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2년 1월 1일 카불의 영국군 수비대가 철수를 시작했다. 영국은 1839년 식민지 인도 방어의 요충지 카불왕국에 진주했지만 고위 관리와 장교들이 잇따라 살해되자 견딜 수가 없었다. 철수 길에 오른 군인 4000명과 민간인 1만명의 대행렬이 눈 덮인 계곡과 고개들을 지나다 아프간 전사(戰士)들의 기습 공격을 받았다. 목적지 잘랄라바드에 살아서 도착한 사람은 40명이 채 안 됐다.
▶치욕스럽게 쫓겨난 영국은 1878년 다시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했다. 영국이 물러나자 아프간 북부 국경까지 영향력을 확대한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영국은 치열한 전투 끝에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영국인 살육이 계속됐고, 40년 전의 악몽을 떠올린 영국은 1880년 아프가니스탄의 외교권만 장악한 채 철군했다. 아프가니스탄은 1919년 영국과 전쟁을 벌여 외교권을 되찾았다.
▶유라시아 대륙 한가운데 자리 잡은 아프가니스탄은 고대부터 동·서양 무역과 인적 교류의 교차로였다. 페르시아왕국과 알렉산더 대왕, 몽골, 무굴제국이 차례로 이 지역을 침략했다. 19세기엔 영국과 러시아가 벌인 세력 쟁탈전의 주무대였다. 끊이지 않는 외세에 대한 강한 거부감, 험준한 산악과 메마른 사막이라는 지리적 악조건 탓에 외국군은 늘 곤욕을 치러야 했다.
▶‘외국군의 무덤’이라는 아프가니스탄의 별명은 1979년부터 꼬박 10년 계속된 소련군 침공 때 다시 한번 입증됐다. 소련은 1978년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공산주의 아프간인민민주당을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10만 군대를 진주시켰다. 그러나 미국의 지원을 받은 반정부 무장조직 무자히딘의 저항에 부닥쳐 사망 1만4453명, 부상 5만3753명이라는 큰 희생을 치르고 물러났다. 이는 소련 붕괴의 한 원인이 됐다.
▶1996년 집권한 이슬람 근본주의 집단 탈레반은 2001년 9·11 테러를 조종한 알카에다에 근거지를 제공했다가 미군의 공격을 받아 정권을 잃었다. 탈레반은 아프간의 반(反)외세 전통을 과시라도 하듯 끈질기게 외국군 공격과 외국인 납치를 계속해 왔다. 급기야 한국 봉사단을 무더기로 납치해 한 사람의 생명까지 앗았다. 전화(戰禍)에 주저앉은 아프간 사람들을 치료하고 가르쳐 다시 일으켜 세우러 간 사람들을 도리어 희생물로 삼고 있다. 이를 반외세 투쟁이라고 봐줄 사람은 아프간 국민 중에서도 많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