀’ ‘나, 제왕의 생애’의 작가 쑤퉁(蘇童·43)이 벌써 수평선 위로 부상하고 있다. 이번에 나온 쑤퉁의 신작 장편 ‘눈물’은 현대소설과 민간설화의 환상적 결합을 통해 서사를 향한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거침없이 발산한 작품이다.

‘눈물’은 중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맹강녀’ 설화에 바탕을 둔 소설이다. ‘진시황의 만리 장성 공사에 징발된 남편을 찾아 나선 맹강녀가 남편이 이미 죽었다는 말을 듣고 성 밑에 쓰러져 울기 시작하자 열흘 만에 성이 무너지고 남편 유골이 나타났다’는 것이 맹강녀 설화의 핵심이다.

쑤퉁은 만리장성 앞에서 터진 맹강녀의 울음을 절망이 아닌 희망의 힘으로 재해석했다. 만리장성을 무너뜨린 민중의 눈물이 지닌 순수하고 숭고한 힘을 소설로 형상화한 것이다. 설화를 차용한 작가는 2000년 전의 여인 맹강녀를 불우한 운명의 여인 비누(碧奴)로 바꾸는 변화를 기반으로 자기만의 독특한 신화적 공간을 창조했다. 눈으로 눈물을 흘리는 것이 금지된 곳에서 여인들은 머리로, 귀로, 유방으로 눈물을 흘린다든지, 아들을 징발당한 맹인 할머니가 뗏목에 앉아 강을 오르락 내리락하며 울부짖다가 죽어 청개구리로 환생하거나, 전생에 조롱박이었다는 주인공 비누(碧奴)가 무당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남편을 찾으러 가는 모험을 펼친다. 쑤퉁의 기발한 상상력은 마술적 리얼리즘의 소설 ‘백년 동안의 고독’을 절로 떠올리게 한다. “신화의 창조자들이 있는 그곳에서 세상은 간결하고도 따뜻한 곳이 되고, 삶과 죽음은 솔직하고 소박한 해답을 얻습니다”고 한 작가는 “그 속에서 우리는 냉혹한 현실문제들에 대한 대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며 신화적 상상력의 영원회귀를 강조했다.

중국 소설 열풍은 대륙에서만 불어오는 것이 아니다. 미국과 유럽에서 현지어로 창작하는 중국계 작가들의 파워도 대단하다. 현재 보스턴대학 영문과 교수인 하진(Ha Jin 金哈·51)은 오늘의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꼽힌다. 이번에 번역된 장편 ‘기다림’은 전미도서상(1999년)과 펜 포크너상(2000년)을 수상한 하진의 대표작이다.

‘기다림’은 문화대혁명 기간 중 두 여자 사이에서 방황했던 한 의사의 실화를 통해 전통과 현대 사이에서 갈팡질팡한 중국 사회를 그린 소설이다. 시골 출신의 군의관 린은 병든 부모님의 뜻에 따라 시골 여인과 원치않는 결혼식을 올린다. 도시의 군병원에서 일하는 그는 아내를 시골에 둔 채 떨어져 산다. 사실상 17년 동안 별거하면서 그는 병원에서 만난 현대적인 여성 간호사와 사랑에 빠져 부부나 다름없는 관계를 유지한다. 그러나 본처가 이혼을 거부하기 때문에 그는 간호사와 정식 결혼을 올리지 못한 채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다. 결국 그는 아내와 이혼하는 데 성공하지만 또 다른 운명의 장난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이미 국내에 번역된 단편집을 통해 잘 알려진 하진 특유의 소설적 반전과 생의 아이러니, 인간에 대한 연민과 사회비판적인 블랙유머가 뒤엉키면서 웃음과 탄식을 번갈아 가며 불러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