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석촌동에 있는 삼전도비(三田渡碑·사적 101호·1639년 건립). 폭 1.4m, 높이 5.7m의 대리석(32t)으로 만든 이 거대한 비석은 병자호란에서 패한 조선이 청 태종의 요구에 따라 그의 공덕을 적은 ‘굴욕의 비석’으로 유명하다. 비석으론 드물게 한문과 만주·몽골문자 등 3개 문자가 동시에 새겨져 있는 희귀한 유물이기도 하다. 삼전도는 남한산성에서 47일 동안 항전(抗戰)하던 인조가 굴욕적인 강화협정을 맺은 치욕의 장소로, 김훈의 베스트셀러 ‘남한산성’에도 중요 작품 무대로 등장하고 있다. ‘조선 굴욕의 상징’인 삼전도비는 인근 주민들에게 ‘골칫덩어리’로 취급되고 있으며, 비석 이전도 본격 추진되고 있다.

◆ "원위치도 아닌데 피해막심…" 주민들 불만

지난 16일 찾은 삼전도비. 주변은 공원처럼 꾸며졌지만 찾는 이가 거의 없어 을씨년스러웠다. 비석 주변에는 잡초가 무성했고 담배꽁초와 빈 맥주캔이 나뒹굴었다. 지난밤 노숙인들이 종이 박스를 덮고 잔 흔적까지 남아 있었다.

주민들의 시선은 대체로 곱지 않았다. 박금자(58)씨는 "아무리 문화재라지만, 동네 발전을 방해하고 있다"며 "하루빨리 이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치원생을 둔 한 학부모는 "밤마다 청소년들이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등 비행장소로 악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인근의 부동산 대표는 "지하철 8호선 석촌역이 코앞인 역세권임에도 불구하고 삼전도비 때문에 상권이 죽어버렸다"며 "비석을 옮겨야 부동산이 제값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불만이 많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이전 요구가 거센데는 비석이 원래 위치가 아니라는 점도 한몫 하고 있다. 삼전도비는 1963년 대홍수 때 석촌호수 주변에서 발견된 뒤 석촌동 백제고분군 부근으로 이전했다가, 1983년 동쪽으로 300m쯤 떨어진 지금 자리로 옮겼다. 이런 사정 때문에 '주변 100m 건물 신축 높이 제한' 등의 규제를 받는 인근 주민들은 "억울하게 재산권을 침해받는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 “원위치 밝혀지면 이전 가능”

지난 2월에는 누군가 비석에 붉은 스프레이로 ‘철거’ 등의 낙서를 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송파구는 “지금처럼 방치했다가는 언제 또 비슷한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며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구는 2003년 서울시와 문화재청에 비석 이전을 공식 요청했고, 2004년 구의회도 이전 결의문을 발표하고 구의회 의장 등이 직접 문화재청을 방문하는 등 끈질기게 이전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정작 열쇠를 쥔 문화재청은 “건립 위치에 대한 정확한 규명과 고증이 필요하다”며 “그전까지는 현재 위치에 두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문화재청은 최근 “원래 위치를 고증하기 위한 학술조사와 연구용역을 실시할 경우 이를 바탕으로 원래 위치로 이전하거나 역사교육장(박물관 등)으로 옮겨 보전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송파구는 이에 따라 지난달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에 비석의 정확한 원위치를 규명하고 다양한 이전방안을 검토하는 용역을 발주했다. 연구 결과는 오는 11월 나올 예정이다. 송파구는 “문화재청도 인정한 학술기관의 공식 연구용역인 만큼 용역결과에 따라 이번에는 삼전도비를 옮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