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28~30일 평양 정상회담은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회담 이후 7년 만의 일이다.

그동안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지 못한 것은, 첫째로 북한이 핵무장을 고집하는 한 한국이 대북문제에서 앞서 나갈 수 없다는 고려, 둘째로 북한의 존재양식에 따른 의전상의 문제 때문이었다. 최근에 이 두 문제를 둘러싼 분위기가 어느 정도 풀리기 시작했기 때문에 정상회담이 가능하게 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북한이 핵무기에 그렇게 집착하는 것은, 핵무기를 단순한 무기로만 보지 않고 ‘핵을 소유함으로써 국가(북한)의 위치를 확고히 할 수 있다’는 인식이 강하게 작용했다고 본다. 그럼으로써 대미 방어를 확보할 수 있고 한반도 통일의 주역을 독점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핵무기가 전략이론에서처럼 어느 핵무장 국가든 다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미국으로 하여금 NPT(핵확산금지조약) 체제를 바탕으로 북한에 압력을 가중하게 했다.

둘째로 북한은 남한에 대해 북한에서 실행하는 의전 절차를 모두 받아들이라고 강력히 요구함으로써 양국 관계를 필요 이상으로 긴장되게 만들었다. 물론 북이 대남관계에서 의전을 중요시하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서는 의전이 의전이 아니라 훨씬 그 이상의 것이기 때문이다. 가령, 김일성 주석의 시신이 있는 금수산궁전 방문 요구가 그랬다.

하여튼 북한 핵 문제에서부터 프로토콜(protocol·의전) 해석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약간의 전술적 변화가 가능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서 ‘약간의 전술적 변화’라고 했을 때 ‘구조적 변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북한에 정치적 절대독재가 필요하다고 해도 많은 지역에서 경제적 세계화, 정치적 민주화의 방향으로, 그리고 사회의 다원화가 일어나는데, 북한도 어떤 시점에서는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 최근 북한 젊은이들의 새로운 머리 스타일, 옷 모양 등은 그런 세계적 변화에 따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정부는 이번 남북회담의 목표를 북한의 점진적 개방과 개혁에 두고 긴 안목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 무슨 획기적 제스처를 끌어내어 우리 국민을 현혹시킴으로써 정치적 목적에 활용하는 것은 졸업해야 한다.

우리는 남북 정상회담을 ‘기회’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기회가 있다면 위험도 뒤따르게 마련이다. 가장 큰 위험은 승리와 패배를 혼동하는 일이다. 승리는 목표와 현실이 서로 접근했을 때 가능하다. 열쇠는 멀리서 바라보는 일이다.

2000년 정상회담 때는 승리와 패배의 경계선이 어디에 있는지 확실하지 않았다. 즉, 햇볕정책은 북한을 진심으로 도와주는 것인가, 아니면 조건부로 북한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전략적 위치를 확보하는 데 있었던가? 또 다른 각도에서 본다면, 서방 미디어가 하루만 자유롭게 취재함으로써 김정일이 서방 언론에 ‘선량하고 유머러스한 이웃집 아저씨’처럼 비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인가? 우리의 판단은 분명한가?

우리의 판단은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가에 달렸다. 김정일 위원장은 어떤 종류의 사회적 체제에서도 살아날 수 있는 유형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가 역사적 모범이 되는 것을 우리는 받아들일 수 없다. 요사이 쓰는 표현을 빌리자면 그도 역사적 심판을 받고 과거청산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우리 사회는 정의로운 사회라고 할 수 없다. 남북 정상회담이 해결해야 할 가장 무겁고 힘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