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선생이 여고생 주인공을 희롱하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이 성장소설은, “사유의 방향이 궤변처럼 흐르기도 해서 불편할 것”이라는 작가 자신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매우 묵직하고도 적나라한 감동을 안겨준다.

‘나는 누구의 아바타일까’란 제목부터 평범하지 않다. 아바타란 그래픽 위주의 가상 사회에서 자신을 대표하는 가상육체. 대부분 타의에 의해, 학교의 편견과 규율에 의해, 기성세대 공동의 기대와 압력에 의해 대학이라는 유일 목표를 향해 내달려야 하는 10대들에게 아바타는 보이지 않는 시스템에 의해 조종돼 살아가야 하는 10대 자신이자 가상공간에서나마 감정과 욕망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도구다. 그 이중성에서 아이들은 절망과 자괴감을 느낀다.


주인공 영주가 그렇다.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뒤 엄마와 함께 속초에서 서울로 올라와 상업고등학교에 다니는 아이. 공부엔 관심 없고 PC방에서 '알바'를 뛰어 모은 돈으로 화장품을 사서 바르는 평범한 여고생으로 보이지만, 기성세대와 학교의 부조리, 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직시하는 감수성을 지닌 아이다. 영주는 안다. '점원들은 나처럼 뚱뚱한 아이가 자기네 가게를 기웃거리는 것만으로도 무척 피곤해한다'는 걸, '세상은 대학생에게 너그럽고' '그나마 예쁜 아이들은 아무리 놀자판을 쳐도 데려가는 회사가 있지만' 뚱뚱한 아이들은 성실함으로 승부를 걸어도 갈똥말똥이라는 걸. 담배연기 자욱한 PC방에 파묻혀 게임에 몰두하는 사람들을 보면서는 잉여 현실의 숲, 그 허망과 지독한 허무를 목격한다.

영주의 유일한 해방구는 글 쓰기다. 이모티콘이나 외계어가 난무하는 인스턴트 소설 말고 진한 아픔이 우러나는 진짜 소설! 학교 담장에 '나는 누구의 아바타일까'라고 휘갈겨진 낙서에 영감을 얻은 영주는 꿈을 현실로 옮기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이야기는 소설 속 또 하나의 소설(액자소설) 형식으로 전개된다. 자신이 아바타라고 믿는, '감정은 짜디짠 사해 바다처럼 메말라가고 시스템에서 허용되는 낱말을 관리자가 조합해주는 대로만 입 밖으로 내보낸다'고 믿는 여자아이가 주인공. 이 기묘한 습작 과정에 '한쪽 손에 늘 붕대를 감고 다니는 아이' 이손이 끼어들고 일종의 공동창작이 되면서 소설은 활기를 띤다.

"이깟 시험보다는 내 소설을 완성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해!" 하고 외칠 만큼 아이들은 글 쓰기의 재미에 빠져들지만 동시에 고통을 맛본다. 고통의 근원은 유년 시절의 트라우마다. 공교롭게도 두 아이는 서로의 상처가 몸에서 비롯됐다는 걸 알게 된다. 고종사촌 오빠에게, 낯선 아저씨에게 성폭력을 당했던 기억. 여기에 알콜중독자 아버지와 매 맞는 엄마, 남편에게서 버림받은 엄마 등 감당하기 힘들었던 가족사가 맞물려 있다.

잊어버렸다고 믿었던 과거의 기억을 고스란히 되살려내는 글 쓰기는 고통스럽지만, 결국 글 쓰기가 아이들을 그 끔찍했던 트라우마로부터 구원한다. 영주와 이손이 서로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대목도 미덥다. 소설 쓰기를 포기하려는 영주에게 이손이 애원한다. "넌 이 세상을 모두 읽어낼 거야. 이 세상을 다시 원형으로 되돌릴 함수를 고안해내어 세상을 바꿀 거야." '이제 내가 시스템(세상)을 희롱하겠다'며 쇠 문 사이로 손을 집어넣어 뭉개버린 이손을 영주는 껴안으며 위로한다. "네 몸의 주인은 바로 너야. 과거에도 너였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검은 손이 네 몸을 잠시 희롱했을지라도 네 몸을 영원히 가진 건 아니잖아… 가장 빼앗기 쉬운 것이 몸이라지만 역설적으로, 끝끝내 빼앗을 수 없는 것 또한 네 몸이야."

