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연무동 산 중턱에 자리잡은 경기지방경찰청의 지하 사격장. 요즘 지하 사격장에서는 몽롱한 재즈 기타 선율이 가끔 울린다. 기타를 연주하는 사람은 경기기장경찰청 홍보단의 신입 기타리스트 한운기(23)씨. 한씨가 연주하는 곡은 한국에서 널리 알려진 팝 재즈와는 거리가 멀다. 보통 사람은 이해 하기 힘든 정통 재즈곡이다.

“재즈를 마땅히 정의하기 어렵지만 ‘자유’ ‘즉흥’ 이런 것이 아닐까요. 소리를 내 맘대로 컨트롤 할 수 있다는 것이 재즈의 매력이죠. 이성적인 악보나 리듬 보다는 육감이 중요하죠. 저는 기타를 연주할 때가 가장 행복해요.”

“재즈는 어떤 음악이냐”는 질문에 이해하기 힘든 대답을 주절주절 늘어 놓았다. 한 곡 더 연주해 달라고 하자 눈을 내리깔고 알듯 모를 듯한 곡을 연주한다. 곡명은 ‘디스 러브(This Love)’라고 했다.

한씨는 재즈의 본고장인 미국 뉴욕에서 갈고 닦은 실력파 뮤지션이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서 살던 한씨는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기타를 잡았다. 취미로 통기타를 시작해 클래식 기타, 록 기타를 만져 봤다. 기타에 재미를 들여갈 무렵 기타를 가르쳐 주던 선생님이 “기타로 이런 음악도 할 수 있다”며 틀어 준 재즈 음반을 듣고는 재즈의 매력에 푹 빠져 버렸다.

“지금까지 들어 왔던 음악과는 너무 다른 거에요. ‘기타로 이런 음악도 할 수 있구나’라며 계속 듣다보니 서서히 감이 오더군요.”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 부모님을 졸라 미국으로 건너갔다. “어차피 재즈를 제대로 배우려면 본토에서 영어도 배우고, 기본부터 확실히 배워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시애틀의 사립고등학교 노스웨스트 스쿨을 졸업한 한씨는 미국 뉴욕의 뉴스쿨유니버시티(The New School University)에 입학했다. 재즈를 안다는 사람은 누구나 아는 피터 번스타인, 조지 벤슨 등 걸출한 재즈 뮤지션이 이 학교 출신이다.

처음엔 실력이 부족해 ‘실력파’들이 하는 그룹에는 끼지 못했다.

“대학에서 기타, 베이스, 피아노 분야에서 멤버들이 모여 자연스럽게 재즈 그룹을 만드는데 실력에 따라 어울리는 거에요. 저도 처음엔 무시를 당했어요. ‘내가 이것 밖에 안되나’하는 열등감도 생기고 좌절감도 생기데요. 그래서 오기로 기타를 잡고 죽기살기로 연습했어요.”

한국으로 오기 전 3학년이 돼서는 제법 인정을 받았다. 소위 잘 나가는 그룹에서 기타를 잡은 것이다. 학교 친구들과 그룹을 만들어 맨해튼 32번가의 재즈바 ‘맥심’에서 매달 무대에 섰다. 병역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휴학을 하고 한국에 와서는 서울 홍대앞 에반스, 이태원 올댓재즈 등의 재즈 클럽에서 연주를 했다.

음악을 계속하기 위해 특기병 입대를 기다리다가 지난 3월 의경으로 입대해 과천경찰서 방범 순찰대에 배치됐다. 마침 락밴드와 비보이를 앞세워 경찰과 일반인을 상대로 공연을 펼치는 경기경찰청 홍보단에서 기타리스트를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홍보단으로 자리를 옮겼다. 재즈를 이해 할 수 있을 만한 성인들이 관객으로 있을 때 연주를 한다.

재즈는 연주자들이 분위기에 따라 즉흥적으로 주고받으며 연주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그럴 환경은 꿈도 못 꾼다. 대중가요나 록음악처럼 관객들의 열광적인 반응은 당연히 없다. “배울 만큼 배워서 연주하는 고급 음악인데 관객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섭섭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군대 온 것이나 마찬가진데 지금 기타를 연주할 수 있는 것만 해도 행복해요. 가끔 연주를 마치고 나면 ‘이해는 못하겠는데 느낌은 좋다’고 하시는 분도 있어요. 그걸로 만족해요. 내가 연주하고 싶은 때 기타를 칠 수 있고, 음악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죠.” 대한민국 병역제도는 이 청년에게 ‘소박한 만족’에 눈을 뜨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