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시간이 넘는 비행과 3시간 30분간의 테제베 기차를 타고서야 프랑스의 지중해 연안 도시 몽펠리에에 도착했다. 중세 도시로 들어선 듯한 고풍스런 느낌! 1289년 개교한 몽펠리에 대학을 비롯한 이곳의 3개 대학에서 9일 개최된 ‘세계 18세기 학회’는 14일까지 6일간 계속된다. 세계 30여개 국에서 온 1000명이 넘는 18세기 연구자들은 4년에 한 번씩 모여 대회전을 치른다. 올해로 12회째다. 논문 발표자만 700여 명, 150개가 넘는 분과 발표 및 토론이 열리는 중간중간에 23개의 주제별 워크숍과 석학 특강이 열린다.

어마어마한 규모도 규모지만 주제의 세목을 살펴보면 학해무변(學海無邊)이란 말이 실감난다. 워크숍과 분과토론의 주제는, ‘18세기의 고전수사학’ ‘18세기 시간 인식의 변화’, ‘호기심의 항해’, ‘18세기의 성(性)과 근대성’, ‘과학공화국’, ‘18세기의 신체와 질병’, ‘백과전서의 지속성과 단절성’, ‘18세기 프랑스의 예술집단’ 등등 다양한 분야, 폭넓은 영역을 포괄한다. 이렇게 150여 개 주제마다 4~5명의 발표자가 대기하고 있다. 앞으로 한 주일 동안 펼쳐질 지성의 향연이 알지 못할 설렘을 일으킨다. 무림의 최고수를 가리는 무술대회에 참여한 신참내기 무사 같다.

▲ 9일(현지 시각) 프랑스 몽펠리에 코룸 대회의장에서 열린 세계 18세기 학회 개회식에서 대회장인 장 몽토 교수가 개회사를 하고 있다. 세계 30여개국에서 1000여명의 학자들이 이번 학회에 참가했다.

한국18세기학회는 1995년 설립되어 1999년에야 세계학회에 정식 지회로 가입하였다. 2003년 미국 UCLA에서 개최된 11회 세계대회 때 한일 양국이 공동세션을 처음 가진 것이 계기가 되어, 이번 대회에서는 두 개로 확대해 ‘계몽과 동아시아’를 공동주제로 모두 7명의 한국 18세기 학자와 3명의 일본 학자가 참여하고 있다. 국학 쪽에서는 필자와 안대회(명지대), 정승혜(수원여대) 교수가 참여하였고, 서양학은 김정희(가톨릭대), 문희경(고려대), 이영목(고려대) 교수가, 철학은 유권종(중앙대) 교수가 발표자로 나선다. 이밖에도 의학사 전공의 이종찬(아주대) 교수와 재외 한인 학자들이 여럿 참여하고 있다.

적어도 이곳에서 인문학 위기의 증후란 찾을 수 없다. 발표자와 발표제목을 적은 안내 책자가 근 200쪽에 달한다. 저마다 관심 가는 주제를 찾아 시내 중심에 자리잡은 코룸 대회의장의 수십 개 소회의실을 바쁘게 오간다. 어제는 환영 칵테일 파티가 열리고, 오늘은 수백 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회식과 석학 강좌가 오전 내내 계속되었다. 그 두터운 저변과 뜨거운 열기가 이방인의 낯가림을 슬며시 해제한다.

중앙 홀에는 지난 4년간 전 세계에서 이루어진 18세기 관련 연구성과를 담은 단행본 수 백 권이 전시되어 있다. 우리도 18세기 학회에서 간행한 ‘위대한 100년 18세기’와 필자의 ‘18세기 조선지식인의 발견’, 안대회 교수의 ‘조선의 프로페셔널’ 등의 책자를 간단한 설명과 함께 주최측에 전달했다. 호기심에 겨워 책자의 도판을 들춰보는 눈길들이 새롭다.

한·일 18세기학회가 공동으로 마련한 세션 발표는 10일 오전 오후로 나뉘어 열린다. 서양 학자들에게 동양에서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아주 흡사한 현상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적어도 18세기에 일어난 변화는 상호 영향관계를 따질 겨를도 없이 동시적 현상으로 일어났다. 동아시아의 계몽담론을 그들에게도 충분히 전달해야 할 필요와 각오를 새삼 다진다.

▲ 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

4년 전에도 그랬다. ‘우물 안 개구리가 나를 두고 하는 말이었구나….’ 우리 학문의 세계화는 아직도 갈 길이 참 멀다. 맥락을 읽어내는 안목 없이 민족의 자존만을 외치는 현실은 밖에서 보니 더욱 갑갑했다. 500년 전 노스트라다무스가 학생 신분으로 거닐었던 캠퍼스를 오늘 내가 걷는다. 고흐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근처 아를르 지방의 아틀리에도 하루쯤 찾아볼 작정을 둔다. 인상파와 야수파의 회화를 만들어낸 이곳의 뜨거운 햇살은 포도주의 향취처럼 달콤하고 몽환적이다. 그 햇살 속에서 또 한 번의 거듭남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