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에서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정상회담 의제에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사회 일각에선 이에 대한 반대 여론이 거세다. 이재정 통일부 장관이 “NLL은 영토가 아니라 안보 개념” “서해교전은 방법론에서 우리가 한 번 더 반성해야 할 과제”라고 발언하자 군(軍)과 서해교전 유가족 등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우리 안보에서 NLL은 어떤 의미가 있고 NLL 문제를 풀 해법은 무엇인가? 1999년 6월 연평해전 당시 북한의 열 흘간에 걸친 NLL 무력화 시도와 선제(先制) 공격에 맞서 NLL을 지켜낸 조성태(趙成台·65·사진) 당시 국방장관(현 열린우리당 의원)을 18일 오후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정상회담 의제와 관련해 NLL 문제가 논란을 빚고 있다.

"NLL을 정상회담 의제에 포함시켜선 안 된다. NLL은 비무장지대(DMZ)의 군사분계선과 같은 영토 문제인데 의제에 올리면 북한 주장에 끌려가 북한에 양보할 가능성이 있다. NLL은 향후 남북 국방장관회담 등에서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재정 장관은 NLL이 영토 문제가 아니며, 서해교전 방법론에서 우리가 반성할 과제라고 했는데.

"잘못된 얘기다. 우리가 반성할 것도 없고 이 장관은 잘못된 발언에 대해 국가와 국민과 군에 엄중히 사과해야 한다. 50년 이상 남북 간의 실질적 해상 경계선 역할을 해왔다. 북한이 의도적으로 몇 차례 무력화하려는 군사 도발을 시도했으나 우리가 군사력으로 수호해온 것이다. 이 장관의 말은 영토가 무엇인지, 안보가 무엇인지, 영토를 지키기 위한 군사행동이 무엇인지를 구분하지 못하는 유감스러운 표현이다."

―북한은 NLL을 유엔사가 일방적으로 그었기 때문에 인정할 수 없다고 하는데.

“NLL은 1953년 8월 30일 유엔군사령관이 한반도 해역에서 남북 간 우발적 무력충돌을 예방하고 정전(停戰)체제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설정한 해상 경계선이다. 그러면서 당시 제공(制空)·제해(制海)권을 장악하고 있던 유엔군이 백령도 등 서해 5도를 제외하고 황해도 육지와 근접한 섬의 통제권을 북한에 양보, 북한으로선 기대 밖의 소득을 거뒀다. NLL은 북한으로선 고마운 선이었던 셈이다. 그 뒤 북한은 1984년 수해 물자 인도 등 지난 50여 년 동안 의도적인 몇차례의 도발을 제외하곤 NLL을 사실상 인정하고 준수해왔다.”

―연평해전 때 어떤 자세로 NLL을 지켰나.

“당시 정부는 네 가지 원칙 아래 NLL을 사수토록 방침을 정했다. 첫째, 어떤 경우에도 우리 영토인 NLL을 지킨다는 것이다. 둘째, 북한 함정이 NLL을 침범해 남하하면 강제로 밀어내서라도 NLL을 지킨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선제 공격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셋째, 그런 상황에서 북한이 먼저 공격하면 가차 없이 우리도 응징한다는 것이다. 네 번째, 우리가 응징 사격에 들어가더라도 확전(擴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북한이 함정으로 공격하면 우리도 함정만으로 대응하고, 지상 화포 공격을 하면 우리도 지상 화포 공격을 한다는 것이다. 북한이 공군기를 동원했을 때는 우리도 공군기로 대응하지만 우리가 먼저 전선을 확대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당시에 확전 위험성은 없었나.

“1999년 6월 7일부터 6월 15일까지 북한 함정들이 최대 NLL 남쪽 10㎞까지 내려와도 우리는 끝까지 참았다. 6월 15일 북한 함정이 선제 기습 공격을 해 연평해전이 시작됐지만 북한 지상군 화력이나 공군이 동원되지 않아 더 이상 확전되지는 않았다.”

―당시 정부의 4대 원칙이 햇볕정책 때문이라는 비판도 있다.

