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뉴욕타임스에 ‘축소형 핵탄두 설계도가 중국으로 유출됐다’는 특종기사가 실렸다. 8개월 뒤 미국 로스앨러모스 국립원자력연구소의 대만계 수석연구원 리원허가 설계도를 빼돌린 혐의로 구속됐다. 인종차별 논란이 일자 FBI는 그렇지 않다는 근거로 “리가 거짓말탐지기 조사에서 진범으로 나왔다”고 밝혔다. 리는 17개월 뒤 무죄로 풀려났다. 설계도 유출 보도로 2000년 퓰리처상을 탔던 뉴욕타임스는 사과문을 실어야 했다.

▶미국 첩보요원 명단을 소련에 넘긴 CIA 간부 알드리치 아메스가 1994년 붙잡혀 복역 중이다. 그러나 그에 대한 거짓말탐지기 조사에선 ‘문제없다’는 답이 나왔다고 한다. FBI 요원 로버트 핸슨은 1985년 소련에 매수돼 활동하다 2001년에야 발각됐다. FBI가 오래 전부터 의심을 품고 핸슨을 거짓말탐지기 앞에 앉혔지만 그는 혀를 깨물거나 1000에서 거꾸로 7씩 빼는 암산을 하며 탐지기를 바보로 만들었다. FBI에서 배운 요령이었다.

▶거짓말탐지기는 1885년 이탈리아 생리학자 롬브로소가 발명했다. 미묘한 질문을 받는 순간의 몸 움직임, 호흡, 땀, 혈압과 심장박동 변화를 그래프로 만들어 크게 요동치면 거짓말로 판단하는 방식이다. 이를 1921년 수사에 실용화한 캘리포니아 경찰간부 존 라르손은 나중에 “최고 전문가 다섯만 모이면 탐지기의 그래프 해석을 놓고 합의를 보지 못한다”고 고백했다. 믿을 게 못 된다는 얘기다.

▶거짓말탐지기 결과를 법원이 증거로 인정하는 곳은 미국 뉴멕시코주와 이스라엘, 일본뿐이다. 우리 대법원도 2005년 검찰이 거짓말탐지기 결과를 뺑소니 피의자의 유죄 증거로 제출하자 이렇게 물리쳤다. “거짓말을 하면 100% 일정한 심리 변동이 일어나고, 그 심리변동이 100% 생리반응을 일으키며, 생리반응으로 피의자 말이 거짓인지 아닌지 명확히 판정할 수 있어야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있다. 지금 과학기술 수준으론 이를 기대할 수 없다.”

▶검찰이 이명박 한나라당 경선후보의 ‘서울 도곡동 땅 차명 보유 의혹’ 수사에 거짓말탐지기 사용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서청원 한나라당 전 대표는 “김만제 전 포스코 회장에게 ‘도곡동 땅은 이명박씨 소유’라는 말을 들었다”고 주장하고 김씨는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하니 답답하기도 할 것이다. 정치인과 거짓말탐지기의 대결, 만만치는 않을 것 같다. 승부가 어떻게 결판날지 정치사에 남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