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나 자신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결심하는 때가 있습니다. 내 안에 잠자고 있던 비열하고 원시적인 본능을 슬쩍 엿보게 됐을 때입니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1997)에서 보듯 2차 대전 당시 나치 수용소에는 유대인 부자(父子)가 많았는데, 게 중에는 아버지가 독일 장교에게 얻어맞아 죽어가는 순간에도 제 몸 하나만 챙기던 아들들이 있었습니다. 올해로 출간 50년이 되는 책 ‘나이트’(La Nuit·예담)의 저자이자 주인공인 엘리 위젤(Elie Wiesel·79)은 훗날 “그런 나 자신을 영원히,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합니다.

노벨평화상(1986) 수상 작가이기도 한 저자는 독일군이 헝가리 고향 마을 시게트를 점령한 때부터 독일군의 패배로 수용소가 해방될 때까지 아우슈비츠 수용소, 부나 수용소, 부헨발트 수용소에서 겪은 일을 섬뜩할 만큼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모두 본인이 체험한 이야기들입니다. 안네 프랑크의 ‘일기’,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 빅터 프랭클의 ‘삶의 의미를 찾아서’ 같은 홀로코스트 문학의 대표작입니다.

고전의 반열에 올라 있는 이 책을 새삼 다시 권해드리는 이유는, 책이 새 번역이라는 점 말고도, 인간이란 무엇인가, 신은 존재하는가,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다가서는 죽음의 그림자는 우리를 어떻게 각성시키거나 타락시키는가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빵 한 조각을 놓고 아귀 다툼을 벌이는 수용소의 유대인들은 자신의 생존 가능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합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버리고, 수프 한 접시에 목숨을 내놓기도 합니다. “하나님만큼 오래 산다고 해도 그 지옥 같은 참상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라며 신(神)을 ‘고발’하던 그들은 어느 순간에 “우리에겐 절망할 권리가 없다”며 다시 일어섭니다.

같은 죽음의 문제지만 전혀 반대 쪽의 분위기를 가진 장르 소설을 한번 맛보시겠습니까. 본격 미스터리 부문에서 ‘젊은 천재’라는 평을 듣고 있는 오츠이치(乙一·29)의 단편집 ‘ZOO’(황매)입니다. 국내외에 열광 팬을 거느리고 있는 오츠이치의 이번 책은 모두 10편의 단편을 담고 있는데요, 죽음을 코 앞에 둔 인간의 이상심리를 전혀 새롭게 진화된 형태의 소설 기법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첫 단편 ‘SEVEN ROOMS’는 어느 날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에게 납치당한 10대 남매가 주인공입니다. 이들은 가로세로 3m 정도 되는 입방체에 갇혀 있습니다. 동생은 천신만고 끝에 몇 가지 사실을 알아내는데, 비슷한 방들이 7개가 나란히 있으며, 각각의 방에는 여성이 한 명씩 납치돼 있다는 것입니다. 오후 6시쯤 납치범은 세찬 소리를 내는 전동 톱을 들고 나타나 하루에 한 명씩 토막 살인을 합니다. 방 한 가운데 나있는 도랑으로 그 시체 토막들이 떠내려 갑니다. 반드시 찾아오게 돼 있는 절대적인 죽음 앞에서도 인간은 초콜릿이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존재입니다.

책 제목으로 뽑힌 작품 ‘ZOO’는 남자 주인공이 살고 있는 아파트의 녹슨 우편함에 죽은 애인의 사진이 매일같이 배달되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독자 분은 ‘엄마가 날 죽인다면 어떤 방법으로 죽일까?’(219쪽)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작품 ‘카자리와 요코’가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블로그에 올리셨더군요. 영화로도 만들어진 이 작품들을 통해 저자는 환상과 현실이 뒤섞인 일상 속에서 우리 모두는 자기 자신의 일인극(一人劇)에 열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kikim@chosun.com)