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속의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우울증에 걸려 있었던 게 아닐까? 나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처럼 점점 더 그늘 속으로 내 자아를 밀어넣었다.
그로부터 몇 시간 후 나는 신촌의 한 찜질방에 누워 있었다. 짐은 주인에게 맡기고 샤워를 했다. 거리에서 뒤집어쓴 먼지가 정말 대단했다. 거지가 달리 거지가 아니구나. 나는 발 밑으로 흘러가는 구정물을 보며 한탄을 했다. 열탕과 냉탕을 한 번씩 오간 후 흰 티셔츠와 반바지만 입고, 목침을 베고 드러누워 멍하니 텔레비전을 봤다. 나 말고도 꽤 많은 손님들이 젊은 남녀의 결혼문제로 칠십 먹은 할머니부터 스무 살 먹은 손녀까지 모두 골머리를 썩는 일일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거기 등장하는 가족들은 하나같이 괴물 같았다. 그들은 지나치게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많았다. 간섭하고 괴롭히고 저주하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정말 세상의 모든 가족이 저런 걸까? 나는 문득 목침에서 머리를 들어올려 텔레비전 앞에 모여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흰 천을 두른 살덩이들이 텔레비전 주위를 에워싸고 바다표범들처럼 누워 있었다. 모두 흰 옷을 입고 있어 언뜻 보면 무슨 회사에서 단합대회라도 온 것 같은 분위기였다. 단지 다른 점이 있다면 이 거대한 방 속의 사람들은 서로 대화를 전혀 하지 않고 눈이 마주쳐도 웃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몸을 일으켜 텔레비전 앞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천천히 찜질방 곳곳을 어슬렁거렸다. 원적외선, 황토 등 갖가지 테마를 붙인 방들이 있었고 어김없이 일정한 수의 사람들이 들어가 드러누워 있었다.
흰개미 굴.
그랬다. 찜질방은 거대한 흰개미 굴 같았다. 흰 옷을 입은 사람들은 아무 말 없이 이 방 저 방을 들락거리며 분주히 오갔다. 부딪치지도 않고 서로 싸우지도 않았다. 잠들어 있는 사람, 컴퓨터 앞에서 인터넷을 하는 사람, 러닝머신 위에서 달리기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흰개미 굴의 구석에 위치한 구내 매점으로 가 비빔밥을 시켜 먹었다. 나물을 씹으며 옆방녀의 영안실에 가야 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가는 게 좋겠지? 가서 마음의 짐을 덜어버려야지.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도 선뜻 엉덩이가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 쓸쓸하고 심란한 초상집에 가서 뭘 한단 말인가? 그리고 그게 과연 잘 하는 짓일까? 내 마음의 짐을 덜자고 가서 괜한 의심과 분란을 일으키는 게 과연 그녀를 위한 일일까? 당장 그녀의 연인인 우체부는 나를 의심할 테고 어쩌면 누군가는 그녀의 죽음에 내가 관련돼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은…… 꼭 그렇지 않다고는 말할 수 없는…… 문제가 아닌가?
수면실에 들어가 잠을 청해보았지만 정신은 말똥말똥했다. 다시 한 번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가보기도 하고 러닝머신에서 미친 듯이 뛰기도 했다. 도대체 자정이 다 된 시간에 이 무슨 달밤의 체조란 말인가. 나는 결국 옷을 갈아입고 흰개미 굴에서 빠져 나왔다. 전생의 업보 같은 애물단지 트렁크를 끌고, 그것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발그레하고 보송보송한 얼굴로 취객들이 활보하는 밤거리를 터덜터덜 걸었다. 나의 발걸음은 나도 모르게 세브란스 영안실을 향하고 있었다. 몇 개의 횡단보도를 건너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육교를 올랐다. 육교 아래에서 지나가는 자동차들의 불빛을 내려다보았다.
나는 예전부터 육교가 참 좋았다.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아무래도 횡단보도가 좋겠지만 횡단보도에는 육교와 같은 전망이 없다. 육교에서 내려다볼 때면 도시는 훨씬 아름답고 멋진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횡단보도는 서둘러 건너가야 할 곳이지만 육교는 그렇지 않다. 건너지 않고 오래 머물러도 뭐라는 사람이 없다. 길의 한가운데에서 오는 차와 가는 차를 마음껏 내려다볼 수 있는 경험은 이제 귀해졌다. 육교들은 사라져 가고 있다. 횡단보도는 그것대로 만들되 육교는 육교대로 내버려두면 안 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