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금 살고 있는 집에도 낡은 우물이 있지만, 어린 시절 살던 집에도 우물이 있었습니다…어린 내게 깊고 어두운 우물 속은 무서워 보였지만 어딘가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아 힘껏 소리를 지르고는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되울리는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했어요.’(츠시마 유코)

‘나는 북한산 중에서 예전에는 보현봉 아래에 살았고 지금은 형제봉 아래에 살고 있습니다…산에서는 타인에 대한 원망보다는 나의 과오가 먼저 떠오르고 들쑥날쑥한 욕망보다는 침묵이 번지곤 했습니다.’(신경숙)

올여름의 베스트셀러 소설 ‘리진’의 작가 신경숙(申京淑·44)이 일본 소설가 츠시마 유코(津島佑子·60)와 지난 1년 동안 교환한 편지를 한 권의 책으로 묶어 한일 양국에서 펴냈다. 한일문학심포지엄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16년의 나이차이에도 불구하고 언어와 국경을 넘어선 문학의 향기에 이끌려 서로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편지를 주고 받았다. 일본어판은 현지 언론에서 ‘기적 같은 교감’이란 평가를 받았다고, 최근 일본을 다녀온 신경숙이 전했다.

▲ “개인적 대화였으나, 한국과 일본 독자의 귀를 의식한 대화였다”며 공개적으로 편지를 주고 받은 소설가 신경숙(왼쪽)과 츠시마 유코.

츠시마 유코의 아버지는 그 유명한 퇴폐적 탐미주의 소설가 다자이 오사무(1909~1948)다. 아버지의 본명은 츠시마 슈지(津島修治)였고, 부인과 가족을 내버려둔 채 연인과 동반자살했다. 당시 갓난아이였던 유코는 다운증후군을 앓았던 오빠와 함께 어머니 밑에서 자랐고, 오빠는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떴다. 유코의 추억 속에서 불우한 삶을 견뎠던 어머니는 마당에 있던 우물의 이미지와 겹친다. ‘땅 밑에서 넉넉하게 샘솟는 우물물에 손을 담글 때마다, 어머니는 일찍 세상을 떠난 아버지나 오빠, 언니들을 불러 모아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을까, 하고 상상하고 싶어집니다.’

유코에게 우물은 잃어버린 것들을 되살아나게 하는 환생의 샘물과 같다. 그리고 그녀가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소설가가 된 것은 어머니가 ‘상실의 슬픔’ 끝에 우물을 통해 ‘환생의 기쁨’을 누렸으리라는 상상을 언어로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신경숙의 문학에서도 어머니는 문자를 초월한 언어의 원천이다. 전북 정읍의 넝뫼가 고향인 작가의 어머니는 워낙 많은 식구들 뒤치다꺼리를 하며 살다보니 글을 배운 적이 없다고 한다. 자식들 이름, 주소 따위 글자만 알기 때문에 필요한 모든 것을 외운다. 성경책을 펼쳐 읽는 척하는 것은 기도문을 다 외웠기 때문에 가능하다. 작가는 소설책 한 권도 읽지 않은 어머니가 늘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잘 읽어내는 것을 볼 때마다 ‘작가는 어머니가 아닌가’라는 생각에 잠긴다. ‘언젠가 어머니에게 어머니, 이거 내가 쓴 소설인데 읽어드릴게요, 하였더니 어머니께선 그래 읽어봐라, 하시더니 내가 얼마 읽어드리지도 않았는데 코를 고시더군요. 어머니를 졸지 않게 할 만큼 재미있는 이야기를 쓸 줄 알면 좋을텐데…’

한일 양국의 불행했던 역사에 대해 두 작가는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모든 형태의 국가주의를 비판한다. ‘오늘날 일본인들이 야스쿠니 신사를 미화시키는 것도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고 쓴 유코는 일본 총리의 신사참배를 비판한다. 개인사의 비극을 냉정하게 받아들이는 그녀는 ‘사고로 아들을 잃고 나서, 무심코 그 아들을 미화시키고 싶어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자숙하려 애썼습니다’며 전범을 미화하는 일본 우익의 자성을 호소한다.

신경숙은 여기에 화답해 히로시마 원폭 투하의 비인간주의를 비판한다. ‘어느 나라가 잘했고 잘못했고를 떠나 왜 전쟁을 해야 하며 무엇을 위해 저런 고통을 당해야 할까? 그렇게 해서 눈꼽만큼이라도 인간의 삶이 나아졌나? 저건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르는 만행이랄밖에 무슨 말을 더 하겠나…공포스럽고 침통했습니다. 전쟁이 역사 속의 일만도 아닌 현실, 지금도 계속되는 그 현실 앞에 고통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