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황동규), ‘농무’(신경림), ‘한국의 정체성’(탁석산), ‘궁핍한 날의 벗(박제가)’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정답은 이 책들이 모두 시집이나 교양도서 문고본 시리즈의 첫 책이라는 것이다.
새 시리즈가 나왔다는 소식을 접하면 서점에 서서 첫 책을 훑는다. 저자나 내용은 물론이고 표지와 편집 체계 하다못해 책의 무게까지 꼼꼼하게 살핀다. 이 시리즈와 내가 계속 사귈 것인가에 대한 탐색이면서 이 시리즈가 왜 꼭 필요한가를 내 손 안의 책을 통해 납득하는 과정이다. 영혼을 살찌우는 작고 얇고 상대적으로 값싼 양식이 문고본이거나 시집이라지만, 날림 번역과 수두룩한 오타 때문에 상처 받은 경험 또한 적지 않았다.
‘우리고전 100선’의 첫 책 제목은 ‘말똥구슬’(돌베개, 2006).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지은이는 유금이다. 유금이 누군가. 유득공의 숙부로 서얼이며 백탑파의 일원이고 악기 연주는 물론 기하학에도 조예가 깊은 인물이다. 1776년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이덕무, 유득공, 박제가, 이서구의 시를 선별하여 ‘한객건연집’(韓客巾衍集)을 펴낸 실학자이기도 하다. ‘양환집’(�丸集)으로 알려진 시집 제목을 역자인 박희병 교수가 ‘말똥구슬’로 바꾸었다. ‘양환’과 ‘말똥구슬’은 같은 뜻이지만 느낌은 사뭇 다르다. ‘말똥’이라는 짐승의 배설물을 지칭한 후 이어 ‘구슬’을 발음하는 순간, 작고 둥글고 귀여운 맛이 혀끝에 맴돈다.
왜 시집 제목이 말똥구슬일까. 서문을 붙인 연암 박지원은 ‘중(中)’을 설명하며 이런 주장을 편다. “말똥구리는 제가 굴리는 말똥을 사랑하므로 용의 여의주를 부러워하지 않고, 용 또한 자기에게 여의주가 있다 하여 말똥구리를 비웃지 않는 법일세.” 말똥은 더럽고 천하며 여의주는 깨끗하고 귀하다는 통념을 단숨에 뛰어넘는 탁견이다.
시집은 번역문을 제시하고 원문을 붙이고 아래에 각주를 다는 방식을 취했다. 어려운 한자의 뜻을 풀고 고사(故事)를 밝히는 각주도 물론 상세하지만 종종 역자의 주관적인 감상이 담긴 각주와 마주친다. ‘큰 거미가 노인처럼 잠을 자누나’에 대해서는 “이 구절은 참 묘하다”고 했고, ‘고요히 누우니 벌레 우는 소리 들려 / 문득 내 집의 가을 같아라’에 대해서는 “여운이 깊어 참 좋다”고 했다. 객관적인 정보만 몸에 맞지 않은 액세서리처럼 주석으로 붙은 역시집들에 비하여 훨씬 친절하고 따뜻하다. 역자가 한시 원문을 감상하고 합당한 한글 표현을 찾는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외국시나 한시로부터 감각적인 감흥을 받기란 쉽지 않다. 고전(古典)을 좀 더 다정다감하게 만날 수는 없을까. 역자의 고민은 이 부근에 머문다. ‘노복도 없이 눈 맞으며 나귀 타고서’란 구절은 그냥 지나치지만 “이 한 구절은 참 정취가 있다”라는 각주 앞에서는 다시 눈을 돌리게 만든다. 참 정취가 있는 좋은 고전번역 시리즈가 될 것 같아 미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