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짐이 아니라 기억이에요. 언니는 늘 기억이고 추억이고… 시원한 설레임이었어요. 고마워요, 언니." (이주연)
"저의 우상이셨던 언니, 아직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어요. 잊을 수가 없죠. 제 마음에, 책상 위에, 사진 속에, 컴퓨터 안에 언니가 늘 함께 하시니…." (hwan)
지난 4일,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뒤 3주기를 맞은 고(故) 정은임 아나운서의 미니홈피에는 추모행렬이 이어졌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사람들은 꾸준히 그녀의 미니홈피에 찾아와 고인에 대한 명복을 빌었다.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팬들은 여전히 인터넷 공간에서 그녀를 추억하며 함께 호흡하고 있었다.
사이버 공간에서 고인에 대한 명복을 비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네티즌은 고인의 미니홈피나 블로그에 찾아가 애도의 뜻을 표하고 유족들과 함께 아픔을 나눈다. 시간이 흐른다고 잊혀지는 것이 아니라 고인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언제든지 들러 다시 한번 떠올릴 수 있도록 한다.
지난 1월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사망한 개그우먼 고 김형은의 미니홈피는 그 동안 방문자 수가 450여 만명에 달한다. “여러분! 형은이 잊지마세요”라고 쓰여있는 미니홈피의 메인화면처럼 사람들은 아직도 그녀를 잊지 않고 미니홈피에 들러 그녀가 주었던 웃음을 기억하고 있다.
지난 2월 사망한 탤런트 고 정다빈 역시 사망한 지 6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추모의 손길이 이어진다. 방명록에 글을 쓸 수 없도록 설정되어 있지만 하루 2000여 명의 팬들이 다녀간다. 이들은 밝게 웃고 있는 고 정다빈의 사진 곳곳에 “하늘나라에서는 행복하세요”, “부디 천국에 가기를”과 같은 흔적을 남겨 고인의 명복을 빌고 있다.
지난 6월 캄보디아 추락 여객기에 탑승하여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KBS 고 조종옥 기자의 블로그에도 하루 평균 5~10개의 글이 꾸준히 올라온다. 떠난 조종옥 기자에 대한 추억을 되새기기도 하고, 남은 가족에 대한 위로를 전하기도 한다. 한 네티즌은 “앞으로 우리가 조종옥의 팬이라는 명분으로 윤하생일, 49제,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보면 어떨까요? 좋은 제안들 생각해 봅시다”라며 유가족을 도울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을 찾기도 했다.
2001년 1월 일본 지하철 역에서 취객을 구조하던 도중 사망한 고 이수현 씨의 추모 사이트에도 애도의 물결이 끊이지 않는다. 네티즌 ‘진’은 “아주 가끔씩 문득문득 떠오르는 분이세요”라며 “하늘나라에서 행복하세요”라는 글을 남겼다. 벌써 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자신의 목숨까지 버려가며 다른 사람을 구한 그에게 네티즌들은 여전히 경의를 표하고 있다.
아프간 피랍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고 김선일 씨의 추모사이트를 찾는 네티즌들도 크게 늘었다. '탈레반이 우리 인질을 잡고 있으니 적은 수의 사람들이라도 살아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내용의 글이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다. 심성민 씨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던 지난달 31일에는 100여 건의 글이 올라왔다. 많은 네티즌들은 당시의 슬픔이 되풀이되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이들을 지켜달라는 바람을 남겼다.
이러한 인터넷 추모는 고인에 대한 조의를 표하는 것뿐만 아니라 남은 사람들에게도 큰 힘이 된다. 동생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낸 이모(31) 씨. 그는 일주일에 두세 번 동생 대신 미니홈피에 접속해 업데이트를 한다. 동생의 생전 모습이나 최근 찍은 산소의 사진을 올리고 친구들이 남긴 방명록에 댓글을 달기도 한다. 이씨는 "물론 친구들도 동생이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친구들이 동생을 잊지 않고 기억해준다면 그것만으로 참 감사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고등학교 시절 일어났던 교통사고로 친구를 잃었다는 대학생 권진영(24)씨 또한 "가끔 함께 했던 추억들이 생각날 때면 친구가 운영했던 홈페이지에 들어간다"며 "친구에게 하고 싶은 말을 글로나마 풀어놓으면 미안한 마음이 조금은 사라진다. 하늘에서 내가 하는 말을 다 듣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사회문제심리전문가 이화여대 양윤(49) 교수는 “사이버 공간에서는 직접 얼굴을 맞대는 과정이 생략되어 더 빠르고 쉽게 공동체가 형성될 수 있다”며 “이러한 사이버 공간을 통한 추모 행위는 인간이 공통으로 느끼는 슬픈 감정을 함께 나누고, 유가족 역시 따뜻한 말로 인해 마음을 추스를 수 있어 긍정적으로 평가된다”고 분석했다. 현재 싸이월드·네이버 등 포털사이트는 미니홈피나 블로그를 만든 사람이 사망하더라도 유족 측에서 특별한 요청이 없으면 삭제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