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을 소탕하려면 파키스탄부터 손봐야 한다.”

이번 한국인 납치로 국내에도 악명을 떨치게 된 탈레반은 30년 가까이 파키스탄의 후원·방조 속에 세력을 키웠다. 2001년 12월 탈레반 정권이 붕괴한 뒤에도 탈레반이 5년7개월째 이어진 미군과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군의 맹공에도 불구하고 건재를 과시하자 전 세계의 관심은 ‘탈레반의 안식처’인 파키스탄에 쏠린다.

◆파키스탄 서부는 탈레반 안방

정권 붕괴 후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 접경지대인 파키스탄 서부지역(발루치스탄·와지리스탄·북서변방주)을 안방처럼 드나들며 힘을 키웠다. 지형이 험준해 국경 관리가 거의 불가능한 데다 친(親)탈레반 성향의 산악부족들이 모여 있던 덕분이다.

이들 지역은 ‘탈레반 양성소’ 노릇도 해왔다. 마드라사(이슬람 신학교)에서 이슬람 근본주의를 주입받은 학생들은 자폭해 죽으라는 교사의 ‘축복’ 속에 수십~수백 명씩 단체로 국경을 넘어 탈레반에 가담한다. 1997~1998년에만 1만여 명이 이렇게 탈레반 전사가 됐다. 파키스탄 정보부(ISI)가 나서 아프가니스탄으로 가길 꺼리는 사람들을 체포·살해하는 일도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지난 1월 보도했다.

특히 발루치스탄주 퀘타는 탈레반의 ‘임시정부 수도’로 불릴 만큼 탈레반의 영향력이 막강하다. ISI의 비호 아래 탈레반 최고 지도자 물라 모하메드 오마르(Omar) 등 탈레반 지도부가 이곳에 숨어 있다는 얘기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파키스탄-탈레반, 오랜 동지

파키스탄은 1980년대 초부터 ‘탈레반 새싹’들을 길렀다. 197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기 위해 미국 CIA(중앙정보국)와 손을 잡고 대소(對蘇) 항전을 벌인 이슬람 무장조직 무자헤딘(1994년 탈레반 창설의 주역들)에 군사지원을 했다. 이슬람 무장세력을 이용해 소련과 대리전을 치른 것이다.

파키스탄 정부는 탈레반이 1996년 아프가니스탄 정권을 잡은 뒤에도 수천만달러어치의 식량과 석유를 매년 지원했다. 파키스탄은 샤리아(이슬람 율법)에 따른 철권통치로 악명을 떨친 탈레반 정권을 외교적으로 인정한 전 세계 3개국(파키스탄, 사우디아리비아, 아랍에미리트연합) 가운데 하나다.

◆미국 압박도 안 먹혀

탈레반과 파키스탄의 밀월 관계는 2001년 가을 위기를 맞았다. 미국이 9·11 테러를 주도한 알 카에다, 알 카에다를 보호해온 탈레반을 표적으로 삼고 파키스탄의 협조를 요구한 것이다. 무샤라프 정권은 미국을 돕는 대가로 지금까지 100억달러 상당의 지원을 받아냈다.

그러나 무샤라프는 미국의 후원 속에서도 탈레반을 궤멸시키지 못했다. 와지리스탄 등에 군대를 보내 탈레반 퇴치에 나섰지만, 오히려 수백 명의 전사자를 내고 작년 9월 탈레반을 보호해온 현지 부족과 휴전협정을 맺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