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이 도난 문화재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도록 문화재보호법을 7월 27일자로 개정했다. 도난 문화재인 줄 모르고 문화재를 샀어도 몰수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 법령이 시행되기 하루 전인 7월 26일, 헌법재판소는 ‘도난 문화재인 줄 모르고 샀던 경우까지 몰수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도난 문화재의 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국내 문화재 도난 사건 중 가장 ‘엽기적’이었던 것으로는 1967년 ‘국보 119호 연가7년명 금동여래입상’ 도난 사건이 꼽힌다. 이 해 10월 24일 오전 10시쯤, 덕수궁미술관 2층 제3 전시실 진열장 안에 있던 국보 119호 불상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범인은 진열장 안에 다음과 같은 메모를 남겼다. ‘문화재관리국장(당시 하갑청국장)께 알리시오. 오늘 24시 안으로 반환한다고. 세계신기록을 남기기 위해. 타인에게 알리거나 약은 수작 부리다가 죽은 자식 ○○ 만지는 격이 되지 말고…. (오전) 11시경에 국장님께 알리겠습니다. 지문 감정 따위는 필요 없을 것이외다.’

즉시 경찰에 신고됐지만, 범인은 오리무중이었다. 이날 오전 11시30분쯤. 하 국장 집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미안하다, 돌려주겠다”는 이야기만 남기고 일방적으로 끊었다. 이런 말을 되풀이하는 전화가 오후 3시와 6시에도 왔다.

이날 밤 11시5분쯤. 다시 하 국장 집으로 전화가 왔다. “한강철교 제 3 교각 16번과 17번 침목 받침대 사이 밑 모래밭에 묻었으니 찾아가시오.”

하 국장은 경찰에도 알리지 않은 채 한강으로 차를 몰았다. 불상은 비닐봉지 안에 잘 쌓인 채 모래 속에 묻혀 있었다. 그러나 범인은 끝내 잡히지 않았다.

강원도 고성 건봉사 사리탑 도굴 사건도 유명하다. 1986년 봄 어느 날, 조계종 총무원 직원 A씨 꿈에 부처님이 나타나서 “건봉사 사리가 도굴 당했다”고 알려주었다. 너무나도 생생한 꿈이어서 A씨는 건봉사를 찾아갔고 즉시 도굴 사실을 문화재관리국에 신고했다. 수사가 한창이던 어느 날, 문화재관리국 사범단속반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50대로 추정되는 남자였는데 “건봉사 도난 사리가 서울시 관악구 봉천동사거리의 ‘○○파크호텔’에 있다. 그 호텔 프런트에서 강원도 신흥사 ○○스님이 맡겨둔 약을 달라고 하면 사리를 돌려줄 것이다”라며 끊었다.

사범단속반원들이 호텔에 갔을 때, 찍개(스테이플러)로 꼼꼼하게 찍어서 삼중으로 포장한 누런 꾸러미 안에 도난된 사리가 있었다.

1927년 11월 10일 밤 벌어진 경주박물관 금관총 도난 사건은 ‘도난품 단가’로는 가장 비싼 것이었다. 범인은 유물 진열실 자물쇠를 부수고 요즘 돈으로 최소한 100억원이 넘는 순금제 허리띠와 순금제 허리띠 장식, 귀고리, 팔찌, 반지 등을 몽땅 가지고 갔다. 다급한 경찰은 “1천 수백 년 전에 만든 금세공품은 아무리 녹여도 요즘 금과 달라서 곧 알아볼 수 있다”고 소문을 냈다. 당시로서는 ‘고도의 심리전’을 편 셈이다. 그러나 6개월이 지나도 범인은 찾을 수 없었다. 1928년 5월 20일 새벽, 경주 시내에서 변소를 치던 노인이 경찰서장 관사 대문 앞에서 이상한 보따리를 발견했다. 금관총 도난품이었다. 이 사건 역시 범인은 끝내 잡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