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George Lakoff)는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란 책으로 민주당과 진보세력을 정신 번쩍 나게 했다. 민주당은 공화당이 정한 논쟁거리와 그 논리에 휘둘려 반대만 하다가 선거에서 판판이 지는 가혹한 현실에 처했다고 지적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우리 정치인들 사이에서도 인기를 끌어, 여야를 막론하고 작년 국회의원들이 가장 많이 읽은 책이었다.

레이코프는 정치학자나 선거전략가들은 생각하지 못한 민주당의 문제를 이렇게 지적했다. 상대가 "당신은 거짓말쟁이다"라고 했을 때, "나는 거짓말쟁이가 아니다"고 반박하면 주변 사람들은 오히려 그가 진짜 거짓말쟁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어떤 주장을 반대하고 부인하는 과정은 상대의 주장을 더 연상·강화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공화당의 주장에 반대했다고 착각했지만 사실은 그들의 주장을 강화시켜온 셈이다.

단순히 말이나 표현의 문제는 아니다. 레이코프는 신간 '프레임 전쟁'에서 '심층 프레임'이란 개념을 들고 나왔다. 2004년 미 대선 때 이라크전은 이미 수렁에 빠진 상태였다. 그러나 미국 유권자들은 부시 대통령을 갈아치우지 않고 재선시켰다. 미국민들은 '테러와의 전쟁'이란 프레임으로 세상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라크전'이란 프레임으로 보면, 미국은 실패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유권자들이 부시를 떨어뜨려야 마땅하다. 그러나 테러전이라는 프레임으로 보면, 이라크전은 어렵고 힘들지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고난이었다. 이라크를 포기해버리면 테러가 더 심해져 미국이 제2의 9·11을 겪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주당이 부시의 이라크 정책 실패를 그렇게 강조했는데도 별로 설득력이 없었다.

레이코프는 레이건 전 대통령 이후 점점 더 기세등등해지는 보수세력에 짓눌린 진보세력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대선승리는 재치 있는 문구 하나로 결정되는 게 아니다. 유권자들의 무의식 속에서 결판이 난다. 그러므로 세상을 보는 자기만의 틀인 '프레임'을 짜서 논쟁을 주도해야 한다. 그래야만 권력을 잡을 수 있다.

대선승리를 위해 각 당이 유념해야 할 점이 있다. 선거는 이슈보다 가치 중심으로 이끌어야 한다. 사회보장정책을 어떻게 하겠다는 상세한 공약과 정책을 늘어놓아봐야 유권자는 감동하지 않는다. 유권자들은 책임과 공평함, 자유와 정의 등 윤리적 개념이나 감정이입이 가능한 논쟁이 나왔을 때 움직인다.

구체적인 공약이나 거창한 프로그램을 제시할 필요도 없다. 유권자들은 진실성과 신뢰감을 바탕으로 투표하지 정책 목록을 검토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지 결정하기 위해 여론조사를 이용해서도 안된다. 진정한 지도자라면 새로운 방향으로 여론을 유도할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정치에 '중간층'이나 '중도'는 없다. 실제로는 '이중개념주의자'가 존재할 뿐이다. 정치적으로는 보수적이지만 사업할 땐 진보적인 식으로, 삶의 어떤 부분은 보수적이고 또 다른 면은 진보적인 사람들이 소위 '중심'을 형성한다. 그런데도 정치인들은 중간층이 있다고 믿고, 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오른쪽으로' 또는 '왼쪽'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게 실수다. 자신의 정체성을 포기하고 경쟁상대를 향해 움직이는 것은 '저들의 가치'를 옹호해주는 결과가 된다.

보수와 진보는 똑같이 상대가 멍청하든지 부도덕하다고 생각한다. 보수적 기준으로 진보적 가치를 바라보면 당연히 그렇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보수적 목표는 보수적 가치를 통해, 진보적 목표는 진보적 가치를 잣대로 바라볼 줄 아는 안목이 필요하다. 그래야 상대의 강점과 약점에 대한 통찰력이 생긴다.

미국의 진보세력을 이렇게 고민하게 만든 사람은 레이건 전 대통령이다. 1980년대의 유권자들 중 개별 이슈는 레이건과 입장이 다른데도 레이건에게 표를 던지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유권자들은 어떤 이슈에 대한 후보의 입장을 보고 지지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이 상식이었다. 그런데 레이건과 유권자들과의 관계는 달랐다.

비밀의 열쇠는 '가치'였다. 레이건은 구체적인 정책이 아니라 가치를 전달했다. 게다가 그 모습이 진실해 보였다. 유권자들 비위를 맞추려고 마음에도 없는 얘기를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레이건 자신이 굳게 믿는 바를 설명하는 듯한 태도였다. 사람들은 레이건을 신뢰할 수 있는 지도자라고 느꼈다. 가치와 인간적 유대, 진정성, 신뢰, 이런 것들이 있었기 때문에 미국인들은 의견이 좀 달라도 레이건을 지지했던 것이다.

저자는 선거의 승리와 패배는 "정서적인 유대와 신뢰를 얻고 잃는 문제"라고 본다. 그가 제안한 대선승리를 위한 5가지 원칙은 이렇다.

'첫째 가치와 원리에 집중하라. 둘째 진정한 사람이 되라. 셋째 진정 자신이 믿는 바를 옹호하라. 넷째 사람들과 유대관계를 맺으라. 다섯째 정체성을 잊지 말라.'

정책대안과 명분이 창고 가득 쌓여 있어도 진심과 신뢰가 없다면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는 얘기다. 원제 'Thinking Points: Communicating Our American Values and Vision'

더 읽을 만한 책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삼인)는 미국 유권자들이 자신의 정체성과 가치관에 투표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공화당은‘엄격한 아버지 모델’로 세상을 본다. 권위, 규율, 도덕을 중시한다. 민주당의 가치체계는‘자상한 부모 모델’이다. 그래서 남을‘보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저자는 미국 정치의 구호는 거의 모두 이 프레임 안에 있으며, 유권자들은 이 프레임을 떠난 주장엔 귀 기울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프레임은 개인에게도 중요하다. 심리학자 최인철 서울대 교수의 책‘프레임’(21세기북스)은“우리가 마음의 창을 통해서 보게 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객관적으로 보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사실은“프레임을 통해 채색되고 왜곡된 세상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레이코프의 프레임을 이해하는 것이 대선승리에 중요하듯, 최교수는 프레임의 한계를 이해하는 것이 지혜로운 삶을 위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정신분석학자이자 인류학자인 클로테르 라파이유는‘컬처 코드’(리더스북)에서‘코드’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는 법을 제시한다. 미국 유권자는 대통령에게서‘반란을 이끄는 사람’,‘ 문제에 맞서 싸울 줄 아는 사람’,‘ 비전을 가진 사람’의 이미지를 구한다. 모든 문화에는‘지도자의 원형’이 있고 국민들은 이 코드에 맞춰 지도자를 선택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