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피랍자 중 배형규 목사가 피살됐다는 충격적 외신 보도는 사실로 밝혀졌고, 8명이 석방됐다는 희망적 보도는 결과적으로 틀리고 말았다. 자국민들을 돕기 위해 봉사활동을 하던 비무장 민간인을 납치해 사살하는 탈레반 무장세력의 만행에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피랍자 8명을 태우고 오던 버스가 이들을 풀어주기 직전에 길을 되돌렸다는 소식엔 안타까울 뿐이다.
탈레반측은 또다시 협상시한을 설정하고 요구조건을 들어주지 않으면 인질을 추가 살해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이들의 행태를 볼 때 피랍자 구출 협상이 기로에 서 있는 느낌이다. 정부는 외교부 제1차관에 이어 청와대 안보실장을 대통령 특사로 아프가니스탄에 급파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과 두 차례 통화했다.
이 국면에서 대한민국 외교는 두 갈래 길을 동시에 갈 수밖에 없다. 正面정면 협상에서는 국가가 테러단체를 상대할 때 지켜야 할 국제사회의 규범과 원칙을 따라야 한다. 국제 사회가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처신을 주목하고 있는 이 상황에서 당연하기도 하고 어쩔 수 없기도 한 일이다.
그러나 裏面이면에서는 국가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사용해야 한다. 우리가 테러단체를 물리적으로 제압하기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정부는 배 목사 피살과 관련, “납치단체는 책임을 면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지만 지금 당장은 현실적으로 응징 수단이 없다. 그렇다면 아프가니스탄과 미국 등 관련국 정부에 대해 ‘우리 국민의 생명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관철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이들 관련국 정부도 딜레마에 빠져 있다. 그러나 피랍자의 생명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에는 어떤 異論이론도 있을 수 없다.
관련국 정부는 성급한 군사작전을 자제하면서 탈레반측 요구조건에 대한 보다 유연한 검토를 해주기 바란다. 문제는 피랍자들을 세 곳에 분산 감금하고 있는 여러 탈레반 세력들이 서로 다른 요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중 한 세력은 엊그제 8명의 인질을 풀어주기 일보 직전까지 간 반면 다른 세력은 배 목사를 살해하는 극단적으로 상반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우리 정부와 관련국 정부는 이들의 서로 다른 요구조건에 모두 대처하면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먼저 구출할 수 있는 피랍자들부터 빼내야 한다.
앞으로도 고비와 위기는 올 수 있다. 우리가 가진 카드가 많지 않은 이 상황에서는 국민의 의연한 자세도 정부에는 힘이 되고, 납치세력에는 압박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