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특별한 손님이 왔기 때문에 특별 음식을 대접하겠다.”

오래전에 아프가니스탄의 힌두쿠시 산맥에서 이슬람 원리주의자이자 ‘신의 전사’들에게 1박 2일 동안 식사 대접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땐 무자헤딘이라 불렀다. 힌두쿠시 산맥을 가파르게 타넘어 나무 한 그루 없는 민둥 산악지대를 한참 들어갔다. 소련군 철수 이후의 아프가니스탄을 취재하러 간 길이었다. 천장이 달아난 낡은 도요타를 타고 계곡을 조심스레 전진하고 있는데 양쪽 산등성이에서 경쟁 파벌끼리 총격을 주고받았다. 석양 무렵이었다. 우리는 서너 시간 더 들어간 다음 땅굴로 안내됐다. 안내자는 매일 수백명의 전사들이 숨지고 있다면서, 사살됐거나 지뢰를 밟은 서양 기자들의 명단도 보여주었다.

아프간 무자헤딘은 1990년 무렵까지 수십 년 동안 소련 점령군과 공산주의라는 사악한 ‘신’과 싸워 왔다.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신의 전쟁’을 벌인 가족도 많았다. 성전(聖戰·지하드)을 치르다 죽으면 알라가 수십명 선녀로 하여금 보필케 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파키스탄의 종교학교에서 코란만 읽었던 그들은 아직 솜털도 못 벗은 하이틴들이었다. 부모와 누이는 파키스탄 국경도시 페샤와르 근처의 수용소에서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신들도 별반 나을 게 없어 보였다.

우리는 무자헤딘을 따라 땅굴 속으로 들어갔다. 그곳에 있는 가장 큰 방에서 전사들과 취재진은 둘러앉았다. 그곳 지휘자가 말했다. ‘특별한 음식’을 준비했다는 것이다. 방 천장에 붙은 시렁에서 키 큰 전사들이 둘둘 말린 군용 담요를 꺼냈다. 담요는 만든 지 10여 년은 됨 직했고, 게다가 한 번도 세탁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기름 등잔 밑에서 바라본 담요는 아예 까만색이었다. 그들은 말린 담요를 죽 펼쳤고, 담요가 한 바퀴 돌 때마다 그 속에서 ‘난’이라고 부르는 둥그런 밀떡이 나왔다. 우리는 친근함을 표시하기 위해 주저 없이 그 밀떡을 하나씩 손에 집었다.

큰 대야에 담긴 양고기 국물을 가운데 놓았다. 건더기는 없었다. 오른손으로 난을 조금씩 떼어내 국물에 넣고 주물럭거렸다. 그러자 밀떡은 겔 상태가 됐다. 그걸 핥아 먹으며 신에게 감사를 표시했다. 마실 물도 부족한 터라 손을 씻었을 리 없었다.

그 뒤 17년의 시간이 지났다. 그때 무자헤딘은 지금의 탈레반과는 다른 사람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시 나를 비롯한 취재진이 만났던 소년 무자헤딘이 지금은 탈레반의 지도자가 됐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소련에 저항하여 산악 전투를 벌이던 사람들이었고, 미국의 지원을 받았다. 세월은 흘렀고, 이제 산속의 전사들이 미국을 상대로 전쟁 중이다. 당시 취재진은 그들을 만나기 위해 파키스탄의 카이버 패스를 통해 들어갔다. 영국의 BBC 방송 요원들과 함께였다. 파키스탄에서 아프가니스탄 쪽으로 들어가는 길 안내자는 페샤와르 영자신문사 ‘프런티어’의 편집국장이었다.

희멀건 양고기 국물에 난을 적셔 먹던 저녁 식사 때 BBC 요원 중 오디오맨은 끝내 그걸 입에 넣지 못할 만큼 비위가 약했다. 우리는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웠다. 그는 이불 속에서 라면을 생으로 뜯었다. 무자헤딘 지휘자는 말했다. “적의 적은 적이 아니다. 그러나 친구의 친구는 친구다.”

지금 아프가니스탄에서 인질로 붙잡힌 한국인들이 어떤 생활을 하고 있을지 10분의 1이라도 짐작할 거리가 될까 싶어 그때 경험을 되살려 보았다. 또 옛날의 소년 무자헤딘을 떠올리면서 지금 한국인들을 감시하고 있을 젊은 탈레반의 모습도 상상해 보았다. 이제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그들은 무엇이 자신들을 ‘신의 전사’에서 ‘테러 살인자’로 만들었는지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