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에 행진   
오쿠다 히데오 소설|양억관 옮김|재인|368쪽|9800원 

요즘 한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일본 작가로 꼽히는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 '한밤중에 행진'은 악당소설의 전형을 따르면서 블랙 유머를 던지는 작품이다. 25살짜리 남녀 세 명을 통해 오늘의 일본 사회를 악의적으로 조롱하면서도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던지기 때문에 웃음 뒤에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주인공 요코야마 겐지는 자칭 청년 실업가라고 하지만, 그 사업이란 것이 남녀 짝짓기 파티를 주선하거나 사기를 쳐서 남의 돈을 갈취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시무시한 조폭도 아니고 그냥 건달에 불과하다. '인생의 목표는 거금을 쥐고 화려하게 노는 것. 그리고 거물 취급을 받는 것. 그것이 겐지의 야망'이라는 것이다. 또다른 주인공 구로가와 치에는 모델 출신의 늘씬한 미인이지만, 사기꾼 아버지에 대한 증오 때문에 삐딱하게 청춘을 보내는 여성이다. 나머지 주인공 미타 소이치로는 명문 게이오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입사하지만 업무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회사에서 바보 취급을 당하는 사내다. 멍청해 보이는 그의 숨은 꿈은 거금을 챙겨서 먼 곳으로 튀는 것이다.

겐지와 미타의 만남부터 포복절도할 코미디의 연속이다. 겐지는 미타가 대재벌 가문의 도련님이라고 착각해서 사기를 치기로 한다. 아가씨를 소개해서 하룻밤을 보내게 한 뒤 거짓 임신소동을 일으키고 야쿠자를 동원해 미타를 협박한다. 재벌 가문은 스캔들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돈으로 문제를 해결하리라는 기대를 품고서. 그러나 재벌 가문의 도련님이 아닌 미타는 그 여자랑 그냥 결혼하겠다고 하면서 겐지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든다. 그러나 겐지와 미타는 치에를 만나 한밤중 야쿠자의 도박장에 잠입했다가 거금 10억 엔을 탈취하기로 한다.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 도둑들의 이야기가 경쾌하고 발랄하게 그려진다. 더운 여름날 새털처럼 가볍게 읽히는 소설이다.



혼자있기 좋은 날  
아오야마 나나에 소설|정유리 옮김|이레|200쪽|9500원 

올해 일본 최고 권위의 아쿠타가와 문학상은 23세의 신인 여성 작가 아오야마 나나에의 ‘혼자있기 좋은 날’에 돌아갔다. ‘비 오는 날, 나는 이 집에 왔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이제 막 스무살이 된 여성 치즈가 먼 친척이 되는 일흔 살의 할머니 깅코와 함께 살면서 점차 성인으로서 삶의 본질에 접근해가는 이야기를 섬세하고 감성적인 문체로 그렸다. 일본 언론으로부터 치밀한 심리 묘사가 단연 돋보이고, 구도가 확실한 담채화 같은 느낌이다는 등의 찬사를 받았다. ‘역 앞의 벚나무 가로수에서 하늘하늘 내 쪽으로 흩날려오는 하얀 꽃잎이 거추장스럽다. 봄 따위 어정쩡한 계절은 필요 없다. 날씨가 맑아도 어딘가 모르게 싸늘한 날만 이어질 뿐, 약을 올리고 있는 것 같아 신경에 거슬린다. 겨울이 끝나고 바로 여름이 되면 좋은데…’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치즈는 연회장 도우미, 역 구내매점 판매원, 사무보조 아르바이트 등등을 전전하면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치즈의 일상은 취업을 못한 채 임시직을 전전해야하는 ‘프리터’(freeter)족을 형상화하기 때문에 이 소설은 오늘날 일본 젊은이들의 풍속도를 보여준다.

그러나 작가는 여행사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유명 작가가 됐지만, 그녀는 계속 직장을 다닌다. “세상을 좀 더 많이 알고 싶어서”라는 것이다. 출퇴근 길의 전철 안에서 작품 구상을 하고, 퇴근 이후 매일 3~4시간씩 꼬박꼬박 소설을 쓰는 성실한 일상을 통해 차분하고 안정된 태도로 자기만의 문학 영토를 가꿔나가는 작가다. 아쿠타가와상 심사위원을 맡았던 소설가 무라카미 류는 “사회로의 한 발을 좀처럼 내딛지 못하고 주저하는 젊은이의 방황을 치밀한 언어 조합으로 완벽하게 포착해낸 소설”이라고 극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