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0시 40분쯤 거의 녹초가 된 상태로 퇴근하는데, 국제부장과 같은 엘리베이터를 탔습니다. “보름째 비상대기”라며, 마감시간 때문에 저녁을 못 먹어 편의점에 컵라면을 사러 간다고 했습니다. “왜 이 직업을 택했을꼬”라는 푸념을 털어놓았고, 바로 그때 내 마음이 그랬는데도 저는 말할 기력조차 없어 그냥 웃었지요.

탈레반의 인질 살해 협박으로 국제부를 중심으로 신문사 편집국은 밤마다 초비상입니다. 금방 확인되지 않는 외신들이 막 쏟아지고 있지요. 탈레반 측 인물들의 이랬다 저랬다 하는 말을 앞에 놓고,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막막한 것이지요. 현장에 가지 못한 언론으로서는 책임과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가장 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은 인질로 잡힌 우리 젊은이들과 그 가족들입니다. 매일 밤 이들의 심정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고 있을 것입니다. 이는 당사자가 아니면 그 고통의 깊이를 헤아리기 어렵지요.

뉴스는 새로워야 눈길을 끕니다. 보름 넘게 반복되는 탈레반의 살해 협박 뉴스는 서서히 독자들을 물리게 하고 있지요. 이 상황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어떻게 종료될지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어쩌면 더 많은 날들을 이런 막막한 상태로 기다려야 할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우리 젊은이들에 대한 관심을 버릴 때, 세상 그 누구도 이들에게 관심을 갖지 않을 것입니다.

지난 호에 카투니스트 지현곤씨의 인터뷰가 실린 뒤, 몇몇 친구들이 “내가 대신 망원경을 사주면 안 될까?”라고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어떤 이는 “그분에게 망원경을 꼭 보내주세요”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왔지요.

기사의 마지막 줄 때문이었습니다.

〈…인터뷰가 끝난 뒤 선물을 해주고 싶다고 하자, 그는 한참 망설이다가 “망원경, 값싼 걸로”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곧 자신을 자책했고, “이 말은 안 들었던 걸로 정말 해달라.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라는 것도 있지 않느냐”고 했다. 좁은 방문을 열어놓고 그는 망원경으로 좋아하는 달을 보고 싶은 것이다.〉

현실에서 늘 그렇게 될 리가 만무하지만, 주고받는 것에 평형이 이뤄지기를 저는 원하는 쪽입니다. 주고 받는 저울의 어느 한쪽으로 너무 기울면 관계가 편안하지도 오래가지도 못합니다. 그에게 선물을 주고 싶다고 말했던 것도 같은 이치이지요.

제가 그로부터 이미 큰 선물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제 눈앞에서 분명 받았는데도 어떤 선물인지는 여전히 모호합니다. 이를 ‘시이불견 청이불문’(視而不見 聽而不聞: 봐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음)이라고 하지만. 여하튼 나잇살 먹은 사람이 받기만 하고 빈손으로 그냥 나오기가 민망해 선물 얘기를 꺼냈던 것입니다.

신문사에 돌아와 여직원을 시켜 인터넷쇼핑을 통해 적당한 크기의 천체망원경을 부쳐줬습니다. 검은 밤 하늘 속의 달을 망원경으로 바라보는 그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그로부터 전화가 왔지요.

“저…, 참 고마운데 보내주신 망원경이 너무 커요. 삼각받침대를 세우면 제 키보다도 높아요. 제가 엎드려서는 볼 수가 없네요…. 미리 망원경에 대해 잘 말씀드리지 못한 제 불찰입니다. 그런데 방 안에 이런 큰 망원경을 놓아두니 모양은 좋네요.”

지난주 내내 독자들로부터 “망원경을 사주거나 얼마간 돕고 싶으니 계좌번호를 알려달라”는 전화와 메일을 많이 받았습니다. 2004년까지 거래됐다가 자고 있던 그의 계좌에 500여만원이 입금됐다고 합니다. 저는 그를 직접 만나기라도 했지만, 그를 본 적 없는 독자들은 무슨 마음으로 그랬는지 궁금해집니다.

어느 날 갑자기 생긴 이런 움직임이 2m×3m의 좁은 방에서 40년간 엎드려 지내온 한 재능있는 카투니스트가 타고난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기회가 됐으면 합니다. 좋은 주말 보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