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독특한 택시 기사들이 있다. 1980년대 제주에 신혼여행을 다녀온 부부라면 용두암에서 촬영한 사진 한 장쯤은 갖고 있을 법하다. 대부분 제주 택시 관광가이드가 찍은 사진들이다. 제주 공항에서 다이너스티 고급 택시에 오르니 택시 기사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앞좌석에 꽂혀 있는 그의 명함이 눈길을 끌었다. ‘Photo Artist 강창우’. 제주에서 23년째 택시 기사로 일하고 있다는 강창우(46)씨는 1984년부터 지금까지 신혼부부 관광을 맡아온 ‘베테랑 가이드’다. 미끄러지듯 차가 출발했다. 그의 이야기 주머니가 슬슬 열렸다.

1980년대    신랑은 양복, 신부는 한복 입고 "나 잡아 봐~라"
손도 못 잡고 뽀뽀만 시켜도 얼굴 빨개지고    "아들 낳는다" 속설에 돌하르방 코 닳도록 만져

2000년대

간편한 차림에 신부는 과감한 노출  주변시선 의식 않고 키스 ‘척척’ “딸이 좋다” 돌하르방 콧구멍에 손가락 넣어

싸운 커플은 정방폭포로 데려가 미끄러운 바위 때문에 손 잡아주다 화해

“1980년대 신혼부부는 보통 2박3일로 제주를 찾았어요. 공항에서 픽업해서 제주의 이름난 관광지를 두루 구경시켜 주는 게 제 일이죠. 일정을 마치고 밝은 표정으로 제주를 떠나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마음이 좋을 수가 없어요. 당시엔 필름 카메라를 썼는데, 신혼부부 한 쌍을 모델로 보통 사진을 150컷에서 200컷 정도 찍습니다. 많이 찍다 보니 사진기술이 늘어서 작은 공모전에서 입상도 했어요. 대단한 상은 아니지만….”

갖가지 관광정보가 넘쳐나는 요즘이지만 입소문을 듣고 강씨를 찾는 신혼부부가 적지 않다. 봄·가을 결혼시즌에는 매주 두 쌍이 찾아와 일주일 스케줄이 빠듯하다. 여름과 겨울에도 일주일에 한 쌍 정도는 강씨를 찾는다. 그의 얘기가 ‘신혼부부 비교연구’로 넘어갔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요즘 신혼부부가 다 달라요. 우선 옷차림새가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신랑은 정장을 입고 신부는 분홍색 한복을 입고 다녔어요. 당시 결혼한 부부라면 해변에서 한복을 입고 뛰는 사진 한 장쯤은 모두 갖고 있을 걸요? 요즘 그런 신혼부부는 싹 사라졌어요. 한동안은 옷을 똑같이 맞춰 입는 게 유행이더니, 이젠 편안한 차림새가 대부분이에요. 참, 애정표현도 한층 대담해졌어요.”

애정표현이 대담해졌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요즘 신혼부부는 남들이 보든 안 보든 스스럼없이 입을 맞춘다. 예전에는 보는 사람이 민망하고, 하는 사람이 어색했지만 요즘은 자연스런 풍경이 됐다.

“1980년대엔 연애결혼한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중매로 만나 후다닥 결혼해서 식을 올리고 제주에 내려오면 분위기가 참 어색했지요. 서먹한 분위기를 깨는 것도 제 일이죠. ‘손 잡아라’ ‘뽀뽀해라’ 몇 번을 말해도 얼굴만 빨개지고 말을 안 들어요. 그런데 하룻밤 지난 뒤 다음날 모시러 가면 연애결혼한 사람 모양 손을 꼭 잡고 나와요. 요즘 친구들은 카메라를 들이대면 알아서 입을 맞추고 손으로 하트를 만들고…. 알아서 척척이에요.”

강씨는 2002년 한 방송국이 마련한 전국사투리경연대회에 제주 대표로 참여한 적이 있다고 했다. 오리지널 제주 사투리로 신혼부부를 즐겁게 하는 일도 업무의 한 부분. 좁쌀로 만든 막걸리를 ‘조껍데기 술’이라고 하는데 좀 강하게 발음하면 신혼부부가 무척 재미있어 한단다. 첫날밤을 보내고 나온 커플에게 “어제 폭삭 속았수다”라고 해도 비슷한 반응. 제주 말로 ‘수고 많았다’는 뜻을 ‘(힘든 밤을 보내) 폭 삭았다’로 잘못 알아들어 배를 잡고 웃는다는 것이다. 그는 ‘남아선호 열풍’의 증거가 제주에 있다고 설명했다.

“천지연폭포 앞 돌하르방의 코를 만지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이 있어요. 예전에는 신부들이 대부분 코를 잡고 사진을 찍었죠. 요즘은 딸을 낳겠다고 돌하르방 콧구멍에 손가락을 넣는 흉내를 내더군요.”

강씨는 택시 관광을 하면서 보람을 느낄 때도 적지 않았다고 했다. “신혼여행 때 모신 부부가 15년 지나서 초등학교·중학교 다니는 아이들을 데리고 왔는데 정말 반갑데요. 또 한 번은 70대 노부부를 모신 적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 점잖은 할아버지께서 산악오토바이를 타시더니 너무 재미있어 하시는 겁니다. 신나게 타시는 모습이 그 연세가 믿기지 않을 만큼 에너지가 느껴졌습니다.”

