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위화(余華·47)는 동서양 서사 문학의 통합을 지향한다. 옛 중국에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기이한 이야기를 늘어놓던 설서인(說書人)과 같은 입심을 과시하는 이야기꾼 위화는 동양적 서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그의 소설에는 유럽의 모더니즘, 남미의 마술적 리얼리즘이 교묘하게 뒤섞여 있다. "위화는 카프카, 가르시아 마르케스, 보르헤스, 포크너 등을 거치면서 '산해경'과 '수신기' 등의 중국 전통서사, 넓게는 동아시아 전통서사를 재발견했다"(이욱연 서강대 중문과교수)는 평가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위화는 문학적 월드 스타로 뜨고 있다. 그의 장편 '형제'는 내년 초까지 23개국에서 잇달아 나온다. 지난 5월 한국을 방문했던 위화는 "내가 시대를 잘 만난 탓이고, 특히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중국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서 그 특수를 누리고 있다"고 겸손해 했다.

▲ 동아시아 전통에 뿌리를 둔 중국의 소설가 위화는“오늘날 한국과 중국의지식인들은 돈 버는데만 열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편소설 ‘형제’는 어머니는 같고 아버지가 다른 형제 송강(宋鋼)과 이광두(李光頭)를 통해 문화대혁명부터 오늘날 중국식 사회주의 시장경제까지 40년 동안 격변의 시기를 해학적인 시각으로 그렸다. ‘초특급 갑부 이광두는 미화 이천만 달러를 들여 러시아 우주선 유니언호를 타고 우주 유람을 할 정도로 기상천외한 인물이다 이광두는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친, 도금을 한 변기에 앉아서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우주 궤도를 떠도는 자신의 생애를 상상하기 시작했다…’

이 소설의 주인공 이광두는 가난한 집안에서 아버지의 얼굴도 모른 채 나고 자랐지만 중국의 개방 이후 억척같이 돈을 긁어 모은 입지전적 인물이다. “이 소설을 읽은 중국 독자들이 가장 본받고 싶어하는 인물이 이광두”라고 작가 위화가 말했을 정도로, 이광두는 새로운 중국의 졸부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탄생과 성장, 부의 축적 과정 자체를 작가는 희극적으로 그린다. 이광두의 본명은 ‘이광’이었지만, 어머니가 이발비를 절약하기 위해 이발사에게 머리를 빡빡 깎아 달라고 했고, ‘광두’라는 별명이 어느덧 본명처럼 사용됐다. 소설 ‘형제’는 이광두전(李光頭傳)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그의 범상치 않은 인생 유전을 풀어놓는다.

주인공 이광두는 10대 소년 시절에 문화대혁명이란 광란의 시기를 통과한다. 동네 재봉사인 장 재봉은 오늘도 목에 가죽 자를 두른 채 인민의 적들에게 가장 남루한 수의를 지어주겠다고 잘못 외쳤다가 황망히 시체보를 만들어주겠다고 수정한다. 부르주아의 주검에 수의를 입혔다간 홍위병에게 끌려가기 십상이었던 당시의 험악했던 상황을 풍자적으로 고발한다. ‘형제’는 이처럼 중국 현대사의 비극을 소설 형식을 통해 조롱하고 있지만 그 저변에는 작가의 분노가 담겨있다. 이광두의 의붓아버지 송범평이 홍위병에게 맞아 죽는 장면 묘사를 통해 그 분노가 터져 나온다. ‘이광두는 한 사람이 이렇게까지 맞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송범평의 얼굴에는 피가 흥건했고, 머리칼마저 피에 젖었다. (…) 송범평은 몸을 내맡겼다. 다만 눈길은 그들을 피해 이광두와 송강을 보려 했다. 이광두를 보는 그의 눈빛은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했으나 이광두는 그 눈길이 무서웠다.’

그리고 이광두 형제는 어머니마저 병으로 잃는다. ‘이란은 죽었지만 두 눈은 여전히 뜬 채였다. 죽기 전 몹시도 두 아들을 보고 싶어했지만, 시력이 그녀의 눈에서 희미해질 무렵까지 눈에 밟히던 두 아들은 여전히 그녀 앞에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송강은 억척스러운 이광두와는 달리 소심하고 사변적인 인물이다. 이광두가 공장장이 되고, 폐품 판매 등을 통해 부를 축적하는 반면, 송강은 사기꾼 약장사 주유를 만나 그를 따라다니게 된다. 이 소설에서 주유라는 인물의 등장은 중국 사회의 도덕적 타락을 풍자하기 위한 것이다. 그는 남자 관계가 문란했던 여인들이 결혼을 하게 될 때 인공처녀막을 파는 사기꾼이다. 요즘 중국의 성 풍속도를 풍자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드러난다. “인공처녀막 판매 광고는 물론 꾸며낸 것이지만 2000년을 전후로 실제로 처녀막 재생수술이 중국에서 유행했습니다.”

사기꾼을 따라다니던 송강은 가짜 유방 확대 크림을 팔러 다닌다. 그는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파는 가짜 약의 효과를 사람들에게 과시하기 위해 가슴 확대 수술까지 받는다. 그러나 결국 그는 후유증으로 고생을 한다. 그는 아내 임홍이 이광두와 정을 통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된 뒤 자살하고 만다.

하지만 이광두는 형의 죽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돈을 긁어 모아 거부(巨富)가 된다. 세월이 흘러 이광두는 거금을 내고 러시아 우주선에 탑승하는 우주 관광에 나선다. 그는 죽은 형의 유골함을 들고서 우주선에 오른다. ‘송강이 영원히 달과 별들 사이를 유영할 수 있도록…’이라고 말하는 그는 ‘그렇게 되면 내 형제 송강은 외계인이다’고 외친다. 광기와 폭력이 지배했던 지구를 벗어난 형에게 거대한 우주의 품 안에서 영원한 삶을 누리라는 것이다. 우주 공간을 무대로 형제의 화해 의식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위화는 그 장면을 통해 계층간 단절과 격차에 시달리는 중국 사회에 진정한 소통이 이뤄지길 바라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조선일보와 가진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작가는 “이광두라는 인물의 활기왕성함이 지난 40년 간의 변화를 증거한다. 그는 선한 면과 악한 면이 공존하는 인물”이라고 강조했다. 위화의 소설은 한국에서 주로 지식인층에서 많이 읽힌다. “오늘날의 한국 지식인들에게서 받은 인상은 죄다 돈 벌려 사업하는 것 같다”고 한 그는 “중국의 지식인들 역시 오늘날에는 돈 버는 데만 열중하고 있다”고 냉소적으로 말했다.

최용만 옮김. 휴머니스트. 전3권 각권 9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