작가의 우려대로 이 작품을 읽어나가는 데 불편을 느꼈다면 저마다 지닌 크고 작은 아픔들 때문 아니었을까. 시스템의 통제로부터 얼마든지 자유롭게 날 수 있지만 배고픔에 굴복해 피둥피둥 살찐 몸을 뒤뚱거리며 걷는 공원 비둘기떼에게서 서글픈 동질감을 느낀 탓은 아닐까. 소설은 기본적으로 '진리라는 허울을 굳이 근엄한 방식으로 전파하고 강자와 약자의 구도를 당연한 것으로 만드는' 학교와 기성세대에 대한 도발적인 발언이다. 그러나 후반부로 갈수록 세상의 모든 아파하는 사람들을 위한 헌사로 승화한다. 작가는 말한다. '깨달음에는 아픔이란 계기가 필요하다, 아픔을 모르는 자는 본질에 닿을 수 없다'고. 더불어 트라우마에 맞서 아픔을 이겨내는 데 겁 먹지 말라고, 주저하지 말라고 호소한다. 코를 하나 빼먹은 채 떠올라간 걸 알고 미련 없이 실을 잡아당겨 지금까지 뜬 것을 모두 풀어내던 영주의 할머니처럼.

더 읽을 만한 책 

청소년 소설이 대세이긴 대세인가 보다.‘ 나는 누구의 아바타일까’를 포함해 이번 주만도 너댓 권의 국내외 청소년물이 출간됐다.

‘한 광대가 자란다’(시공사)는 외톨이가 될까, 왕따를 당할까 늘 걱정인 스웨덴 소년 유하의 얘기다.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을 수 있다면 죽어도 좋다고 여길 만큼 외로움을 두려워하는 아이. 그래서 아이는 광대 노릇을 자처한다. 오락 시간에 나가 아이들 웃음을 터뜨리는 얘기와 노래를 들려주고, 소위‘권력자’라고 불리는 주먹 센 남자아이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다른 외톨이들을 함부로 대한다.

소년의 삶은 점점 비굴해지고 비겁해질 뿐이다. 자라서 코미디언이 된 유하가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며 써내려간 성장소설. ‘나는 못생겨서 인기가 없다’는 스스로의 편견과 오해가 얼마나 큰 불행을 낳을 수 있는지, 하루가 멀다 하고 으르렁대며 싸우는 부모가 자녀에게 얼마나 큰 상실감과 무기력함을 안겨주는지 섬뜩하게 일깨우는 작품이다.‘

소년소설’이라는 문패를 박은‘보이지 않는 적’(창비)은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10대 초반 소년들이 어른들의 세계로 한 발짝 나아가는 과정을 담은 성장 소설이다. 소심한 켄지, 거칠 것 없는 학교짱 아끼라, 따돌림 당하지만 똑똑하고 소신 있는 전학생 가쯔미가 펼쳐가는 여름날의 삽화. 어른이 되려면 지독한 외로움을 밑바닥까지 앓아야 한다는 것인지 이 작품 역시‘왕따’가 주요 사건으로 등장한다.

단지‘전학생 하고는 놀지 않는다’는 규칙 때문에 따돌림의 대상이 되는 가쯔미와 물고기를 놓쳐버렸다는 이유로 함께 하던 무리에 낄 수 없게 된 켄지는 둘이서 새로운 우정을 쌓아간다. 그런데 이마저도 쉽지 않다. 폭력이 싫다면서도 은연 중에 자기보다 약한 아이에게 힘을 행사하는 켄지. 가쯔미는 아끼라와 대립각을 세우면서도 아끼라의 마음을 공감한다. 힘의 논리로 움직이는 세상에서 사춘기 소년들이 겪는 혼돈과 상실감을 담백한 문체로 그려냈다.

역시 일본 작품인‘우리는 바다로(보림)’는 바닷가에서 읽으면 더 실감날 성장동화다. 같은 학교, 같은 입시 학원에 다니는 열세 살 사토시, 구니토시, 마사아키, 이사무와 이들 틈에 끼어 놀고 싶어하는 가난한 집 아이 시로가 주인공. 여름 방학을 앞두고 아이들은‘배를 만들자’는 기막힌 계획을 세운다.

일고의 망설임도 없이 설계도를 그리고, 재료를 구하고, 땀을 뻘뻘 흘려가며 톱질을 하고 망치를 두드리는 이유는 학원에서의 살풍경, 억압적인 학교에서 벗어날 유일한 탈출구이기 때문이다. 출항을 며칠 앞둔 어느 날, 거대한 태풍이 몰아치면서 이야기는 절정에 달한다. 과연 아이들은 배를 타고 바다 멀리 모험을 떠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