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무장단체에 납치된 한국인 23명 중 배형규 목사가 살해되고 나머지 22명이 계속 억류되면서 사태가 길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또한 기업이나 봉사단체, 교회 등이 중동, 아프리카 등 위험지역에 근로자나 선교 봉사단을 파견하는 일이 늘고 있어, 앞으로도 한국인 피랍사건은 끊이지 않을 것으로 우려된다. 무장단체에 의해 납치됐다가 극적으로 구조된 3인을 만나 당시 상황과 피랍 후 대응요령 등을 들어봤다.

▲ 소말리아에서 납치됐던 최성식씨.

#1. 소말리아에서 납치됐다 117일 만에 풀려난 동원호 최성식 선장

'탕! 탕! 탕!' 총성 세 발이 들려왔고, 보트 2척이 금세 '628 동원호'를 에워쌌다. 순식간이었다. 최성식(40) 선장은 작년 4월 4일 아프리카 소말리아 인근 공해상에서 조업을 하다, 기관총으로 위협사격을 해오는 무장단체에 납치됐다가 117일 만에 풀려났다. 최 선장은 "무장단체가 총부리를 바로 앞에서 겨누기 때문에 그 두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함께 납치된 선원 24명은 배에서 생활했고, 최 선장은 육지에 있는 무장단체의 소굴에 잡혀 있으면서 몸무게가 10㎏이나 빠졌다.

"돈을 노린 무장단체들이 처음에는 다소 호의적이었지만, 협상이 장기화될수록 신경질적으로 변했어요. 배에서 키우던 개 3마리를 굶겨 죽이고, 한 마리는 줄에 묶어 바다에 던지기도 했죠. '칼로 귀를 자르겠다'고 위협하기도 했어요."

최 선장은 인질로 잡혔을 때, "그들을 자극하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무장단체의 환심을 사려고 배 안에 있는 냉장고를 소굴로 갖다 주고, 낡은 건물의 전기배선도 수리해줬다. 아픈 무장괴한에겐 배 안의 비상 구급약을 갖다 주기도 했다.

최 선장은 당시 협상이 진행되는 과정을 눈치를 통해 대부분 알고 있었다고 한다. 협상이 몇 번 실패할 때마다 안타까움도 더해갔지만, 부모님과 가족들을 생각하면서 참고 견뎠다.

최 선장은 "이번 아프가니스탄 피랍사건에 대해 인터넷에 악플이 많이 달리던데, 가장 중요한 건 인명(人命)"이라며 "가족들도 차분하게 정부에서 진행하는 협상을 믿고 기다리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나이지리아에서 납치됐던 홍종택씨.

#2. 나이지리아에서 납치됐다 3일 만에 풀려난 대우건설 홍종택 차장

대우건설 홍종택(42) 차장은 올해 1월 나이지리아 파이프라인 건설현장에서 현지 무장단체에 납치됐다 3일 만에 풀려났다. 무장단체가 습격했을 때 침대 밑에 숨은 한 명을 빼고 동료 9명이 끌려갔다. 보트 두 대에 나눠 타고 무장단체의 본부에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3시간 후쯤. “무장괴한 70여명이 모여 있었어요. 이탈리아 업체에서 훔친 바지선과 삼성 에어컨 50여대가 쌓여 있었죠.”

홍 차장은 “여럿이 납치됐을 경우 한 명만 실수해도 전체 인질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특히 주의해야 한다”며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한 행동이지만 납치범들은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에 행동 하나하나에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납치된 배 안에서 무장괴한이 그에게 담배를 한 개비 줬다. 잠시 후 술병을 줬는데, 그는 술이 별로 없는 빈 병이어서 무심코 거기에 담뱃불을 껐다. 하지만 그 괴한은 화를 내면서 그를 위협했다. 알고 보니 ‘남은 술을 마시라’는 호의를 베푼 것이었다.

홍 차장도 “무장단체와 인간적인 교감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괴한 중에 아이가 쌍둥이인 사람이 있었어요. 마침 우리 직원 중에도 쌍둥이 자녀를 둔 사람이 있어서, 휴대폰에 찍어놓은 아이들 사진을 보여줬죠.” 납치 초기엔 “말도 붙이지 말라”고 협박하던 괴한들은 나중에 “쌍둥이에게 주라”며 200니아라(2000원 가량)를 기념으로 주기도 했다.

납치 이튿날, 협상을 진행 중인 나이지리아 정부 대표가 무장단체의 본부를 찾았고, 피랍자들에게 “우리가 상황을 봤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이후 피랍된 대우건설 직원들의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고 한다. 홍 차장은 “우리 정부도 아프가니스탄 정부 대표나 부족 원로로 하여금 인질 상황을 직접 보도록 하는 방법을 써볼 필요가 있다”며 “그렇게 하면 협상이 장기화하더라도 인질로 잡힌 이들에게는 상당히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 이라크에서 납치됐던 한재광씨.

#3. 이라크에서 납치됐다 14시간 만에 풀려난 ‘지구촌나눔운동’ 한재광씨

‘지구촌나눔운동’ 한재광(35) 사업부장은 2004년 4월 이라크 나시리야 지역에서 민병대 메흐디군에 납치돼 14시간 동안 억류됐다. 그는 2층짜리 민병대 건물의 옥상 근처에서 밤을 지새웠다. 한 부장은 현장에 파견 오기 전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에서 배운 인질 교육이 많은 도움이 됐다고 한다. “침착함을 잃지 말고 당당한 게 중요합니다. 물론 자극은 하지 말아야죠. 저는 ‘나는 장애인용 휠체어를 나눠주러 온 구호활동가다’라고 계속 얘기했죠. 휠체어 전달식에서 받았던 이라크인 명함도 꺼내서 보여줬더니, ‘내 친구’라고 하면서 우호적으로 바뀌더군요.”

당시 그를 납치한 민병대와 대치하고 있던 병력은 이탈리아군이었다. 그는 “2002년 월드컵 때 한국이 이탈리아를 이겼다”고 자랑해 당시 민병대원들에게 호응을 얻기도 했다. 민병들이 피우던 담배가 ‘디스(THIS)’인 것을 보고 한국에서 만든 것이라는 사실도 얘기해주며 인간적인 친분을 쌓아갔다.

그는 “모든 상황이 마무리될 때까지 침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풀려난 것은 다음날 새벽에 벌어진 대규모 전투 덕분. 새벽 4시부터 대규모 총성이 울렸고, 민병들은 총을 들이대며 “나가라”고 했다. ‘혹시 뒤에서 쏘지는 않을까’ 두려웠지만, 끝까지 침착함을 잃지 않으려고 뛰지 않고 걸어서 나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