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 6월 서울의 사회단체 대표들은 쑨원(孫文) 서거 100일을 맞아 추도회를 계획했다. 중국 혁명의 아버지로 꼽히는 쑨원 추도회를 내세웠으나 실은 상하이에서 일어난 반제(反帝)운동인 5·30운동을 지지하기 위한 모임이었다. 일제는 민족주의와 반제국주의를 주장한 쑨원을 추도하는 모임이 반일(反日)의식을 고취할까봐 집회를 금지했다. 당시 조선일보 주필이던 안재홍은 “현재 중국의 동란은 자못 천하를 들끓게 하고 있는데 인접한 한국에서 중국에 관한 군중집회 개최를 불허한다는 일본 경찰 당국의 조치는 바야흐로 정치 그 자체를 전면적으로 금지한다는 것이다”라고 썼다가 신문이 압수당하기까지 했다. 1920년대 한국인에게 쑨원은 일제 침략을 비판하고 민족 독립을 요구하는 수단이자 방안이었던 것이다.

중국 현대사 연구자인 배경한 신라대 교수는 중국 대륙과 타이완 양쪽에서 최고의 위인으로 추앙받는 쑨원과 한국과의 관계를 다루면서 한국인 연구자로서의 독자적 시각을 펼쳐낸다. 쑨원과 한국 독립운동가들과의 관계를 추적하고, 식민지 한국의 독립에 대한 쑨원의 인식과 태도를 밝히면서 당대 한국인들이 쑨원을 어떻게 바라봤는지를 검토한다.

▲ 2001년 10월 9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신해혁명 90주년 기념대회에서 장쩌민(앞줄 가운데) 당시 국가주석 등 중국 정치 지도자들이 쑨원의 대형 사진 아래 서 있다.

한인 독립운동가들은 1911년 신해혁명으로 청조가 무너지고 공화정이 들어서자 쑨원과 혁명파의 활동을 주목했다. 상하이 임시정부 국무총리 신규식은 1921년 9월 쑨원이 이끌던 광둥 정부를 방문, 곧 열릴 워싱턴회의에서 상하이 임시정부를 지지해 줄 것을 부탁하기도 했다. 쑨원의 민족주의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약소민족에겐 자신들의 입장을 옹호해줄 수 있는 주장으로 기대를 모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쑨원은 우리 독립운동가들과 생각이 달랐다. 신규식의 방문을 맞아 광둥 정부는 임시정부를 사실상 승인하고, 비상국회에서 한국독립승인안을 통과시키는 성의를 보였다. 그러나 쑨원은 신규식과의 회담에서 한국 독립을 지지하는 근거로 1895년 청·일전쟁 직후 체결된 시모노세키 조약을 들었다. 청나라가 이 조약에서 조선의 독립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쑨원이 시모노세키 조약에 집착한 것이 혹시 중국이 한국에 대해 종주권을 행사하던 상황(또는 종주권의 회복)을 염두에 둔 것과 관련이 있지 않는지 캐묻는다.

그리고 쑨원이 신해혁명 과정에서도 몽골같은 주변 약소민족이 중국에서 독립하려는 주장을 반대한 이력을 들춰낸다. 쑨원은 한국이나 필리핀, 베트남을 포함한 주변 약소민족들의 영토를, 되찾아야할 중국의 영토로 간주하는 발언을 여러 차례 하기도 했다. 쑨원 역시 전통적 중화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쑨원이 1924년 11월28일 일본 고베에서 한 ‘대(大)아시아주의’ 강연은 그의 반제·민족주의의 한계를 보여준다. 그는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러시아를 이기고 새로운 열강이 된 이후 일본은 아시아 약소민족들의 희망이 되어왔다”고 했다. 쑨원은 이어 중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아시아 민족들의 연합을 내세웠다. 한국의 독립이나 일본의 한국 지배에 대한 비판은 쏙 빠졌다. 쑨원은 당시 일본의 지원을 끌어내기 위해 고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안재홍은 쑨원의 아시아연합 주장은 워싱턴 회의 이후 영미 중심의 아시아 정책에 대한 중·일 중심의 대응책으로 보면서도 “그의 민중적 대지도자라는 자격으로 보아 (대아시아주의를 주장한 것은) 시기적으로 적절치 않은 경솔한 행동이었다”고 평가했다.

박은식도 쑨원과 중국에 대해 객관적 시각을 확보한 지식인이었다. 그는 한국 독립을 위해 중국의 원조를 얻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만일 중국이 강성해진다면 교만해질 것이며 (한국에 대한) 야심이 생겨 (중국의) 동정은 얻을 생각도 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저자가 밝혔듯, 쑨원과 한국의 관계를 연구한 기존 연구들은 쑨원이 한국의 독립운동을 지지했다거나 중국 내 한인 독립운동가들과 밀접한 관계를 지녔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쑨원의 친(親) 일본적 경향과 중화주의를 밝혀낸 이 책은 쑨원에 대한 호감을 갖고 있던 독자들을 불편하게 만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20세기 전반을 살았던 박은식과 안재홍은 이미 쑨원과 중국의 역할에 대해 냉정한 시각을 갖고 있었다. 이런 당대 한국인들의 인식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중국에 익숙하면서도 중국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주변적 시각이 국내 지식사회와 세계 학계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연구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