포텐샤 택시를 모는 전태경(53)씨 역시 21년 경력의 택시 관광 베테랑이다. 그는 10여년 전 모신 맹인부부를 잊을 수 없단다.“둘 다 짙은 색안경을 끼고 흰 지팡이를 짚고 있었죠. 참 난감하더군요. 남편은 ‘아내의 소원이 제주 관광’이라면서 상세한 설명을 부탁했어요. 성산 일출봉으로 모시고 갔죠. 왕관 모양이고 봉우리는 99개고 옆에는 파란색 바다, 반대쪽에는 녹색 잔디가 펼쳐져 있다고 그림을 그리듯 자세하게 설명했어요. 정상에서 사람이 구르기 시작하면 아래까지 멈추지 않고 굴러 내려온다고 말씀 드리니 두 분이 활짝 웃으셨어요. 그때 환하게 밝아지는 부부의 표정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두 분 모두 지금 어딘가에서 잘 살고 계실 거예요.”

신혼여행 길에 싸우는 부부도 많다고 한다. 강창우씨는 8년 전 만난 한 충청도 부부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신혼부부가 와서 싸우면 꼭 정방폭포에 데리고 가요. 미끄러운 바위가 많아서 부부가 서로 손을 잡아주면서 가야 하거든요. 그날도 서로 고집을 부리며 티격태격하기에 정방폭포로 핸들을 꺾었죠. 아 근데, 미끌미끌한 바위를 위태위태 걸어가면서도 신부가 절대 신랑 손을 안 잡는 거예요. 결국 신부가 넘어지더니 앞니 세 개가 똑 부러졌어요. 오죽하면 제가 신랑한테 귓속말로 ‘같이 살면 정말 고생하겠다’고 했겠어요. 가끔 그분 전화가 오는데 지금도 잘 살고 있답니다, 허허.”

디지털카메라와 자동차 내비게이션의 보급으로 개인택시 관광은 예전만큼 인기가 높지 않은 형편이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카메라가 있는 관광객이 많지 않아 택시 가이드의 고급 카메라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택시기사들은 집에 암실까지 갖추고 있어 흑백사진은 직접 현상해서 보내주기도 한다. 강창우씨는 “디지털카메라가 보급된 후에는 포토샵 작업을 해야 하는데 이 때문에 일이 두 배 이상 많아졌다”고 했다.

“포토샵 작업을 하지 않으면 작업한 경우에 비해 사진의 느낌이 두 배 이상 떨어집니다. 제주의 바다 색깔, 하늘 색깔을 더 잘 표현하려면 포토샵 작업을 해야 합니다. 우습게도 포토샵으로 작업을 해야 더 현장감이 나거든요. 디지털카메라는 여러 모로 불편한 기계인데, 이제 시대가 변했으니 택시 관광 가이드도 따라가야죠. 가끔 기계를 잘못 만져 촬영한 사진이 모두 삭제된 경우도 몇 번 있었습니다. 그럴 땐 손님에게 원망을 많이 받죠. 정말 죄송하고요.”

요즘은 제주를 찾아도 자동차를 빌려 둘만의 오붓한 여행을 하는 커플이 많다고 했다. 저렴한 가격 공세를 펼치는 동남아와 중국 관광지에 밀려 제주를 찾는 사람이 점차 줄고 있다고도 했다. 택시 관광의 장점을 묻자 전태경씨는 “제주 곳곳의 보물 같은 관광지와 최고의 맛집을 우리만큼 속속들이 잘 아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제 제주를 찾는 손님은 그냥 유명 관광지를 둘러보는 관광에서 직접 체험하며 둘만의 시간을 가지는 관광을 더 선호합니다. 둘만의 시간을 가지려는 신혼부부들은 택시 가이드를 원하지 않는 게 당연하죠. 그래서 우리는 택시 가이드와 함께 여행을 하는 손님에게 제주에 대한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 드리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관광 책자에 나와있지 않은 곳, 제주도 사람만 알 수 있는 비밀스런 관광지로 손님을 모시는 것입니다.”

강창우씨는 산방산 용머리 해안, 성산 일출봉, 구좌읍 용눈이 오름을 제주의 최고 관광지로 꼽았다. 최고의 사진 포인트를 묻자 ‘영업 비밀’이라며 웃었다.

껍질만 불에 살짝 익힌 회를 파는 모슬포 근처의 식당, 1만원이면 생 전복죽을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성산포 섭지코지의 음식점은 꼭 들르는 코스라고 했다. 전태경씨는 서귀포 파라다이스 호텔의 허니문 하우스 정원이 아름답다고 추천했다. 잔디도 좋고, 야자수 나무도 예쁘게 가꿔져 있다고 한다.

1300㏄ 포니2로 신혼부부 택시 관광을 시작한 강창우씨. 그랜저 2.0을 거쳐 지금 애마(愛馬)는 다이너스티 2.5 차량이다. 20여년 전 하루 4만원이던 택시관광 요금이 1997년에 10만원 선까지 올랐지만 지금도 그대로다. 포텐샤택시의 경우 가격은 8만원 선이다. 전태경씨는 프린스 택시를 몰다 포텐샤로 바꿨다. 관리를 잘 하면 차는 10년 이상 문제 없이 몰 수 있다고 한다. 강창우씨는 직접 홈페이지(www.taxiro.co.kr)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강창우씨의 도움을 받아 전태경씨도 홈페이지(www.happytaxi.net)를 운영하고 있다. 홈페이지에서는 이들이 촬영한 신혼부부 사진과 이들 가족의 화목한 사진도 구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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