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대의 경제일간지인 월스트리트 저널(WSJ) 인수를 눈앞에 둔 호주 출신 언론재벌 루퍼트 머독(Murdoch)은 ‘보수적’ 정치 성향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업상 이익과 확장을 위해서 실제로는 보수와 진보를 오가며 변신을 거듭했다고 뉴욕 타임스(NYT)가 보도했다. 머독에게 유일한 ‘이념’은 ‘사업 확장’이었다는 것이다.

◆보수와 진보 사이에서 줄타기

더 타임스 등 머독이 이끈 뉴스코프 산하의 영국 신문들은 오랫동안 ‘친(親)보수당·반(反)노동당’ 논조를 유지했다. 머독 자신도 보수당의 마거릿 대처(Thatcher) 전(前) 총리와 오랜 친분이 있었다. 그러나 1997년 총선에선 노동당 출신 토니 블레어(Blair)를 적극적으로 밀어 당선시켰다. 블레어가 자신의 언론사 소유 지분을 제한하거나 법 개정을 통해 ‘박탈’하지 않으리라고 확신했기 때문. 블레어의 전(前) 대변인 랜스 프라이스(Price)는 “노동당 의원 중 상당수가 언론사 소유 제한 방안을 추진했지만 블레어는 조용히 기각시켰다”며 “머독은 사실상 블레어 내각의 일원이었다”고 말했다.

뉴스코프 산하의 미 일간지인 뉴욕 포스트는 빌 클린턴(Clinton) 전 대통령을 종종 ‘최고 색마(horndog-in-chief)’라고 빈정댔다. 그러나 2002년 클린턴과 만난 뒤, 머독은 클린턴이 운영하는 ‘글로벌 이니셔티브 재단’에 50만 달러를 기부했다. 또 뉴욕포스트는 힐러리 클린턴의 뉴욕 연방상원의원 재선을 적극 지지했다. 물론, 힐러리도 ‘보은(報恩)’했다. 시청률 조사기관인 닐슨 미디어 리서치가 뉴스코프의 폭스(FOX) TV에 불리한 시청률 조사 방식을 채택하려 하자, 힐러리는 이에 반대하는 서한을 닐슨에 보내 무산시켰다.

◆중국 권력자들에 아부

500억 달러 규모의 중국 광고 시장에 눈독을 들인 머독은 15년 동안 중국 시장 진출을 추진했다. 초기에 각종 장벽과 실수로 '쓴 맛'을 본 머독은 다양한 방법을 활용해 중국 최고 권력자들과의 인맥을 텄다. 여기엔 중국 본토 출신인 머독의 세 번째 아내 웬디 머독도 큰 역할을 했다. 머독 소유의 출판사 하퍼콜린스는 중국 최고권력자 덩샤오핑(鄧小平)의 막내딸 덩룽(鄧榕)이 쓴 '나의 아버지 덩샤오핑'을 출간하고 뉴욕에서 성대한 출판 기념회를 열어주었다. 또 장쩌민(江澤民) 당시 주석에게는, 그의 아들 장�헝(江綿恒)이 소유한 차이나넷콤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중국 권부(權府)가 좋아할 만한 발언도 잇따랐다. 머독은 1997년 중국이 분리주의자로 비난하는 달라이 라마에 대해 “구치(Gucci) 신발을 질질 끌고 돌아다니는 늙은 정치 승려라고들 한다”고 말했다. 중국을 가(可)시청권으로 둔 스타TV를 운영하는 머독의 아들은 파룬궁(法輪功)을 “중국 정부에 매우 위험한 불안 세력”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그가 눈독을 들이고 있는 WSJ는 파룬궁에 대한 중국 정부의 가혹한 탄압 실태를 고발해 퓰리처 상을 받은 바 있다. WSJ의 중국 특파원 7명은 최근 WSJ의 모기업인 다우존스 컴퍼니 주주들에게 서한을 보내 “머독은 개인과 정치적 목적을 위해 언론 본연의 정신도 희생시키는 인물”이라고 맹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