“정부의 4대 원칙은 손자가 말하는 이른바 ‘부전이굴인지병 선지선자’ (不戰以屈人之兵 善之善者), 즉 싸우지 않고 적을 이기는 것이 최선이라는 기본원칙 아래 부득이 싸워야 한다면 최소의 전투로 목표를 달성하고자 한 차선책이었다. 우리가 먼저 공격하는 것이 적절치 않은 상황에서 궁여지책으로 만들어진 것이 밀어내기(북한 함정의 선체를 우리 고속정이 부딪쳐 막은 것)였고 결과적으로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본다.”

―2002년 서해교전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는가.

“당시 월드컵이 한창 진행 중이었는데 세계적 축제가 이뤄지는 와중에 북한 함정이 설마 공격하겠는냐는 (군 지휘부의) 안이한 인식이 서해교전을 초래한 측면이 있다고 본다. 또 작전 측면에서도 직접 교전한 함정을 제외한 지원함정의 운용과 대처가 소홀했던 것 같다.”

―연평해전과 서해교전이 NLL 성격에도 영향을 끼쳤는가.

“두 차례의 교전을 통해 NLL의 영토적 성격이 더욱 강해졌다고 볼 수 있다. 남북 모두에 NLL이 해상 경계선으로서 중요하다고 입증되는 계기가 됐다.”

―북한은 NLL을 대체할 새로운 해상경계선을 계속 주장하고 있는데….

“연평해전 이후 내가 장관으로 있을 때인 1999년 남북 장성급회담에서 북한은 새로운 해상경계선을 주장했는데 한마디로 수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서해 5도에 좁은 통항로만 내고 주변은 모두 북한 해역으로 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서해 5도를 모두 북측에 넘겨달라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북한이 주장하는 공동 어로 수역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북한 주장은 우리로선 수용할 수 없다. 그러나 몇 가지 전제조건이 충족된다면 공동 어로 수역은 가능할 것이다. 우선 북측이 NLL을 해상경계선으로 인정하겠다는 공식 입장을 밝혀야 한다. 그 뒤 NLL을 중심으로 남북 모두 똑같은 면적의 공동 어로 수역을 NLL 남쪽과 북쪽에 각각 설정하고 이 수역에는 남북 어선만 일정 규모 내에서 조업토록 허용하는 안이다. 우발적 무력 충돌을 막기 위해 남북 함정은 외곽 경계만 하고 어로 수역 내 출입은 통제하는 것이 좋겠다.”

―NLL 문제에 대해 정부에 조언을 한다면.

“연평해전 직후 서해 해군력을 보강하고 당시 개발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K-9 자주포들을 백령도에 긴급 배치했다. 사정거리 40㎞인 K-9 자주포는 해주를 사정권에 넣을 수 있는 신형 무기여서 북한의 추가 도발을 억제하고 유사시엔 북한 지상화력을 확실히 제압하기 위해서였다. 실제 사격훈련도 여러 번 했는데 북한도 이를 감지했는지 조용히 있었다. 반면 2001년 7월 북한 상선이 제주해협을 불법으로 통과할 때는 우리 해군이 북측에 사정하듯이 ‘정지해 검문에 응해달라’고 요구하는 교신내용이 공개돼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그뒤 북한은 서해교전을 일으켰다. NLL 문제는 한번 양보하면 한 없이 무너질 수 있는 것이므로 원칙을 가지고 단호히 대처해 나가야 한다고 본다.”

조성태 前 장관은 

육사 20기 출신으로 정책 분야와 야전 지휘관을 두루 거쳤다. 1군단장, 국방부 정책실장, 2군사령관 등을 지낸 뒤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9년 국방장관에 발탁됐다. 그해 우리 국방장관으로는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했으며 2000년 사상 첫 남북 국방장관회담 남측 대표로 김일철 인민무력부장을 만났다. 북한 핵문제 해결 뒤 전시작전통제권 이양문제를 추진해야 한다는 초당적 의원 모임인 ‘국회 안보와 동맹 연구포럼’의 산파역을 맡아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